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즉생' 필사하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지난주부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보는 중이다. 손에 잡히는 책에서 생각이 멈춘 문장을 옮겨 적고 생각을 적는다. 글쓰기 연습으로 이만한 게 없다. 글감을 고민할 필요 없다. 필사 문장이 주제다. 주제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을 적으면 한 페이지 금방 채운다. 앞서 읽었을 땐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문장이다. 글로 옮겨 적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과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생각 쓰기라고 말한다. 생각을 쓰면서 내 생각을 알아채는 것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변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생각에 따라 가치관과 관점도 달라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와 1년 전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달라진 걸 알 수 있는 건 내가 쓴 글을 통해서다. 분명 같은 사람이 쓴 같은 주제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내용과 통찰, 관점이 변한다. 누구도 예외 없다. 다만 그걸 알아채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일 뿐이다. 말은 내뱉는 순간 사라지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이미 쓴 글과 지금 쓴 글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책을 출간하기까지 원고를 셀 수 없이 고친다. 읽을 때마다 고칠 부분이 보인다. 어제 고친 문장도 오늘 보면 또 고칠 게 보인다. 문장만 고치지 않는다. 1장에 썼던 내용도 5장을 마치고 다시 읽으면 고칠 게 보인다. 구성을 바꾸거나 단락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새로 쓰기도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은 좋아지지만 작가에게는 그만큼 힘이 든다. 물론 더 좋은 책을 쓰기 위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 처음과 달라진 생각을 점검하고 그로 인한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도 꼭 필요하다.
생각이 달라지는 데 경험만 한 게 없다. 둘 이상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를 낳을 때는 두 번 다시 아이를 안 낳겠다고 다짐한다. 갓난아기를 키우면 뱃속에 있을 때가 더 나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다시 둘째를 낳고 셋째로 이어지기도 한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출산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울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서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출산의 고통도 잊게 한다.
글 한 편 쓰는 것조차 출산에 비유하는 사람 있다. 산통에 비교할 건 아니지만 나름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기는 하다. 아무리 글을 오래 쓴 이들도 백지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는 다르지 않다. 그래도 매일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한다. 그 이유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쓰는 글은 어제 쓴 글과는 다르다. 또 한 달 전 나와 1년 전 나도 다르다. 달라진 내가 쓰는 글이니 당연히 다르다. 그 다름이 주는 즐거움에 기꺼이 백지의 공포와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은 새벽에 읽은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 속 한 문장에서 시작했다. 7시부터 글을 채웠다. 8시 40분까지 마무리 짓지 못했다.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해 애먹었다. 점심을 넘겨도 여전히 진도가 안 나갔다. 앞의 내용도 허술하고 이어질 글도 매끄럽지 못했다. 쥐어짜도 글이 안 써졌다. 퇴근 전에 마무리 지으려고 일하다 말고 다시 열었다. 눈치를 보며 한 글자씩 적는다. 토막 난 생각을 붙여가며 한 문장씩 이어간다. 반나절 사이에도 생각은 수시로 변했다.
수많은 퇴고 끝에 내 책이 세상에 나오면 눈물 날 만큼 기쁘다. 다시는 애 낳지 않겠다는 다짐은 갓난아기의 미소 한 방에 무장해제된다. 백지의 공포도 마침표를 찍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만가지 생각에 갈팡질팡 중심 잡지 못해 애를 먹어도 결국 글 한 편 써낼 때가 온다. 그렇게 완성한 글은 분명 전에 쓴 글보다는 적어도 한 단어 한 문장은 나아지기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정성과 노력, 고통을 이겨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글이 나아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1년 전 5년 전 10년 전의 나는 오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오늘 글 한 편 쓰겠다고 별의별 고생을 다해 근근이 썼다면 적어도 1밀리미터는 전진했다. 내일도 마찬가지로 1밀리미터 더 전진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움직임도 시간이 쌓이면 가랑이 찢어질 정도가 되어있다. 그러니 매일 글 한 편에 정성을 다하면 1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때의 생각도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을 테다.
https://docs.google.com/forms/d/1vp7NafBv7Gdxi3xN7uf0tr1GV-aPT5lbsIZMryYnOlY/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