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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4. 2023

글쓰기를 말할 때
술은 필요치 않았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종하형은 글도 잘 쓰고 술도 잘 마신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쫓기보다 월급을 선택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해소하려 웹소설을 쓰기도 했다. 활화산 같은 반응은 없었지만 용돈 벌이로는 충분했었다.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괜찮았었나 보다. 얼마 뒤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다시 현실과 마주했고 월급을 선택했다. 그랬던 게 벌써 5년 전이다. 여전히 종하형은 직장만 다녔다. 그 사이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계속 글을 썼고 몇 권의 책을 냈다. 


종하형은 술도 잘 마신다. 1시간에 소주 2병을 마시는 주당이다. 취향도 독특하다. '처음처럼'만 마신다. 다른 소주를 마시면 정신을 잃는다고 했다. 같은 직장에 다녔을 땐 술도 자주 마셨다. 고민 상담도 자주 했고 이유도 없이 마시는 날도 많았다. 술은 마시고 난 뒤 후회하지만 그래도 또 마시게 되는 마력을 가졌다. 마력이기보다 중독이 맞는 표현이다. 종하형과 술을 마시면 늘 그랬다. 다음 날 후회하면서도 며칠 뒤에는 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5년 전 내가 직장을 옮기면서 만남도 뜸해졌다. 그 사이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지는 않았다. 내가 2년 전 술을 끊으면서 만날 기회도 자연히 줄었다. 그랬다가 요즘 들어 다시 만나시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더니 두 달 사이 두 번이나 만났다. 화두는 글쓰기였다. 종하형은 여전히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매달 월급으로 찬물을 끼얹어도 사그라들지 않는단다. 얼마 전부터 트위터에 짧은 글을 연재 중이라고 했다. 여전히 올리는 글마다 반응이 구들장 아랫목이란다. 그러니 더 제대로 글을 쓰고 싶다며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였다. 나는 따뜻한 민트티를 마시며 종하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글재주를 떠나 지난 5년 동안 나는 10여 권 책을 써냈다. 성과면에서는 내가 앞섰다. 반대로 형은 나보다 글을 잘 쓴다. 단어, 표현, 구성 등이 남다르다. 워낙 소설을 많이 읽어서 감각이 고급지다. 형의 재능을 가질 수 있다면 악마와의 거래도 기꺼이 할 만큼 탐이 난다. 각자 쓰고 싶은 장르가 다르다 보니 서로의 글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아무런 득이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종하형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 형은 아직 출판 경험이 없다. 또 SNS를 활용해 글을 올리는 게 서툴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과 트위터에 쓰는 건 분명 다르다.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책도 내봤기에 내 경험이 필요했을 테다.


같은 직장에 다녔을 때처럼 술을 마시며 글을 안주로 삼았다면 아마도 국도 어디쯤으로 빠졌을 것이다. 요즘에는 나도 술을 끊었고 형도 술을 예전만큼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두 번 만남도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니 목적지를 정해놓고 고속도로를 달리듯 둘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대화는 주로 종하형이 주도한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효과적'이라는 의미는 출판을 염두하고 글을 쓰는 거다. 이 형은 한 번 'feel'받으면 짧은 시간에 몰아 쓰는 스타일이다. 형의 말에 의하면 A4 백 장을 하루 이틀 만에 쓸 수 있다고 했다. 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단다. 그렇게 쓰려면 혼자 있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글을 써서 SNS에 꾸준히 올려볼 생각이란다. 이 말에 내가 덧붙였다. SNS를 활용해 꾸준히 올리면 출판으로 이어질 기회가 더 자주 있을 거라고 했다. 내 주변에도 같은 경우가 꽤 있었다. 내 말에 종하형도 용기를 얻었단다. 며칠 전에는 연재할 소설을 썼다며 조만간 브런치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대화는 충분히 가능했다. 술을 마셨을 때는 술기운으로 대화를 이어갔었다. 술을 마실수록 술에 취해 횡설수설도 늘었다. 술자리가 끝나면 남는 게 없었다. 음료수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게 어색하기는 하지만 내용은 밀도가 높았다. 흐트러짐 없이 서로에게 할 말을 또렷이 전달했다. 술을 끊었기에 얻게 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다. 술 없이는 만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술이 생각을 명료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술로 인해 실수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만든다. 술을 끊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술자리를 통해서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대화도 분명 있다. 털어놓지 못한 고민, 용서를 구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술은 용기를 준다. 이때 술은 술로써 제 역할을 십분 발휘한다. 그렇지 않고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얼마든 진솔한 대화가 가능하다. 지난 2년 동안 술을 끊고 사람을 만나보니 그럴 수 있더라. 언제 어디서든 진심이 담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술을 끊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술을 마시지 않을 작정이다. 술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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