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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26. 2024

욕망이 줄어들면 글쓰기가 행복해진다

매일 한 잔 이상 마시던 커피를 끊는 중이다. 대신 민트 티를 마신다. 커피는 기계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뒤 뜨거운 물에 따라주면 바로 마실 수 있다. 민트 티는 뜨거운 물에 5분 정도 우려내야 제맛이 난다. 커피는 식을수록 제맛을 잃는다. 민트 티는 식어도 처음 맛과 큰 차이 없다. 내 생각에 5분의 기다림이 주는 차이지 않을까 싶다. 제시간 뜸을 들인 밥이 제맛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서두르면 설익은 밥을 먹게 된다. 밥뿐이 아니다. 세상 일도 마찬가지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서둘러서 얻는 건 실망이나 실패뿐이다.


싫어하는 한 가지는 도로 위 정체다. 정체 시간을 피해 출퇴근한다. 새벽에 출근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차가 없는 도로에서는 속도를 낸다. 그렇다고 운전을 거칠게 하지 않는다. 가끔 자기만의 속도로 달리는 차를 만난다. 뒤차가 오든 말든 앞차가 있든 없든 규정 속도 이하로 달리는 차다. 이런 차는 피해 가는 게 상책이다. 왜 저러냐고 답답해하며 앞지른다. 그대로 계속 속도를 내면 좋겠지만 얼마 못 가 교차로 신호에 멈춘다. 잠시 뒤 앞지르기했던 차가 옆에 선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서두른 나만 괜히 겸연쩍다.


평일에는 단골 샐러드 매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한결같이 탄단지 샐러드. 카드만 주면 알아서 결재하고 준비해 준다. 2인용 테이블이 6개 있는 매장이다. 가끔 손님이 몰릴 때 있다. 매장이 바쁠 땐 꼭 주문도 많이 들어온다. 직원 두 명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듯 보인다. 이런 날은 당연히 음식도 늦게 나온다. 간혹 내 순서를 까먹는 경우도 있었다. 바쁜 게 눈에 보이니 따지지도 못한다. 안 따지는 게 도와주는 거다. 잠자코 기다리는 사이 음식이 나온다. 기다려 준 게 고마웠는지 단호박 무스 한 스쿱이 서비스다.


책 쓰기 강의를 시작한 지 1년째다. 그 사이 무료 특강을 13번 진행했다. 첫 특강에는 개업 빨에 지인 찬스까지 10여 명이 들었다. 당연히 정규 과정을 신청한 수강생은 없었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특강은 계속됐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특강을 듣는 사람도 줄었다. 어떤 달은 신청만 하고 한 명도 안 들어왔었다. 매달 3~5명 근근이 이어왔다. 사정이 어떠하든 계속했다. 다행히 1월에 정규 강의 1호 수강생을 받았다. 기다림의 대가였다. 실망감에 실패라 여겨 멈췄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멈추지 않길 잘했다.


차가 없는 도로에서 속도 내 달리는 것, 손이 바쁜 식당에서도 순서를 기다리는 것, 포기하지 않고 무료 특강을 계속한 건 일종의 욕망 때문이다. 빨리 가고 싶은 욕망, 기다리더라도 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겠다는 욕망,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망. 욕망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다. 욕망의 크기에 따라 더 빨리 더 높은 곳에 닿는다. 근사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은 아니어도 저마다의 욕망의 쫓아 각자의 삶을 사는 게 우리다. 욕망 없이 사는 사람 없다고 감히 말한다.


욕망이 꼭 바라는 결과만 가져다주지 않는다. 서두르다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기다리지 못해 내 순서만 재촉하면 서비스는 둘째치고 밉상이 되고, 수강생이 안 들어온다고 포기하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나았을 수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섣불리 판단하고 뛰어들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자질, 능력, 심지어 인성까지도 의심받을 테니까. 중요한 건 욕망은 쫓되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야 한다. 실패든 실망이든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욕망이 줄어들수록 행복이 커진다'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살면서 필요한 욕망을 줄일수록 행복해지는 방법도 배운다. 진리나 다름없다. 이 말은 글쓰기에도 마찬가지다. 잘 쓰고 싶은 욕망은 분명 좋은 동기이다. 하지만 욕망만 앞세우면 시야가 좁아진다. 내 글이 최고다, 내 글을 모두가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믿는 대로 잘 쓰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면 그 또한 바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불행히도 믿는 대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보이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내 글에 대해 냉정해지지 못한다. 결국 원치 않는 반응에 낙담하고 만다.


민트가 제맛을 내기 위해 우려 나는 시간 5분, 내가 먹을 샐러드가 만들어지는 시간, 사람들이 나의 가치를 알고 찾아와 주는 시간, 모두 알맞은 때가 있다는 말이다. 글 한 편도 우려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관심을 바라며 성급하게 써낸 글은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반면 느긋하게 숙성하고 고치고 또 고친 글은 그만큼 맛을 내는 법이다. 욕망을 줄이면 더 행복해지는 이치이다. 이 글을 쓰며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시간을 이겨낸 된장이 깊은 맛을 낸다는 걸 기억한다. 생각하고 기억한 대로 꾸준히 내가 행복해지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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