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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21. 2023

글쓰기는 동사다

'삽'은 명사, '삽질'은 동사다. '망치'는 명사, '망치질'은 동사다. 글쓰기는 명사일까, 동사일까? 명사 글과 동사 쓰기가 붙어 명사일까? 아니면 '글을 쓰다'라고 해서 동사일까? 국어사전에는 '생각이나 사실 따위를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명사라고 표기되어 있다. 나는 '글쓰기'가 동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한때 나쁜 말로 상처 줬었다. 달라지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달라진 걸 보여줄 방법이 필요했다. 말수가 적고 살갑지 못해 애정 표현을 잘 못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알 수 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글로 적었다. 어떤 일이 있었고 내 감정은 어땠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하나하나 적었다. 적은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글쓰기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다. 아빠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글로 써 보여줬다. 글을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글쓰기는 동사다.   


이제까지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남들에게 없는 경험이다. 20대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직이 잦았다. 좋은 회사를 다니고 싶었지만 구해지지 않았다. 상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대책 없이 뛰쳐나왔다. 월급을 13개월 동안 못 받았다. 사람 만나는 게 들 서툴렀다. 실수하고 실패했던 경험을 글로 적었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누구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내 경험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글로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글쓰기는 동사다.


889일째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하고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게 한다. 어제 있었던 일은 기억으로 남는다. 오늘 할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건 지금 이 순간이다. 어제 기억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글로 쓸 때다. 글로 쓰면 오늘 할 일이 보인다. 실수한 장면을 글로 쓰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인다. 잘한 일을 글로 쓰면 무엇을 잘했는지 보인다. 복잡한 생각을 글로 쓰면 무엇이 문제인지 보인다. 눈에 보이면 알아챌 수 있다. 알아채면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글로 썼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글쓰기는 동사다.


글쓰기의 사전적 의미처럼 '글로 써서 표현'할 때 비로소 글쓰기 효과를 볼 수 있다.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쓰는 행위가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쓰는 동안 일어난다. 나의 단점을 글로 쓰면서 더 나아질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글로 쓰면서 타인을 도울 수 있다. 나의 생각을 글로 쓰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아챌 수 있다.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명사'는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다. 이미 완성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글을 쓰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과물도 내가 쓰는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물건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결론을 낼 수 있다. 글은 결코 어떤 틀에 의해 찍어낼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모양, 재료, 크기, 재질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글로 쓴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 심지어 우리 인생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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