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Dec 18. 2023

준비해 간 명함을 세 장이나 건넸다

다작으로 유명한 한근태 작가, 50권 넘게 책을 냈지만 단 한 번도 출간 기념회를 갖지 않았다. 그 자리가 어색하다는 이유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 토요일 생애 첫 출간 기념회를 가졌다. 이유는 하나였다. 신간 《리프레임 - 인생을 다시 정의하라》을 이제 막 출판업을 시작한 '함성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대표와 인연으로 기꺼이 기념회를 갖겠다고 했다. 기념회는 또한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위한 자리라고 홍보했다. 한근태 작가와 인연도 있었고 '네트워크'라는 단어에도 관심이 갔다. 나도 두 가지 이유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행사가 진행된 장소는 신사동 '제로원'이라는 와인바였다.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다행히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잠깐 동안 서 있었다. 작가 소개와 축하 공연 뒤 10분간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남은 두 시간 동안 서 있을 수 없었다. 네댓 명이 앉는 테이블에 빈자리가 보였다. 이미 자리 잡은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앞사람과 옆 사람 번갈아 가며 눈을 마주치길 몇 번,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떤 연유로 이 자리에 왔는지 물었다.


맞은편에 앉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초밥 식당에서 근무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옆자리 20대 중반의 남자는 원래 형이 오기로 했던 자리를 대신 오게 됐다고 말했다. 옆자리 남자는 군대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됐고,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아서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맞은편 남자는 자기 계발을 위해 한 달에 예닐곱 권 이상 책을 읽고 꾸준히 글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한근태 작가와 인연을 설명하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책까지 냈다고 나를 소개했다. 우리 셋은 '자기 계발'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이 자리를 위해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이름 옆에 작가이자 코치라고 적었다. 어느새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이 되었다. 이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당당하게 밝히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앞과 옆의 남자에게 먼저 명함을 내밀었다. 이 직업을 갖고 처음 명함을 건네봤다. 6년 전 만든 명함은 여태껏 건넨 전 없었다. 스스로도 당당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디자인하고 내 이름에 자부심을 가진 명함을 당당하게 건넸다. 그들도 나를 처음과는 다르게 보는 눈치였다.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기 계발과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대화가 겉돌지 않았다. 맞은편 남자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내가 낸 책 제목을 물었다. 책 제목을 불러주니 검색했다. 제목을 보고는 꼭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옆자리 남자도 똑같이 말했다. 그때 내 가방에는 《직장 노예》가 두 권 있었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혹시 하는 마음에 아침에 나올 때 급하게 챙겨 넣었다. 잠깐 망설였다. 이 타이밍에 책을 건네는 게 맞을까? 이것도 인연이라 여기고 책을 꺼내 건넸다. 그들도 고마워했고 사인까지 요청했다.


요즘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방이 불편을 느낄 만큼 침묵을 지킨다. 여전히 말주변이 없다. 먼저 말을 건넬 만큼 용기가 없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오면 응대하는 수준이다. 오래전부터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었다. 마음대로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출간 기념회에서 용기 내 보기로 했다. 그 덕분에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고 책까지 선물했다. 다행히 공통 관심사로 모인 자리여서 가능했던 것 같다. 30여 명이 참석했지만 적어도 두 명에게는 나를 알리는 자리였다.


북토크 중 한근태 작가가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날의 내가 꼭 그랬다. 새로 만든 명함을 30여 장 들고 갔다. 그중 한 장은 한근태 작가에게, 두 장은 처음 만난 두 남자에게 건넸다. 그게 전부였다.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몇 장 더 건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책하지 않는다. 용기 내 시작했다는 게 더 의미 있었다 여긴다. 두 사람에게 나를 알렸고 그 둘을 통해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의미 있는 첫 발을 뗀 나를 칭찬한다.


변화와 성장을 바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한근태 작가가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나에게 없는 것들을 배우고 얻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도 더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장과 변화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이다. 가만히 있으면 기회만 날린다. 용기 낸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갖는다. 먼저 다가가는 게 여전히 익숙지 않지만, 그래도 더 용기 내 볼 것이다. 당당하게 명함 건넬 자신감이 생겼으니 더 들이대야겠다. 창대한 끝을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용기가 없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