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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29. 2023

363번째 오늘도 잘 살아냈다


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오늘처럼 그 해의 마지막 출근이었습니다. 기억 속 그날은 그다지 기분 좋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거래처에 돈을 주지 못해 몇 주째 시달렸었습니다. 더군다나 해를 넘기기 전 돈을 받아야겠다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수많은 거래처에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사장도 아닌데 사장처럼 굽신거렸습니다. 월급쟁이이기에 욕받이 또한 당연한 역할이었습니다. 시달리는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시간은 흘러줬고 퇴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족쇄가 채워진 양 회사를 나서는 두 발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운전대를 잡았지만 정신은 딴 곳에 가 있었습니다. 돈을 달라는 그들의 아우성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습니다. 차머리는 집으로 향했지만 마음은 갈피를 못 잡았습니다. 갈림길에 차가 설 때마다 핸들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기다릴 아내와 아이 생각에 차마 핸들은 돌리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차는 일산에 들어왔습니다. 집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 때마침 삼성전자 대리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각보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통장은 늘 비어있습니다. 신용카드 한도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꽉 채웠습니다. 그런데 무슨 정신으로 38만 원이나 하는 태블릿을 샀을까요?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면 사서는 안 됐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 행동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고 나중을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습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저질렀으니 수습해야 했습니다. 올바로 수습하는 방법은 태블릿을 산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8년 1월 1일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산 태블릿은 지금 제 손에 없습니다. 두 해 정도 동고동락했고, 두 딸의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손을 탄 탓인지 장렬히 전사에 책장 한 곳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놈이 그때 제 손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태블릿에 손때가 묻을수록 변화를 갈망했고, 하나씩 도전했습니다. 갈망이 제아무리 커도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때 묻은 태블릿이 익숙해지듯 달라져가는 제 모습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이전의 제 모습은 그렇게 조금씩 지워져 갔습니다.


'주마등'은 달리는 말이 있는 등불을 의미합니다. 등피가 없고 불빛이 강할수록 벽에 비친 말의 회전속도가 빨라집니다. 이는 마치 죽음을 직면했을 때 살아온 장면이 휙휙 지나가는 것과 비슷해 '주마등이 스친다'라는 표현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지난 6년이 주마등 스치듯 지나갑니다. 6년은 짧았지만 짧지 않았습니다. 포기가 빨랐던 제가 포기를 버렸습니다. 화만 내던 제가 귀를 열었습니다. 꿈이 없던 저도 꿈이 생겼습니다. 지난 6년은 이전과 다른 나를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변화는 더뎠지만 더디지 않았습니다. 마흔셋에 시작한 자기 계발은 해야 할 게 많았습니다. 책으로 시작은 했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늦은 나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참고 견뎠습니다. 그때는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꽃이 피기까지 한겨울을 견뎌내야 하듯 제 인생에도 봄이 오길 바라면서요. 기다림 중에도 응답하듯 간간이 기회가 왔습니다. 새롭게 찾은 재능 덕분에 어느새 책을 내고 강연과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표가 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변화해 오고 있었습니다.


해가 바뀌기 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마련입니다.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리며 어떤 한 해를 살았는지 되돌아봅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만큼 잘 보낸 이도 있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 온 이도 있을 겁니다. 과정만큼이나 결과도 중요하고,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합니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내가 과정에 충실했는지, 결과만 좇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얻었는지도 알게 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이다음 행동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와 성장을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6년 전 오늘 저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의지보다 본능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지금의 결과를 만들기까지는 오롯이 의지대로 이어왔습니다. 매일 책 읽기를 선택했고, 매일 글쓰기를 이어왔고, 일기장을 다시 꺼내 쓰고, 건강한 몸을 위해 체중을 줄이고 유지해오고 있고, 새벽 기상을 위해 술을 끊은 것 모두 제가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모두 옳았습니다. 그 덕분에 과거의 저를 지웠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옳고 그름은 결과가 알려줍니다. 결과는 과정에 따릅니다. 오늘은 과정입니다.


2023년 363일째 살아냈습니다. 363번의 '오늘'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에게 만족하시나요? 만족한다면 다행입니다. 그만큼 잘 살아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과 달라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보니 더 욕심이 생깁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일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아채기 위해 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제를 돌아볼수록 더 나은 내일이 그려집니다. 

저녁 9시 18분, 아침 6시에 시작한 글을 이제야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 열었습니다. 출근 전 끝내지 못해 하루 종일 이빨 사이에 낀 고기 마냥 신경 쓰였습니다. 회사 연말 회식도 하는 바람에 앉아있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술도 안 마셔서 더 조급했습니다. 여직원들 일어나는 편에 몰래 끼어 나와 겨우 시간을 냈습니다. 카페 문 닫기까지 30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오늘 쓸 글을 마무리합니다. 363번째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또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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