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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25. 2024

같은 주제도 다르게 써보는 글쓰기

'필사즉생' 필사하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지난주부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보는 중이다. 손에 잡히는 책에서 생각이 멈춘 문장을 옮겨 적고 생각을 적는다. 글쓰기 연습으로 이만한 게 없다. 글감을 고민할 필요 없다. 필사 문장이 주제다. 주제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을 적으면 한 페이지 금방 채운다. 앞서 읽었을 땐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문장이다. 글로 옮겨 적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과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생각 쓰기라고 말한다. 생각을 쓰면서 내 생각을 알아채는 것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변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생각에 따라 가치관과 관점도 달라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와 1년 전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달라진 걸 알 수 있는 건 내가 쓴 글을 통해서다. 분명 같은 사람이 쓴 같은 주제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내용과 통찰, 관점이 변한다. 누구도 예외 없다. 다만 그걸 알아채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일 뿐이다. 말은 내뱉는 순간 사라지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이미 쓴 글과 지금 쓴 글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책을 출간하기까지 원고를 셀 수 없이 고친다. 읽을 때마다 고칠 부분이 보인다. 어제 고친 문장도 오늘 보면 또 고칠 게 보인다. 문장만 고치지 않는다. 1장에 썼던 내용도 5장을 마치고 다시 읽으면 고칠 게 보인다. 구성을 바꾸거나 단락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새로 쓰기도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은 좋아지지만 작가에게는 그만큼 힘이 든다. 물론 더 좋은 책을 쓰기 위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 처음과 달라진 생각을 점검하고 그로 인한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도 꼭 필요하다.


생각이 달라지는 데 경험만 한 게 없다. 둘 이상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를 낳을 때는 두 번 다시 아이를 안 낳겠다고 다짐한다. 갓난아기를 키우면 뱃속에 있을 때가 더 나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다시 둘째를 낳고 셋째로 이어지기도 한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출산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울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서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출산의 고통도 잊게 한다. 


글 한 편 쓰는 것조차 출산에 비유하는 사람 있다. 산통에 비교할 건 아니지만 나름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기는 하다. 아무리 글을 오래 쓴 이들도 백지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는 다르지 않다. 그래도 매일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한다. 그 이유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쓰는 글은 어제 쓴 글과는 다르다. 또 한 달 전 나와 1년 전 나도 다르다. 달라진 내가 쓰는 글이니 당연히 다르다. 그 다름이 주는 즐거움에 기꺼이 백지의 공포와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은 새벽에 읽은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 속 한 문장에서 시작했다. 7시부터 글을 채웠다. 8시 40분까지 마무리 짓지 못했다.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해 애먹었다. 점심을 넘겨도 여전히 진도가 안 나갔다. 앞의 내용도 허술하고 이어질 글도 매끄럽지 못했다. 쥐어짜도 글이 안 써졌다. 퇴근 전에 마무리 지으려고 일하다 말고 다시 열었다. 눈치를 보며 한 글자씩 적는다. 토막 난 생각을 붙여가며 한 문장씩 이어간다. 반나절 사이에도 생각은 수시로 변했다. 


수많은 퇴고 끝에 내 책이 세상에 나오면 눈물 날 만큼 기쁘다. 다시는 애 낳지 않겠다는 다짐은 갓난아기의 미소 한 방에 무장해제된다. 백지의 공포도 마침표를 찍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만가지 생각에 갈팡질팡 중심 잡지 못해 애를 먹어도 결국 글 한 편 써낼 때가 온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분명 전에 쓴 글보다는 적어도 한 단어 한 문장은 나아지기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정성과 노력, 고통을 이겨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글이 나아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1년 전 5년 전 10년 전의 나는 오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오늘 글 한 편 쓰겠다고 별의별 고생을 다해 근근이 썼다면 적어도 1밀리미터는 전진했다. 내일도 마찬가지로 1밀리미터 더 전진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움직임도 시간이 쌓이면 가랑이 찢어질 정도가 되어있다. 그러니 매일 글 한 편에 정성을 다하면 1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때의 생각도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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