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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06. 2019

[소선재 한담 2]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논어의 첫머리 <學而(학이)>는 공자의 이 말로 시작한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이 말에는 공부를 대하는 공자의 생각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학습(學習)이란 배우고 익힘이다. 우리는 배움에 중점을 두지만 사실은 배운 것을 時習, 즉 때때로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자어 習은 어린 새가 날기 위해서는 무수한 날개짓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거듭함이다. 공부는 새로운 지식을 배움과 동시에 때때로 익히고 숙고하여 자신의 온몸과 마음에 무젖게 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면 힘든 공부도 고통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한없는 기쁨을 가져다  준다.


공자는 말한다. 배움의 뒤에는 ‘때때로’ 익혀야 한다고. ‘때때로’는 ‘수시로’, ‘쉼 없이’, ‘지속적으로’ 등과 같은 뜻이다. 어떤 뜻으로 해석하든 배우고 익힘에는 ‘시간적 간격 혹은 여유’를 두라는 것이다. 배운 뒤에는 그것을 익힐 시간 혹은 여유가 필요하다. 소가 여물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듯 배운 다음에는 그것을 천천히 되새기고 곱씹으며 익혀야 편벽되지 않은 지식을 체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배움과 익힘이 기쁨이 아니라 고통의 과정일 뿐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공부할 것을 강요당한다. 학교와 학원을 개미 쳇바퀴 돌 듯 오가며 시험에 필요한 지식 습득에 매달린다. 집에 와서도 편히 쉬거나 자지 못하고 밀린 숙제를 해야 하니 공부란 괴로울 따름이다. 이런 형편이니 아이들은 배움과 그것을 ‘때때로’ 익힘을 통해 공부가 주는 기쁨을 느낄 여유가 없다.


나 자신이 이토록 여유가 없는데 뜻을 같이 하는 친구(同志 동지)를 만나 사귈 기회가 있겠는가. 설령 그런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온들 잠시라도 그와 함께 보낼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라는 공자의 이 말은 공염불에 가깝다.


이 땅의 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까? 겉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속내는 세상의 평판 때문이 아닐까? 시험 성적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서열이 곧 좋은 대학 입학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부모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고, 군자연할 수 있을까? 부모들은 오로지 사람들이 알아주기만을 바라며 아이들을 공부 시키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도 부모를 닮아가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그러니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라는 공자의 이 말이 가슴으로 다가오겠는가.  


친구를 맞고 보내며, 세상의 평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연한 군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는” 學而時習之가 되어야 한다. 그를 통해 공부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공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 우리는 공자가 바라는 군자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아니 한국에서 군자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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