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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7. 2023

나 때문에 웰컴 간식 100인분


색다르게 준비해보고 싶었다. 나를 알릴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몇몇 분은 이미 볼펜으로 이름을 알렸다. 나도 볼펜을 선택하면 별다른 고민할 필요 없다. 이왕이면 기억에 남는 걸 해주고 싶다. 기억에 남을 만한 제품은 돈이 많이 든다. 적어도 100개 이상 주문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카테고리를 훑어도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건 비쌌다. 얼레벌레 3개월을 보냈다. 남은 일주일 안에 결정해야 했다.


4일 남겨두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았다. 자석 책갈피. 가격도 예산에 맞았다. 문제는 납기였다. 온라인으로 주문서를 남겼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제작에만 최소 열흘 걸린단다. 내 이럴 줄 알았다. 3개월 동안 여유 부리더니 결국 이 사단을 만들었다.


선택지가 없다. 볼펜을 맞추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볼펜이라도 하라고 우뇌에서 명령한다.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생각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스치는 게 있었다.


이른 퇴근을 감행했다. 나를 찾는 전화가 오지 않길 바라며 외곽순환도로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트레이더스. 다행히 연락은 없었다. 카트를 끌고 스낵코너로 갔다.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환영의 의미로 웰컴티를 낸다. 차와 함께 간단한 간식도 곁들인다. 웰컴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100인분이다. 손이 많이 가겠지만, 게으름 피운 대가다. 물론 아내와 딸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겁하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도움의 손길을 구해야겠다.


젤리, 초콜릿, 과자, 빵 등 7가지를 소분해 한 봉투에 담는다. 손은 많이 가겠지만, 정성이 묻어날 터다. 봉투 안에 담긴 간식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애쓴 내 가족과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아내와 딸이 고생한 보람이 있다. 게으름 피운 나 때문에 안 해도 될 수고를 했으니 말이다. 


매일 쓰고 몇 권의 책을 낸 덕분에 나를 작가라고 불러준다. 작가라는 호칭은 여전히 어색하다. 작가다운 실력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작가라면 책도 많이 팔아야 했을 텐데 이 또한 녹녹지 않다. 그렇다고 작가가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내 글을 쓰면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매일 내 글을 쓴다는 한 가지다.


지난 6월, 10월 21일로 사인회를 예약했다. 그 사이  8월에《직장 노예》가 출간됐고, 두 달이 지나고서 사인회를 갖는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어색하다. 자랑하는 걸로 읽혀도 어쩔 수 없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다. 대놓고 자랑하는 게 쑥스럽지만 그래도 용기 내 글을 쓴다.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작가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그동안 애쓴 나를 위한 일종의 보상이다. 이름을 알림으로써 그에 걸맞은 작가 되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아직은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져야 할 테다. 그런 의미로 이 기회를 활용하고 싶다. 


흔히 아는 유명 작가의 왁자지껄한 사인회는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자이언트'의 월례 행사다. 소속된 작가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다. 화면이 아닌 얼굴을 마주하고 친분을 쌓는 자리다. 맛있는 안주와 술도 마실 수 있다. 흥이 넘치는 이들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새로 입과 한 작가들의 각오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다. 한 마디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노래를 못 하면 장가를 못 가요"라는 가사가 있다. 나는 장가를 갔으니 노래를 못 해도 된다. 뒤풀이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전까지 모두 했었다. 노래, 춤, 악기 연주 등 다양했다. 나도 6월부터 준비해 온 게 있다. 노래는 아니다. 내 딴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잘할 수 있을지 4개월 내내 떨렸다. 이제 4일 남았다.


준비한 대로 못 보여줘도 괜찮다. 실수해도 이해받을 수 있다. 처음이니까. 함께하는 분들도 나에게 큰 기대가 없을 테다. 그래야만 한다. 준비한 대로만 하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 역할이다. 또 한 번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렇게라도 자기 합리화를 해야 덜 떨릴 것 같다. 이제 집에 가서 웰컴 간식 100인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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