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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2. 2023

꾸준히 먹었을 뿐인데

오랜만에 시간에 쫓겨 일했다.

3시에 잠실 현장에서 협력사 담당자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현장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걸린다.

점심 먹고 출발하려면 늦어도 12시 반에는 업무를 끝내야 했다.

다른 직원들은 점심 먹으러 갔다.

원래도 점심은 늘 혼자 먹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왔어도 같이 점심 먹자는 직원은 없다.

차라리 잘 됐다.

빨리 마무리하고 단골 샐러드 매장에 가야겠다.


12시 반, 사무실에서 나왔다.

차를 몰아 단골 매장으로 갔다.

3주 만이다.

안 본 사이 살이 빠졌다고 사장님이 말했다.

살은 안 빠졌는데 얼굴이 타서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내가 말했다.

늘 먹던 메뉴를 주문하고 1인석에 앉았다.

기다릴 사이도 없이 주문한 탄단지 샐러드가 나온다.

우삼겹 조금과 달걀 하나를 여전히 서비스로 얹어줬다.

이 맛에 내가 여기를 찾는다.

2년 10개월, 단골의 위엄이다.


현장 근처에도 단골집과 같은 샐러드 전문점이 있다.

일주일에 3~4일 가지만 단골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탄단지 샐러드를 주문하면 정직하게 담겨 나온다.

단골집에서 주는 대로 토핑을 추가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정해놓은 밥값은 9,000원이다.

우삼겹에 달걀을 얹으면 2,600원이 추가된다.

회사에서 그러지 말란다.

그러니 먹고 나면 늘 아쉽다.

가끔 편의점에서 아몬드 음료와 삶은 달걀로 달랜다.

따지고 보면 토핑을 추가해 먹는 게 더 쌀 수 있다.

다만 카드를 두 개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오랜만에 찾아가도 서비스 토핑을 주는 게 고마웠다.

오래된 단골이라 당연하게 내어주는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나는 믿는다.

한 그릇 다 비우고 산책 겸 매장 주변을 걸었다.

근처 만두 가게에서 고기, 김치 반반씩 1인분 포장했다.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이전에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마음을 표현했다.

빵, 음료수, 과자, 도넛, 만두 등 간식거리를 사줬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거다.

그래서 서비스를 받아도 덜 미안해한다. 


현장에는 11월 말 까지 있을 것 같다.

그 사이 샐러드 매장을 찾아도 단골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주변에 회사가 많은 곳이라 매장을 찾는 회사원이 많다.

매일 찾아가도 존재감이 없을 수 있다.

그곳 사장님도 자주 온다는 걸 눈치채겠지만 단골까지는 글쎄다.

어쩌다 눈에 들어 달걀 하나라도 덤으로 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면 오래된 단골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2년 10개월 전 그 매장도 이제 막 문을 열었다.

찾아오는 손님도 적었다.

매장이 자리한 지식센터 건물에도 입주회사가 많지 않았다.

주변에도 한참 건물을 짓던 시기였다.

그러니 손님 한 명이라도 아쉬울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평일 5일은 꼬박 그곳에 점심 먹었다.

그러니 얼굴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여전히 단골 대접 제대로 받고 있다.


꾸준함이 없었던 나였다.

시도만 했을 뿐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

작정하고 식단관리를 시작했고 샐러드로 점심을 먹어왔다.

어느새 꾸준함도 제법 견고해졌다.

식단관리뿐 아니라 금주도 그렇고 매일 일기를 쓰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효과가 나는 법이다.

꾸준함 덕분에 단골의 혜택도 받는다.

꾸준함 덕분에 몸무게도 유지 중이다. 

반대로 혜택을 받고 건강도 좋아지면서 더 꾸준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꾸준함이 인생을 살맛 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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