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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22. 2024

글 쓸 때 버려야 할 한 가지

그 말은 왜 해가지고 듣는 사람 기분 잡치게 하지? 나도 눈치가 있는데. 작년에 승진 누락시키면서 내년에 보자고 했던 것도 자기네 들이었다. 그때도 승진에 '승'자도 내가 먼저 꺼내지 않았었다. 올해도 가만히 두고 봤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승진이라 별 감흥 없었다. 결국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며칠 뒤 관리이사가 조용히 불러 말했다. "상무님이 애 많이 썼다." 무슨 애를 썼다는 거지? 대상자가 아니었는데 억지로 끼워 넣었단 말인가? 안 들어도 될 말을 들으니 기분 제대로 잡쳤다.


나도 내 능력을 잘 안다. 나는 기분 좋게 승진시켜 줄 만큼 능력 뛰어난 직원이 아니다. 나이가 차니 아랫사람 생각해 적당한 때 승진 시켜야 하는 그런 직원이다. 20년 가까이 사회생활하면서 나름 내 분수는 파악했다. 그래서 직급에 욕심내지 않는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도 차고 넘치는 데 나이만 많다고 우선권을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런다고 들어줄 회사도 아닐 테지만. 직장을 여러 곳 옮기며 주어지는 직급대로 받아들였다. 그에 맞게 능력껏 일하는 게 인생의 모토였다. 받는 만큼만 일하자였다.


욕심도 없고, 야망도 없었다. 스스로를 너무 잘 알아서다. 욕심부린다고 탁월해지지 않을 것이고, 야망을 품는다고 죽을 만큼 노력할 끈기나 각오도 없었다. 직장은 그저 생계유지 수단이었다. 일한 만큼 번 돈으로 가정을 꾸리는 게 최선이었다. 다만 잘리지 않을 만큼만 능력껏 일하자는 양심은 있었다. 이걸 양심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말의 양심 탓인지 자만심은 없었던 것 같다. 욕심부려 야망도 품었다면 아마 어느 위치에 올랐을 때 자만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 자리까지 가보지 않아서 짐작만 할 뿐이다. 


성공한 사람 중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더러 있다. 여러 이유 중 자만심도 빠지지 않는다. 성공에 도취되면 타인의 말이 안 들린다. 경계심도 사라진다. 비판도 무시한다. 한편으로 예민해진다. 가진 걸 잃지 않기 위해서다. 성공을 쫓을 때와는 반대 행동이다. 흔히 초심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공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 나보다. 영혼을 갉아 넣어 이룬 성공을 어떻게 한순간에 잃는지 의아하다. 어쩌면 성공을 바란다면 성공만 쫓을 깨 아니라 성공 이후의 태도부터 배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승진도 일종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단계씩 성취해 가는 과정이다. 마지막에 닿고 싶은 곳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승진은 그곳까지 가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인 건 맞다. 그러니 승진이라는 성공의 단맛을 즐기기보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자만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승진할 깜냥이 안 되는 줄 잘 아는 나는 다행히 자만심과는 거리를 뒀다. 누구는 시시한 삶을 산다고 혀를 찰 수 있다. "그러라 그래." 나는 주제 파악 덕분에 자만심 때문에 나락에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직장인의 승진 욕심은 경력과 경험이 쌓이면서 자란다. 웃기게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이와는 반대이다. 평생 글을 쓰지 않던 사람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없던 욕심이 생긴다. 내가 봐도 내 글은 대단해!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그래,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면 또 잘 쓴다니까! 내가 그랬다. 멋모르고 시작한 글쓰기였다. 하루 이틀 쓰면서 자뻑에 빠졌다. 난생처음 쓰는 글이었지만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때는 용기인 줄 알았다. 용기라고 포장했던 거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자만심이었다.


직장에서 잘못을 지적받는 건 유쾌하지 않다. 내가 쓴 글이 지적받는 건 그보다 더 불쾌하다. 유난히 날이 선다. 악의적인 비판에는 날을 세우는 게 맞다. 반대로 고칠 부분을 지적받는 건 공부다. 받아들이면 그보다 좋은 공부가 없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감정은 널뛴다. 심하면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글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이 곧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알려주는 매뉴얼이 된다. 기꺼이 받아들일 때 말이다.


만약 이런 비판이 불편해서 외면한다면 실력은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만심만 빠르게 자리 잡는다. 귀를 막고 눈을 닫은 결과다. 그렇게 쓰는 글이 점점 더 나아질 리 없다. 결국 어느 때가 되면 스스로도 한계에 부딪친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쓰지 하며 스스로 포기한다. 글쓰기만큼은 성공이라는 정상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이전 글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라도 더 나은 표현을 찾는 것이다. 수많은 대가들이 노년에 쓴 글에도 만족해하지 못하는 게 이를 말해준다. 그러니 자만심은 애초부터 생길 수 없는 감정이다.


직장에서는 이미 주제 파악이 끝났다. 이대로 가진 역량 것 퇴직할 때까지 한 몸 바칠 예정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다르다. 7년째 썼지만 여전히 실력 미달이다. 실력을 결정짓는 정해진 값도 없다. 그저 남의 말에 귀를 열고 받아들이며 스스로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는 긴 투쟁이다. 타인과 비교가 아닌 오롯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도 쓰는 것뿐이다. 오늘 썼으면 적어도 오늘은 승자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내일 또 쓴다. 내일도 승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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