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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3. 2023

공부할 때를 놓치면 아빠처럼 된다


"엄마가 카레 해놨네. 달걀 프라이 얹지?"

카레를 데우고 달걀 프라이를 부치고 냉장고 반찬을 접시에 옮겨 담았다. 새로운 지은 밥은 주걱으로 뒤집어놓지 않아 뻣뻣했다. 국그릇에 밥을 담고 카레로 덮은 뒤 달걀프라이를 얹었다. 카레 덮밥과 반찬을 사이에 두고 보민이와 마주 앉았다.


밥을 차리는 동안 보민이가 중간고사 성적표를 꺼내놨다. 열어보지 않아도 점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험 직후 가채점에서 수학, 영어, 과학은 올 백 맞았다고 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100'이라는 숫자가 나란히 적혀 있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이 맛에 공부시키는구나' 싶었다.


국어는 수행평가로 대체했고 평가 내용이 다른 종이에 인쇄되어 왔다. 보민이는 국어에 자신이 없다고 말했었다. 시험을 봤으면 폭망 했을 거라고 했다. 그동안 과제로 에세이와 시를 썼나 보다. 또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 방송하는 모둠과제도 했다. 모든 과제에 대한 국어 선생님의 평가는 보민이를 다시 보게 했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앞으로 국어공부 하라고 안 할게."


 한 마디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했다. 

"국어 공부가 필요할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민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2028년에는 지금과 다른 전형 기준이 적용된다고 했다. 내신보다 대학별 변별력 갖춘 전형이 될 거로 예상했다. 엄마에게 전해 들은 보민이도 내용을 알고 있었다. 수능을 안 보고 수시로 가고 싶단다. 그러려면 학교 공부에 더 집중할 필요 있다고 내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이 되는가 보다. 


고민은 고민으로 남겨두고 각자 앞에 놓인 카레 덮밥을 비워갔다. 다음 날 학교에서 야회 활동으로 캠핑장에 간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잔뜩 벼르던 날이다. 6명이 한 모둠으로 낮 동안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한단다. 그래서 8시에 이마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걷기에는 먼 거리여서 버스 타고 가겠다며 노선을 알아봤다. 나도 기억나는 대로 알려줬다. 검색을 해보더니 어디서 타고 내릴지 파악했다. 


말하는 사이 둘 다 밥그릇이 비었다. 보민이 밥그릇에만 당근 세 조각이 남았다. 요리조리 피하다 알레르기 핑계까지 대며 기어코 남겼다. 그래도 아내와 내가 차려주는 밥은 언제나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는 아이다. 가리는 음식이 생기기 전에는 남기는 걸 용납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것만 남김없이 먹는다. 편식이 없는 편이다. 까탈스럽지 않아서 더 다행이다. 


보민이는 배드민턴 시합 때문에 점심을 못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밥을 급하게 비웠다. 내가 집에 일찍 와서 저녁은 제 때 먹을 수 있었다. 국어 성적을 위해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했지만 꿈쩍하지 않았었다. 평가를 받아보니 보민이 딴에 준비를 해오고 있었나보다. 책 읽을 때는 아직이고. 자기에게 필요한 때는 스스로 알게 된다. 부모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귀에 안 들릴 테다. 다만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공부 때를 놓쳤던 나도 그나마 마흔셋 부터 책을 읽으며 내 할 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부디 아빠와 같은 실수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잔소리를 했다. 이제까지도 믿어왔지만, 앞으로도 더 보민이를 믿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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