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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20. 2023

내 안에 잠든 장점을 깨워라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주먹을 꽉 쥔다. 또 시작이다. 이 녀석의 변덕을 종잡을 수 없다. 어떤 날은 두어 시간 잠잠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초 단위로 변덕을 부린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벗어던지길 여러 차례. 이제는 익숙해질 것도 같은 데 그렇지 않다. 이유라도 알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더 답답하다. 그렇다고 버리자니 돈이 아깝다. 돈보다는 익숙함이 더 크다. 2년 넘게 들어온 음악을 끊을 수가 없다.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장비에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더 선명한 음질을 위해 내 딴에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다. 더 비싼 걸로 갈아타면 이 증상이 사라질까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화풀이하듯 주먹만 움켜쥘 뿐이다. 


2021년 5월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생전 듣지 않던 장르였다. 클래식을 들으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책에서 말했다.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무언들 못할까 싶었다. 바닷물에 낚싯대 던지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들었다. 얼마 뒤 귀에 착 감기는 음악을 발견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경쾌하고 애절하고 힘차고 부드럽고 아련하고 발랄하기까지 했다. 특히 노르웨이 출신 연주자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발표한 '모차르트 모멘텀 1785'앨범이 귀에 꽂혔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며칠 빼고 매일 들었다. 들어도 들어도 늘 새롭다. 구성이 다채로워 틀어놓고 집중하는 데 이만한 게 없었다. 글을 쓸 때, 강의안 만들 때, 일 할 때 등 노트북을 켜면 자동으로 이 음악을 틀었다.


처음에는 무선 이어폰으로 들었다. 귀에 쏙 들어가는 크기였다. 며칠 고민 끝에 음질이 뛰어난 놈으로 선택했다. 10만 원이었다. 오래 쓸 욕심으로 질렀다. 사람은 풍부한 경험을 통해 시야가 넓어진다. 음악도 그런 것 같다. 음악 애호가가 장비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여러 악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좋은 장비로 같은 음악을 들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욕심이 생겼다. 아직은 애호가 수준은 아니지만 듣다 보면 내 귀도 뚫릴 때가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작년 연말 현금에 카드 포인트까지 그러모아 15만 원짜리 헤드폰으로 갈아탔다. 귀를 덮은 채 전해지는 음은 귀속 이어 어폰보다는 더 풍성했다. 입체감, 울림, 소리크기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났다. 또 다른 신세계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손에 넣고 얼마 뒤부터 재생 중 끊김 현상이 발생했다. 그때는 헤드폰 문제라고 생각해 제조사에 애프터서비스를 받았다. 제조사도 기꺼이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줬다. 교환받은 제품에서도 똑같은 증장이 나타났다. 또 교환했다. 이번에는 괜찮을 거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두 번째 교환받은 제품도 제조사로 돌려보냈다. 제조사에서도 여러 실험을 통해 문제를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헤드폰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다. 나도 공감했다. 이 정도면 헤드폰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 짐작했다. 그래서 스마트폰 AS센터를 찾았다. 엔지니어 기사의 점검을 받았지만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원인이 없다고 봐야 할 테다. 불행히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몇 번의 끊김 현상은 계속됐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원인을 찾으면 해결할 방법도 나온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문제에도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직장을 아홉 번이나 옮긴 나에게는 꾸준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쉽게 싫증 내는 성격도 이직에 한몫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독서가 도움이 됐다. 한 권 두 권 읽으면서 꾸준함을 키웠다. 또 꾸준히 읽은 덕분에 새로운 직업도 찾았다. 직장인 말고 직업인이 되기 위해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실력을 쌓는 중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서 꾸준함은 저절로 따라왔다. 꾸준함만이 실력을 쌓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까지 잦았던 이직의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아서 실행에 옮겼다. 


제품이든 사람이든 문제가 있다는 건 일종의 단점이다. 사람들은 단점을 고쳐야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맞는 말이다. 단점을 고치면 분명 고치기 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을 고치는 게 음질 좋은 헤드폰 선택하는 것만큼 수월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 경우로 다시 돌아가 보면 꾸준함을 발견한 덕분에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설 자리르 잃게 됐던 것 같다. 이 말은 단점을 극복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우는 게 더 효과 있다는 의미이다. 단점을 고치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보다, 새 장점을 키우는 게 그나마 수월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분명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수많은 책에서 나처럼 실제로 효과 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헤드폰 끊김 현상이 시시때때로 생기지만 음악을 안 듣지 않는다. 보통 한 번 자리에 앉으면 2시간 이상 음악을 듣는다. 그동안 글 한 편 써내면 헤드폰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다. 설령 중간에 끊기더라도 참고 넘길 가치로 충분하다. 장점이 더 많다는 의미이다. 원인을 찾으면 좋겠지만 찾지 못한다 해도 헤드폰을 포기할 마음은 없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 더 좋은 헤드폰으로 실험해 볼 것이다. 스마트폰이든 헤드폰이든 어느 놈이 문제인지를 반드시 밝혀내고 말 테다. 끊기든 말든 잘 참고 글 한 편 써내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돈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더 비싸고 음질 좋은 헤드폰도 살 수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원인도 발견할 수 있기로 믿는다.   


단점이 드러나면 단점에만 집중하는 게 보통이다. 단점만 신경 쓰느라 장점을 놓치기도 한다. 단점을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 버리면 그만이다. 고치고 극복할 수 있는 단점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선을 돌려 장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헤드폰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장점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간혹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눈에 띌 것이다. 우리는 분명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믿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또한 훌륭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만 바뀌어도 태도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 장점과 단점도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각자는 장점이 많은 인간임에 틀림없다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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