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마라톤 & 서울 마라톤 10km 완주
대회 전날, 저녁밥을 부실하게 먹었다.
컨디션 생각하면 그냥 자는 게 맞다.
그냥 자야 하나 뭐라도 먹어야 하나 고민이 이어졌다.
10시까지 고민했고 결국 배달 앱을 열었다.
못 보던 메뉴가 있다.
'제로 설탕 제육볶음 & 저당 밥'
무릎을 쳤다.
양심에 가책을 덜 느낄 것 같아 냉큼 눌렀다.
그렇게 고기 1.5인분과 밥 한 공기 먹고 11시 반에 잤다.
역시나 속이 부대껴 4시에 깼다.
이불속에서 1시간 반을 뒤척였다.
5시 반 알람을 들었지만 5시 45분에 이불 밖으로 나왔다.
늦었다.
고기를 먹지 말았어야 했나?
7시 20분, 종합 운동장 역에 내렸다.
역사 안부터 사람이 가득이다.
역을 빠져나오니 사람이 더 많다.
겉옷을 맡기고 출발선으로 이동했다.
사람들 틈에서 준비운동했다.
전날 연습으로 7킬로미터 뛰며 뭉쳤던 근육을 풀었다.
늘 하던 대로 했다.
괜히 대회라고 안 하던 짓 하면 탈 난다.
8시, 기록이 가장 빠른 A 그룹부터 출발했다.
공식 기록이 없는 D 그룹에서 출발했다.
종합운동장부터 잠실역을 끼고 가락시장역까지 왕복하는 코스다.
출발선을 통과하면서 한 가지만 생각했다.
"분위기에 들떠 오버 페이스 하지 마라."
호수 공원에서는 같이 달리는 거의 없었다.
여기서는 앞 옆 뒤 사람밖에 없다.
그러니 속도를 유지하는 데 애먹었다.
달리는 동안 유혹의 순간이 많았다.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나를 앞질러 가는 이들은 모두 나보다 젊었다.
괜히 젊은 사람 따라잡겠다고 객기 부렸다가는......
그래도 결승선을 2킬로미터 남겨놓고 속도를 올렸다.
1킬로미터 남았을 땐 맞바람이 세다.
몸이 휘청였다면 거짓말이고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조금 빨랐을 것 같다.
아마도 막바지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전날 먹은 고기 덕분인 것 같다.
먹길 잘했다.
공식 기록 58분 11초.
55분 안에 들어오는 게 목표였다.
그래도 기존 최고 기록에 맘먹는 시간이었다.
첫 공식 대회에 이 정도 성과라 다행이다.
순위도 나쁘지 않다.
마흔여덟에 2만 명 중 상위 35% 실력이라니.
대견하다.
10킬로미터 1시간 안에 뛰는 것도 버거운데 33분에 뛴 사람은 뭐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날 법한 데 접어두기로 했다.
가랑이 찢어지기 전에 심장부터 터질 거다.
앞으로도 기록 단축에 의미를 두고 달려야겠다.
조만간 다른 대회에도 출전해 보고 싶다.
역시 함께 달려보니 달리는 맛이 다르다.
오며 가며 재미있는 구경도 제법 했다.
무엇보다 부부가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번갈아 밀며 달렸는데도 나보다 빨리 도착하더라.
역시 부모는 위대하다.
그 아기는 오늘 대회를 기억 못 할 것이다.
그래도 커서는 엄마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겠지.
나도 바람이 있다면,
두 딸도 이렇게 달린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올가을에는 하프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