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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8. 2023

아! @라 열받네, 글이나 써야겠다

주유소에서 도로로 들어서려고 깜빡이를 켠 캐스퍼가 보였다. 도로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캐스퍼 운전자는 마음이 급한지 서있는 차 옆으로 슬금슬금 붙었다. 멈춰 선 차는 틈을 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랑곳 않고 캐스퍼는 머리를 들이밀었다. 두어 대 뒤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캐스퍼 옆 라인을 보는 데 낯선 모습이 보였다. 주유구가 안 닫혔다. 덮개만 안 닫은 게 아니라 주유구 마개까지 열려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뚜껑 안 닫은 줄도 모를까?


기어코 머리를 들이밀어 도로에 올라선 캐스퍼 옆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 안 가 사거리 신호등이 보였다. 나는 빨간불에 멈춰 창문을 열고 알려주고 속도를 줄였다. 캐스퍼는 주황 불에도 아랑곳 않고 속도를 올려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주유구 뚜껑이 열린 채로. 캐스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살다 보면 내 정신이 아닐 때가 가끔 있다. 상사의 질책을 곱씹다가 횡단보도 파란불을 못 본다. 학교에 간 딸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으면 정신줄이 반쯤 나간다. 제품 하자로 대량 반품이 발생하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이럴 땐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된다. 아마도 캐스퍼 운전자에게 심각한 어떤 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똑같은 상황을 보고 운전이 미숙하다고만 할 수도 있다. 또 나처럼 운전자에게 갈급한 상황이 생겼을까 추측할 수 있다. 정확한 이유는 운전자의 말을 들어봐야 할 수 있다.


사람끼리 살다 보면 별일 다 생긴다. 원치 않는 비난을 듣기도 하고, 이유 없는 질투를 사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상대방을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오해는 추측에서 비롯된다. 이런 경우 대개 대화 몇 마디에 싱겁게 풀린다. 먼저 듣지 않은 탓에 괜한 오해와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한 꼴이다.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추측을 삼가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것조차도 의심을 품으라고도 말한다. 상대방의 설명이나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을 삼가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럴 만큼의 인내심이 없는 게 요즘을 사는 우리들이다. 보이는 대로 믿고 고민 없는 결정을 당연시 여긴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자신의 몫인데도 말이다. 


올바른 판단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으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행착오도 겪고 깊이 사색하고 많이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맞듯 그런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닐 테니까. 무엇보다 추측만으로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행동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사용한 경비 청구서를 제출했다. 당연히 다 인정받을 줄 알았다. 며칠 뒤 아무 이유와 설명 없이 몇 만 원이 차감된 채 결재 났다. 현장 근무로 인한 사정을 알아줄 거라 짐작했었다. 정작 내 사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 적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상대방도 추측만으로 몇 만 원을 차감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게 그가 해야 할 일이었을 테니까. 친절하게 설명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그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잠자코 지내면 조만간 이유를 알게 된다. 입이 무겁지 않은 사람이라 때가 되면 내 귀에 들어온다. 그러니 괜한 추측으로 에너지 낭비 말자.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겠지. 그리고 다시 관계도 회복되겠지.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어제 운전 중 눈에 들어온 장면이었습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두 문장으로 메모했었습니다. 그때 상황을 보여주고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글 한 편 완성했습니다.  메모해놓지 않았으면 기억에서 지워졌을 겁니다. 다시 꺼내 쓰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고민해 봅니다. 고민하다 보니 저의 태도에도 생각이 미칩니다. 며칠 동안 마음을 괴롭혔던 일을 곱씹어 봤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의 결론도 내렸습니다. 글을 쓴 덕분에 태도도 마음도 다시 새롭게 합니다. 사람끼리 살다 보면 다양한 일 겪습니다. 상처도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든 스스로를 챙기는 자신의 몫입니다. 


이때 가장 좋은 도구가 바로 글쓰기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있었던 상황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안정됩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못 본 것 안 보이던 게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불편했던 상황, 나를 괴롭히던 일에서 한발 물러나게 됩니다. 단번에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수련하듯 반복하다 보면 마음에도 근육이 생깁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조금 더 단단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라면 기꺼이 해 볼만하지 않을까요?





https://docs.google.com/forms/d/1SYVrTplML51BXo3YKEAU6cSgMnfmAsMphQquKRvpXPg/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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