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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4. 2023

인생도 세차가 될까?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면 가끔 비둘기가 영역 표시를 한다. 어떤 놈은 눈치 없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일을 치른다.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니어서 웬만하면 비가 올 때까지 놔둔다. 어떤 놈의 것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서 주유소 자동 세차로 흔적을 지운다. 새똥이 아니고는 세차를 잘하지 않는다. 비를 맞는 걸로 세차를 대신한다. 껍데기도 신경 쓰지 않으니 실내는 오죽할까. 혼자 운전을 하니 먼지가 쌓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트에 흙먼지가 덮여도 털지 않는다. 실내도 주유소 자동 세차 후 진공청소기가 보이면 대충 빨아들이고 만다. 사정이 이러니 가끔 차를 타는 아내와 아이들의 잔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추석을 맞아 손세차를 맡겼다. 언제 손세차를 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아내의 기억을 더듬으니 대충 3년은 지난 것 같았다. 그동안 세차 다운 세차를 안 했다. 그러니 세차 후 만족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더 만족해했다. 언젠가부터 차에 애정을 주지 않았다. 차를 산 지 꽉 채운 9년째다. 첫 해에는 남들처럼 애지중지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세차했었다. 시간을 만들어 셀프 세차를 했다. 정기적은 아니어도 광택도 냈었다. 깨끗해진 외관을 보며 흐뭇했었다. 흙먼지 없는 매트를 보며 뿌듯했었다. 어느 때부터 세차도 광택도 귀찮아졌다. 바퀴 휠에 기름때가 눌어붙어도 닦아내지 않았다. 흘린 음료수가 얼룩져도 쳐다만 봤다. 애정이 식으니 관리도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애정이 있어야 관심도 생긴다. 관심이 사라지면 애정도 없어진다. 새 차였을 땐 애정도 관심도 많았었다. 3년을 고비로 시들해졌다. 그때쯤 개인 회생에 들어갔었다. 출퇴근 길이 멀고 외근이 많아서 차를 처분할 수 없었다. 애지중지가 아닌 애물단지로 차를 끌어안고 살았다. 유치하게 들릴 수 있지만, 차에서 멀어진 애정을 글쓰기에 쏟아부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게 그즈음이다. 매일 쓰기를 6년째다. 6년째 찬밥 신세인 자동차에겐 미안하다. 글 쓰고 책 읽기에 하루가 빠듯했다. 세차하고 광택까지 낼 여유 없었다. 먼지가 쌓여도 글부터 썼다. 새똥을 맞아도 책 먼저 읽었다. 관심과 애정은 식었지만 한편으로 다짐했던 게 있다. 작가로 강사로 성공하더라도 이 차를 버리지 않겠다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해 준 녀석에 대한 의리이다.


세월에 닳고 흙먼지에 찌들어도 자동차의 본질에는 충실한 녀석이다. 잘 달리고 제때 멈추는 건 고급차 부럽지 않다. 연비가 조금 떨어지는 것 말고는 주행 성능은 만족한다. 속도 경쟁은 미련한 짓이지만, 동급에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 힘을 가졌다. 그러니 껍데기는 늙어도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하겠다. 지금은 새 차를 살 여유가 없어서 안 사지만, 새 차 살 여력이 생겨도 곁에 둘 작정이다. 아마 그때는 당당하게 말할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차를 못 바꾸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도 안 바꾼다고.


관심사는 늘 바뀌기 마련이다. 새 차, 새 스마트폰, 새 TV 등 새것에 관심 갖는 유통기한이 있기 마련이다. 관심의 크기는 투자하는 돈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큰돈이 들어가는 집, 자동차는 아무래도 오랜 시간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다. 물건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집, 내 차가 생기면 삶의 질이 올라가고 애정도 생기듯,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갖게 돼도 비슷한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의무감에 해야 하는 일에는 애정도 관심도 적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계가 달린 일이라고 해도 억지로 하는 일에는 애정의 크기도 작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생겨도 삶의 질이 올라간다. 자연히 애정도 깊어진다. 6년째 이어온 읽기 쓰기가 그렇다. 우연히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남은 인생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 읽고 쓸수록 더 잘하고 싶었서 더 열심히 파고들었다. 배우고 익힐수록 애정도 깊어졌다. 이 둘을 만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 내가 더 기대된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줄 거로 믿는다.


지저분해진 차를 보면 초라해 보인다. 이런저런 핑계로 관리하지 않는 나를 탓한다. 관리가 안 된 차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읽고 쓰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차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정성을 쏟아야 할 때다.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 이때를 놓친다면 남은 삶이 지저분해진 차처럼 초라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시기가 온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를 알아차려 변화와 성장으로 이어진다면 이전과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껍데기만 신경 쓰는 삶을 계속해서 살 수도 있다. 현재의 삶에 좀 더 집중한다면 새 차는 아니더라도 세차로 때 빼고 광낸 근사한 내 차를 계속해서 타게 될 테다. 그로 인해 삶의 만족도 또한 높아질 거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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