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저는 그렇게 지시한 적 없는데요.”
“소장님이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셨잖아요.”
“그리고 여기는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하신 거예요?”
“아니 이 부분도 어제 설명을 했잖아요. 여기서 여기까지 자로 재면 치수가 맞다니까요.”
상황은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 한 마디로 기름을 붓고 말았다.
“제대로 하신 거 맞아요?”
“내가 목수일로 30년을 했지만 이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 해도 너무 하시네. 내가 분명 설명했고, 소장님도 확인하신 내용을 이제와 아니라고 하고, 또 제대로 했냐고 따지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네요. 펜대 좀 잡고 있고 사람이 우스워 보이나 본데 저는 더 이상 못 합니다. 알아서 들 하세요.”
이틀 동안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 무거운 자재를 지고 나르며 열심히 완성해 놓은 작업물이었다. 경험이 미숙한 나로 인해 작업지시가 잘못 내려졌고, 그걸 미처 인지하지 못한 내 입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나이로 치면 아버지 뻘인 그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나도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있으면서 지금 같은 상황을 제일 걱정했었다. 나의 지시로 모든 공사는 진행된다. 모든 공사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면 재 공사를 하거나 몇 배의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또 현장은 수시로 변수가 발생한다. 변수에 맞게 작업지시를 못 내리면 이 또한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지시하는 나도, 지시받는 근로자도 늘 긴장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다 위 대화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눌렀던 긴장감이 폭발하고 간혹 성격이 거칠고 독단적인 근로자를 만나면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에 치우쳐 격앙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말 그대로 멱살잡이도 일어나곤 한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내 경우처럼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분의 말씀처럼 자신이 무신당한 기분을 느꼈다면 분명 내 말이 잘못된 것이다. 오랜 시간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을 그분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거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료할 수 있고 새살이 돋으면 흉터가 안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도, 치료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말은 내뱉기 전에 조심해야 한다.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게 말이다. 그게 상처가 된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상처가 된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진정성 담긴 사과의 말이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상처를 이해한 진심을 담은 사과의 말이 긁힌 마음에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다만 전적으로 사과를 받는 이의 마음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이런 마음은 강요에 의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내게도 마음의 짐을 남겼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앞뒤 사정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더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한 번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반장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해서 뜻하지 않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몇 시간 뒤 전화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다음 날 만나 어색한 미소 한 번 보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말의 '재 정의'는
‘말하기 전엔 혀가 무거울수록 좋고, 잘못 뱉은 말엔 혀가 가벼울수록 상처를 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