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는 불빛이 있어야 주변이 보일 만큼 어둑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니 주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맞은편에 관리사무소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보입니다. 며칠 뒤 변압기 교체가 있을 거랍니다. 한여름 전력 사용량이 치솟을 걸 대비해 증설한다는 안내입니다. 해마다 이어지는 기록적인 더위에 변압기 고장이 잦았습니다. 그때마다 반강제로 찜질을 해야 했습니다. 전기가 나가니 그제야 전기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얼마나 더울지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 같네요.
도로 위에 올라서니 도로 양옆으로 벚꽃이 활짝 폈습니다. 어둑어둑해도 벚꽃인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가는 길마다 나란히 서서 출근길을 꽃길로 만들어 줍니다. 군데군데 개나리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날이 밝으면서 꽃 색깔이 더 도드라집니다. 가는 길을 멈추고 사진으로 담고 싶을 지경입니다. 점심 먹으러 나올 때 주변을 유심히 봅니다. 매일 조금씩 풍성해지는 꽃잎이 봄이 다가오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다행입니다. 매일 걷고 운전하며 주변에 핀 꽃을 볼 수 있어서요. 올해도 봄의 풍경을 두 눈에 담습니다.
새벽에 출근하는 이유는 운전하는 시간이 줄기 때문입니다. 출퇴근 정체로 유명한 남부순환도로를 이용해야 회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까닥 때를 놓쳤다가는 1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차가 없는 도로에서 속도를 내 운전하는 게 시간을 버는 겁니다. 오늘따라 '초보 운전'딱지가 붙은 차가 여럿입니다. 그것도 내 앞에서만 자기만의 속도로 갑니다. 틈을 봐 앞으로 질러갑니다. 멀어지는 앞차를 보며 나도 저랬었지 싶습니다. 아마도 그때 내 뒤를 따르던 누군가의 배려 덕분에 덜 곤란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사히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잠깐 짬이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습니다. 릴스에 개그맨 김경식 씨가 유퀴즈에 출연한 영상이 뜹니다. 전선을 잘못 건드려 감전 사고가 날뻔했다고 합니다. 이 상황을 문자로 동료 개그맨 이동우 씨에게 보냈고,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라고 답장을 받았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영상입니다. 꼭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매일 살아가는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탓에 고마움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다시 돌아봤습니다.
출근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한 단락씩 적었습니다. 어떤가요?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집 앞 현수막을 보고 든 생각을 적었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꽃을 본 느낌을 썼습니다. 내 앞에 느리게 가는 초보운전 운전자의 마음을 헤아려 봤습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을 보고 느낀 걸 표현했습니다. 눈에 보인 것들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고 생각이나 느낌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각각의 단락에 살을 더 붙이고 메시지를 다듬으면 제법 근사한 글 한 편이 될 것입니다. 어때요, 우리 주변은 글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나요?
글감이 없어서, 주제를 찾지 못해서 시작하기 어렵다는 분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왕 쓰는 거 근사한 내용 쓰고 싶었습니다. 이걸 쓸까 저걸 쓸까 한참을 고민해도 딱히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나면 자신을 탓합니다. 나는 글을 못 쓰는구나 하면서요. 다행인 건 글감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글을 잘 쓰건 못 쓰건 상관없이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내 주변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사느냐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 차이 정도입니다.
주변에 관심을 갖는 데 특별한 능력이나 자격이 필요한 거 아닙니다. 그래도 막막하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본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어보는 겁니다. 고만고만한 일상을 살지만 누군가는 소소한 것들을 놓치고 살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소통도 될 테고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쓰는 글 한 편이 그로 인해 더 특별해지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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