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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1. 2023

두 딸의 저녁밥은 '3분 짜장'이었다

둘이서 저녁밥을 차려먹었다.

먹고 난 그릇은 물을 담아 싱크대에 두었다.

반찬을 안 먹었는지 반찬 그릇은 따로 없었다.

엄마 아빠가 차려주지 않은 저녁은 3분 짜장이 전부였다.

프라이팬이 나와있는 걸 보니 달걀 프라이 한 개씩 얹었나 보다.

달걀 프라이를 쩔쩔매던 큰딸은 이제 제법 모양을 낼 줄 안다.

볶음밥, 비빔면, 덮밥에는 항상 달걀 프라이를 얹어먹는다.

모양도 내고 맛도 더하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해줬었다.

아마도 내가 해주는 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붕어빵을 먹었으면 한두 개는 남겨놓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빈 봉투만 덩그러니 있다.

부스러기는 흘리지 말던가.

청소기로 거실과 주방을 밀었다.

바닥에 떨어진 뭉친 밥알도 주워버렸다.

식탁 위 빈 컵도 싱크대에 담갔다.

3분 자장 포장지도 분리수거했다. 

눈에 보이는 걸 정리하고 나니 설거지만 남았다.


컵 몇 개와 접시 세 개 수저와 젓가락이 전부였다.

밥 먹고 설거지까지 해놨으면 좋겠건만.

그것까지 바라기에는 아직 이른 듯싶다.

그래도 많이 발전했다.

먹고 난 그릇을 식탁 위에 그대로 둔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잔소리 대신 가르쳤다.

몇 번 반복하니 알아들었나 보다.


싱크대 앞에 서서 잠깐 고민했다.

'설거지를 해 말아?'

설거지 안 했다고 뭐라고 할 아내는 아니다.

나도 일 때문에 늦어서 이해하고 만다.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보고 있자니 그냥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고무장갑을 꼈다.

접시에 묻은 자장을 먼저 닦아내고 세제 묻힌 수세미로 문질렀다.

컵은 입이 닿는 곳을 닦았다.

수저와 젓가락은 여러 번 문질렀다.

흐르는 물에 미끌거림이 없도록 닦아냈다.

그러다 엄지 손가락이 찢어진 게 보인다.

또 하나 해 먹었네.


빈 싱크대를 닦는 데 아내가 돌아왔다.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말하지 않겠지만 더 고마워할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할 일을 던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았다.

다음 주 중간고사란다.

성적을 과제로 대체했던 과목이었는데 시험을 본단다.

아무래도 걱정되는 눈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거다.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큰딸은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잠들었다.

둘째는 엄마 오기 전 잔다고 하더니 엄마가 와서도 잠들지 못했다.

말이 많은 아이라 잠자리에서도 입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잠이 안 온다던 아이도 내 옆에 눕더니 어느새 잠들어버렸다.

침대가 편하긴 한가보다.


앞으로 둘이 차려먹는 식사가 잦아질 것 같다.

아내도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휴일과 저녁을 활용할 수밖에.

아이들도 덩달아 자기 역할이 생긴다.

할 줄 아는 것도 하나씩 늘어갈 거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역할을 하는 거다.

지금까지도 잘했고,

지금도 잘하고,

앞으로도 잘할 거로 믿는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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