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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9. 2023

이기적인 선택, 선의와 용서에 대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무엇일까? 타인에게 베푸는 선의와 용서이다. 선의를 베푸는 목적은 타인을 돕기 위해서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면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곤경에 처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사람과 지나치치 못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돕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이들도 분명 있다. 이를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심리일까? 이때 작용하는 마음이 이기심이다. 곤경에 처한 상대를 도움으로써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진흙탕에 빠진 마차를 보고 지나치지 못한 링컨은 옷을 버려가면서 마차를 끌어냈다. 이를 두고 본 친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었다. 링컨은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곤경에 처한 상대를 배려했다기보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잘못에 보란 듯이 복수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상대방에게 복수하는 건 그 사람과 똑같아지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분하고 억울해도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다른 선택을 한다. 이때 상대방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마음속에는 분노가 끓어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용서를 선택한다. 정말로 용서해서 용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상대방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물론 결과는 달라진다. 적어도 자기 마음은 진흙탕이 되지는 않는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용서라는 이기적인 선택이 결국엔 나와 상대를 위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용서와 선의를 어떤 사람이 선택할까? 이기적인 사람과 또 한 사람, 세상 일에 달관한 이들이다. 흔히 말해 공자님 같은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선의를 선택하는 것도 옳다고 믿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용서를 선택하는 것도 서로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에 결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선의와 용서를 통해 얻게 될 결과를 명확히 알고 있다.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는 이들이다. 그러한 신념과 원칙을 갖는 게 보통 사람에게는 쉬운 게 아닐 테다. 쉽지 않기에 선의가 필요한 순간 눈을 감고, 용서해야 할 상황에 복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이 두 가지 상황을 한 번쯤은 만나게 된다. 알든 모르든 사람을 돕는 게 선의라고 알고 있다. 이기심이라고 정의하며 선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베푸는 게 당연하다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 세상일에 달관할 필요도 공자님 같은 성품으로써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본능에 따르는 게 필요할 수 있다. 어려운 이웃을 보고 드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돕고 싶다면 기꺼이 돕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용서는 선의와는 조금 다르다. 선의보다 조금 더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본능에 따르기에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용서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배웠을 것이다. 배운 대로 선택하는 거다. 그러나 이기심에 선택한 들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 용서가 선의보다는 더 고귀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유를 떠나 용서를 선택했다는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 꾀함'이라고 이기심을 정의한다. 선의와 용서를 선택하는 당사자는 지극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상대방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게 된다. 궁극에는 서로가 윈윈 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을 한다고 이기적이라고 할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선의와 용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보다는 선의를 베풀어야 할 상황이 안 생기고, 용서를 해야 하는 일이 안 생기는 게 먼저일 테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안 생기는 게 더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심이 이기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면 얼마든 언제든 선택하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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