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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6. 2023

핑계 찾을 에너지라면 차라리 쓰겠다


토요일 아침, 일산 호수 광장에서 월드비전이 주최한 달리기 대회를 준비 중인 게 보였다. 검색해 보니 호수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참가자는 9시에 출발이었다. 나도 달리려고 옷을 차려입고 나왔다. 글을 다 쓰고 갔다가는 그들과 시간이 겹칠 것 같았다. 대충 마무리하고 달리러 갔다. 10킬로미터를 목표로 정했다. 1시간을 달려야 한다. 부지런히 뛰면 대회가 시작되기 전 완주하겠다 싶었다. 


토요일에도 현장은 일을 하지만, 비 예보 때문에 쉬기로 했다. 작업을 안 하면 안 한다고 보고해 달라고 감독관이 전날 말했다. 하필이면 2킬로미터를 지점에서 생각났다. 애매한 위치여서 계속 달렸다. 한 바퀴를 돌고 감독관에게 보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이제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멈출 비가 아니었다. 1킬로미터도 못 달리고 멈췄다. 비가 오는 데 행사는 제대로 하려나? 오래전부터 준비한 행사일 터다. 비가 온다고 달리지 않을 참가자들이 아닐 것이다. 기부를 목적으로 준비된 행사이고 기꺼이 참가한 이들이라면 비를 뚫고라도 달릴 게 분명했다. 목적이 분명하면 날씨는 중요하지 않다.


365일 글을 쓴다. 일기를 시작으로 서평, 에세이, 모집글, 정보, 원고 등 다양하다. 글의 성격은 달라도 글을 쓰는 목적은 다르지 않다. 어떤 종류의 글이라도 쓰는 나와 읽는 독자를 위해 쓰는 게 목적이다. 목적 없이 쓰는 글은 나는 물론 독자에게도 아무것도 줄 수가 없다. 그런 글은 글씨 연습이고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목적이 없었다면 365일 쓰는 게 불가능했을 테다. 목적이 있었기에 날이 좋아도,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덥고 추워도 쓸 수 있었다. 날씨뿐 아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도, 날씨 때문에 기분이 우울해져도,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도 글을 쓰는 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상처받았다고 쓰면 된다. 


10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보통 1시간 걸린다. 1시간 동안 비슷한 속도를 유지하려면 감정 기복이 없어야 한다. 괜한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 옆사람 따라잡겠다는 오기를 부려서도 안 된다. 어떤 경우든 평정심을 잃으면 페이스를 놓친다. 그래봐야 결국 자신만 손해다. 숨만 차고 힘만 빠져서 완주를 못한다. 1시간 동안 꾸준히 달리려면 어떤 순간에도 달리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을 따라잡는 경주도 아니고 기록을 깨겠다는 싸움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게 목적이다. 내가 정한 속도와 코스에 따라 달리면 된다. 그렇게 달리면 끝까지 달리지 못할 이유 없다.


건설현장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오면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다. 비나 눈은 건물의 품질과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근사한 설계도, 아무리 비용 절감을 목표해도 이 두 가지를 놓치면 원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 그러니 날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고 정해진 공사기간을 안 지킬 수 없다. 날씨까지 감안해 공사 기간을 정하는 게 보통이다. 날씨 때문에 늦어지면 휴일과 밤을 새워서라도 일정을 맞춘다.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할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매일 글 한 편 쓰는 게 별 것 아닐 수 있다. 글을 써야 하는 의미와 목적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목적이 분명하고 의미를 찾고 싶다면 매일 쓰지 않을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이 있다면 글을 쓰지 못할 이유 없다. 정말 글을 못 쓰게 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 몸이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그러니 적어도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어쭙잖은 핑계대려고 에너지 낭비하기보다, 당당하게 쓰는 게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다. 어떻게든 글 한 편 써내면 적어도 스스로에겐 당당해질 수 있을 테니까. 주변 상황 때문에 글을 못 썼다는 이유는 이유가 아닌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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