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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21. 2024

글쓰기는 배출이다

된장은 묵힐수록 깊은 맛을 내지만, 똥은 고약한 냄새와 가스를 만든다. 이때 만들어지는 가스는 두통, 식욕 저하, 심지어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선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채웠으면 역할을 다한 찌꺼기는 매일 배출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한 장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신호를 보낸다. 신호에 맞춰 배출해 주면 발걸음 가볍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어쩌다 때를 놓치면 숙변이 만들어낸 가스 공격을 다음 신호가 올 때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 불편한 동거가 이어진다.


묵히지 말아야 할 게 또 하나 있다. 생각이다. 생각은 오래 할수록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생각이 얕은 것보다 깊은 게 그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이 태도이니 말이다. 한 분야를 오래 연구한 이들에게서 전해지는 위엄이 생각의 깊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수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글로든 말로든.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진다. 나를 술자리에서 먼저 만나면 말이 많은 사람인 줄 안다. 정작 술이 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말이 없어진 나를 보면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또 착각한다. 생각이 많아서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을 잘 못해서 입을 닫는 것뿐이다. 술은 이런 나에게 용기를 준다. 한 마디로 객기를 부리는 거다. 그러니 술자리에서 하는 말도 그다지 깊이 있지 않다. 대개는 개똥철학이다. 내가 맞니 네가 맞니 식의 근거도 논리도 부족한 그저 말싸움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아마 그때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던 때였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가족과 잘 지내는 방법은 없는지,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당연한 것들에 질문도 답도 찾지 않았다. 그러니 그저 그런 매일의 반복이었다. 더 나아지려면 제일 먼저 생각부터 했어야 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때 만약 제대로 생각하고 살았다면 후회가 덜 남은 시간이었을 거다. 또 술자리에서 소모적인 대화나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도 안 했을 거다. 그때 왜 생각 없이 살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7년 전부터 생각을 하고 사는 중이다. 여러 생각 중 단연 핵심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 곧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직업, 가족, 관계, 비전 등 각각의 것들을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찾으면 그게 곧 원하는 삶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생각을 7년 전에 시작했고 여전히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내는 중이다.


만약 그때 시작한 생각을 생각으로 묵혔다면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을 수 있다. 생각은 오래 할수록 망설이게 할 뿐이다. 생각이 생각을 통제한다. 다행히 수시로 생각을 글로 내뱉었고 비워진 자리는 다시 새로운 생각으로 채웠다. 생각한 걸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도전'한다. 도전을 통해 우리는 변화를 경험한다. 변화를 경험하면 생각만 할 때보다 손에 쥐는 게 많다. 실패를 통해 다시 도전할 방법도 고민해 볼 기회를 얻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생각을 너무 깊이 하는 건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는 이런 글이 있다. "생각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체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담아두기만 하면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차 정신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꾹꾹 눌러두었다가 한꺼번에 터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능숙하게 생각과 감정을 해소해야 한다.


하루 한 번 장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아야 변비를 예방할 수 있다. 변비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다. 생각도 수시로 배출해야 한다. 아쉽게도 생각은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게 글쓰기이다. 매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을 글로 써서 배출하는 거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각을 채워 넣는다. 싱싱한 채소 과일을 많이 먹으면 몸에 생기가 돌고 건강해진다. 마찬가지로 매일 새로운 생각을 채우면 삶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지 않을까? 그 시작이 글쓰기를 통한 생각의 배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https://docs.google.com/forms/d/1vp7NafBv7Gdxi3xN7uf0tr1GV-aPT5lbsIZMryYnOlY/edit?usp=drives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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