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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08. 2023

독서와 글쓰기,
나이 먹는 게 두렵지 않다

5시 50분, 맥도날드에 자리 잡았다. 자릿값으로 지불한 드립 커피 한 잔을 두고 노트북을 켰다. 때마침 입구에 80살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들어온다. 곧장 카운터에 가서 주문한다. 이곳 직원도 익숙한 듯 주문을 받는다. 두 테이블 건너 자리를 잡는다.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벗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가방에서 신문을 꺼낸다. 허리가 반쯤 굽은 채 해시브라운을 먹으며 신문 읽는 게 들어온다. 글씨가 잘 안 보이는지 굽은 허리를 더 굽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어르신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에 이곳에서 신문을 읽고 있을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일까? 첫 장부터 천천히 읽는 모습이 익숙해 보인다. 아마도 긴 시간 신문을 읽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나이 들수록 육체는 노화되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주변에 대한 관심은 나이와 상관없다. 내 생각에 정말 늙는다는 건 주변과 세상에 관심 갖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과 소통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 소외되는 건 소통을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도 세상일에 관심 갖고 정보를 습득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 소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내 생각은 지극히 이상주의적 발상일 수 있다. 나조차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 대화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도 없다. 그들도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일에 관심 갖고 신문을 읽고 정보를 받아들여도 정작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관심을 꺼버린 채 산다면 더 고립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소통은 차치하더라도 스스로 깨어있는 수단으로 신문을 읽고 책을 읽는 노력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나이 들고 몸이 쇠약해져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선택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스를 읽고, 대화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원하는 지식을 검색으로 손쉽게 얻는 세상이다. 관심과 노력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요즘이다. 나이 불문 얼마든 가능하다. 중요한 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넘쳐나는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관심 갖지 않는다면 쓸모없다. 팔순의 어르신이 이 새벽에 신문을 읽는 이유도 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행동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깨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게 도움은 된다. 과학, 건강, 인문, 자기 계발, 경제 등 여러 분야 책을 통해 정보를 얻고 지혜를 배운다. 각각의 분야를 깊이 배우진 않았지만, 이제까지 주워들은 것들로 대화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물론 깊이는 없다. 설익은 수준이다. 그래도 이전의 나보다는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눈 감고 귀 막고 지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적어도 관심 갖는 분야도 있고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잘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그래서 더 안테나를 세우고 산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세상과 주변에 안테나를 세운다. 경험한 일, 누군가의 이야기,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을 글감으로 쓴다. 이러한 과정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관심 갖지 않으면 흘려보낼 것들이다. 글로 옮겨 적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그 안에 담는다. 내 생각, 감정, 가치관을 글에 담아 말을 건넨다. 내 글에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도 저마다 생각을 담아 글을 쓰면, 나와 결이 같은 글에는 나도 반응하니 말이다.  


나이 들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듯, 글도 얼마든 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마흔이 넘어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선택이 옳았다는 믿음은 확신이 되어간다. 내 주변에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러 작가를 봐도 그렇다. 그들에게는 읽고 쓰는 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그로 인해 더 다양한 계층을 만나고 더 폭넓게 소통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인 건 나이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가치 또한 높아진다는 점이다. 버릴 게 없다는 의미이다.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예전보다 많아진 요즘이다. 하지만 반대로 소통에는 더 소극적인 것 같다.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세상과 벽을 쌓고 지내는 듯 보인다. 굳이 소통하지 않아도, 세상에 관심 갖지 않아도 즐길 거리 시간 때울 거리가 많은 게 사실이다. 오로지 내가 관심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통을 왜 해야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걸로 충분하다 여긴다. 그런 삶이 어떠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원치 않는다고 변화를 막을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한 직업이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변화의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주변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 있다. 대체되지 않으려면 대체 불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 불가의 첫 번째 조건은 남들과의 차별성이다. 차별성은 호기심과 관심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역량을 개발하고 깊이를 더할수록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독서와 글쓰기, 이만큼 훌륭한 도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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