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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3. 2023

마흔여덟 아들은 추석에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혔다. 한 시간 넘게 걸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라고 언제까지 포장해야 할지 답답했다. 부모의 결정이 옳으니 자식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더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자식 걱정이라는 명분으로 늦은 밤 무턱대고 찾아와 당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모습에 입을 닫았다. 차라리 데면데면했던 그때가 오히려 나았던 것 같다. 이제는 다시 그때로 조차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닫힌 입은 더욱 굳게 닫혔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자초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돈거래는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이가 적건 많건 부모에게 기대는 버릇은 여전했다. 가끔 받는 용돈, 큰일이 있을 때마다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며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현금 흐름이 좋은 사업이 있으니 투자해보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다. 내 딴에도 오래 고민했다. 워낙 보수적인 분이라 씨알이 안 먹힐 줄 짐작했다. 다짜고짜 거절하지는 않았다. 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나도 당장 시작하겠다고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괜찮은 기회이니 천천히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내 말을 이해하신 걸로 짐작했다. 오십이 다 된 자식이 어렵게 꺼낸 말이니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밤 사이 한 잠도 못 잤다며 말을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다짜고짜 하지 말란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래서 지난밤 수차례 강조했었다. 지금 당장 하겠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보는 과정이라고. 그러니 잘 알아보고 난 뒤 할 마음이 생기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청소기 하나 사는데도 며칠을 알아보고 고민하는데, 하물며 사업인데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내 말 뜻을 이해했다면 적어도 알아보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 같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같이 다니며 이곳저곳 함께 봤을 것 같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무조건 당신 생각이 옳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중요한 일에는 매번 의견 충돌이 있었고, 당신이 옳으니 잔말 말라며 결론 냈다.


찝찝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당신의 뜻을 알았으니 혼자 해보기로 했다. 며칠 뒤 중개인과 약속된 장소에서 만났다. 어머니가 먼저 와 있었다. 장소와 시간을 미리 알려준 걸 잊지 않았나 보다. 나보다 먼저 매물을 대충 둘러본 것 같았다. 어머니의 방문은 예정에 없었다. 주인은 불편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중개인만 남아서 주인의 설명을 들었다. 주인의 설명대로라면 투자대비 현금 흐름이 좋았다. 다만 오래된 탓에 시설이 너무 낡은 게 마음에 걸렸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리가 마무리되었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차에 타니 기다렸다는 듯 먼저 말을 꺼냈다. "저런 건물에 누가 산다고, 아예 할 생각 마라." 대꾸하지 않았다. 눈으로 본 어머니는 이미 답을 정했다. 알아볼 필요도 없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돈이 안 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당장 시작할 수 없었다. 마음이 돌아선 탓에 일단은 나도 시간을 두기로 했다. 욕심 낸다고 될 일도 아니고, 서두르면 오히려 그르칠 수 있다. 매물은 찾으면 나온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여겼다. 당신은 이런 나조차 믿지 못했나 보다. 틈틈이 전화해 신신당부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다. 나도 더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놔두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집 근처에 왔으니 나오란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 나갈 순 없었다. 자리 앉으니 대뜸 당장 그만두라고 말한다. "네가 그 일 하면 엄마도 너 안 본다." 그 말에 나도 이성을 잃었다. 내가 그렇게 믿음을 못 줬나? 나는 늘 틀린 선택을 했었나? 아무리 자식을 걱정하는 게 부모 역할이라고 하지만 나를 이렇게까지 못 믿었나? 한 밤중에 찾아와서 말릴 만큼 시간을 다투는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행동이라고는 이해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당신 마음이 편해야겠다는 말로만 들렸다. 


인정을 바랐던 것 같다. 내 선택을 믿어주길 바랐다. 투자를 할지 말 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내 판단을 믿고 두고봐 주길 바랐다. 몇 년 전에도 호프집을 인수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과정을 겪었고 결국 당신의 뜻대로 포기했었다. 어쩌면 그때도 같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판단을 지지받고 싶었던 거다. 당신은 그때도 지금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넌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너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엄마가 다 준비해 놓았다', '나중에 다 너에게 돌아간다'. 다툼의 끝에는 언제 이런 식이었다. 이제까지 안 먹고 안 쓰고 모아둔 돈 다 너희들한테 주고 갈 거라고. 그걸로 조금은 편하게 지내라고. 나는 그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해도 들으려고 안 한다. 좁혀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추석을 앞두고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아내에게 연락해 왔다. 격리는 끝났지만 아이들을 안 보는 게 낫겠다며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보는 게 불편해 핑계를 만들었나 싶었다. 전화해 묻지 않았다. 중간에 낀 아내는 계속 눈치를 보는 중이다. 두고 볼 수만 없었던지 드실만한 음식을 사가자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 뜻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아내도 며느리이니 할 일은 해야 할 테니까. 엉덩이도 붙이지 않고 사간 음식만 건네고 나왔다. 그리고 연휴를 보냈다. 음식도 안 하고 차례도 안 지냈다. 결혼 후 처음 명절을 명절처럼 보내지 않았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편치 않다.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런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당장은 어머니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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