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by 김형준

신이 함께할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여자에서 엄마가 되려면 아빠의 존재도 필요하다. 그래서 신이 함께할 수 없어서 부모를 보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 아닐 테니까. 아이를 키우는 데 엄마와 아빠의 역할은 다르다. 각자의 역할을 잘 해냈을 때 신도 뿌듯해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서툴고 실수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이를 바로잡아가는 과정에서 더 건강한 가정으로 거듭난다. 그러기 위해 엄마의 모성 플러스 아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있다.


몸으로 놀아주는 걸 못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나를 내려놓지 못했었다. 장난감으로 음식 만드는 놀이를 하면 같이 만들지 않고 맛만 보는 역할을 했다. 놀이터에서 놀 때는 흙이라도 묻을까 싶어 먼저 뒷걸음질 쳤다. 키즈카페에서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여 제대로 놀아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다. 한 번쯤은 나를 내려놓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느 때부터 놀아달라는 말도 안 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기도 했고, 그사이 아이들도 내 손이 필요 없을 만큼 커버렸다.


몸으로 놀아주는 때가 아빠와의 친밀감을 높이는 시기이다. 이때를 잘 보내고 나면 사춘기 이후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고 더 깊어지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춘기를 보내느냐에 따라 점점 더 멀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개는 어릴 적 친밀감은 나이 들어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때를 놓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간혹 그 시기를 놓쳐 힘겹게 보내기도 하지만 회복이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다. 아빠들은 남다른 능력 한 가지 이상을 갖고 있고 그걸 활용해 보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큰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춘기가 왔었다. 다행히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내가 체감한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밖에서 지켜보기에는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춘기가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나를 찾지도 않았다. 아마 내 역할을 사춘기 이전에 했었던 것 같다. 몸으로 놀아주는 시기는 놓쳤지만 궁금해하는 걸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어떤 유대감 같은 게 생겼을 수 있다. 사춘기를 보내면서 적어도 나와 거리 두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인 큰딸은 요즘도 수학, 영어 학원은 빼놓지 않고 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학원에서도 인정하는 에이스가 되었다. 이제까지 봤던 시험에서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놓치지 않았다.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건 내 역할도 있었던 것 같다. 5학년 때 중학교 1학년 수학을 선행했다. 때때로 안 풀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찾아와 물었다. 수학을 중학교 2학년 때 포기한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부족해도 보태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 풀이 과정을 함께 했다.


아이가 막막해하는 문제는 나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정답은 모르지만 같이 고민해 주는 건 해줄 수 있었다. 문제를 몇 번이고 읽으며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씩 던졌고 곧잘 받아내며 나름대로 풀이를 했다. 함께 머리를 맞댄 문제가 풀리자 아이도 신기해했다. 아마 그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던 것 같다. 조금씩 난이도도 올라갔다. 다행히 고등학교 수학을 시작하고는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두고 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요즘도 여전히 수학 점수는 상위권이다.


수학, 영어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다행히 국어에는 특화되었다. 며칠 전 국어 수행평가로 소설 한 편 쓰는 과제가 있었다. 반 페이지만 채우고 나머지 반을 고민하고 있었다. 써놓은 글을 읽고 나머지 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줬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시 나머지 반을 채웠다. 새벽 2시까지 쓴 모양이었다. 출근하려고 4시 반에 일어났더니 카톡으로 다 쓴 글을 보내놨다. 내가 준 아이디어를 제법 잘 활용해 그럴듯하게 썼다. 간단하게 피드백을 줬고 무사히 수행평가를 마쳤다고 했다. 7년 동안 글 쓴 보람이 있었다.


딸을 키우니 살가운 스킨십은 낯설다. 대신 마음의 벽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두 딸이 나를 불편해하지는 않는다. 또 고집과 불통인 아빠도 아니다. 언제든 물어오면 답을 찾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도를 넘는 부탁이 아닌 이상 아내에게 혼나지 않는 선에서 들어준다. 엄마에게 시달린 영혼을 아빠에게서 위로받는다. 다행히 의도한 대로 내가 아이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다. 더 자라면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온다. 더 좋아질지 더 최악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 그나마 아직은 괜찮은 사이로 지내는 중이다.


아빠들은 항상 바쁘다. 바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바쁜 만큼 가족에게도 소홀해진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지 않은 아빠는 없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때를 놓친다. 한 번 지나간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관계도 그런 것 같다. 부녀 사이도 한 번 멀어지기 시작하면 회복하기까지 꽤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아빠가 먼저 노력해 볼 필요 있다. 잘하는 걸로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해 보는 거다. 내가 설익은 글재주로 큰딸과 소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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