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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직장맨 Mar 04. 2018

회사생활에서의 용기

해야할 말을 해야할 때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이 말은 제가 아마 퇴직 면담때에 자주 사용했던 말 중 하나일 것입니다.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종종 당시에 진작 논의를 했었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방법을 분명히 찾을 수 있었거나 사소한 오해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나중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 진작 이야기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첫번째 유형은 "전 그때 다 말했는데요" 라는 반응입니다. 정말 그때에 말했었다면 결국은 해결방법이 없던 일이었던 것 일까요? 저의 경험상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본인은 이야기했다고 느끼는데 상대방은 몰랐다고 하니 다소 이상한 상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원인 중 하나는 그 '정도'에 대한 이해의 차이 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표현할 때, 예를 들면 "일이 복잡하고 어렵다"라고 이야기할 때에 말하는 당사자는 그 "어려움"의 정도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지만 듣는 사람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어려운 정도가 그냥 살짝 혼란스럽게 번거로운 정도인지 아니면 도저희 일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인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모를 때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말하는 사람은 10을 척도로 7~8 정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는데 듣는 사람은 2~3 정도로 오인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소통에는 그 소통 방식의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는 농경사회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정착을 해서 주거하는 농경문화의 특징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변화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서로가 어울리게 되면 굳이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말하지 않고 애둘러 말하거나 아니면 표정만 보아도 상대방의 심정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심전심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우리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알아 듣기를 원하고 알아서 파악해 줄 것을 희망합니다. 이런 문화를 사회학자들은 High Context Society라고 분류합니다. 높은 사회적 맥락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떤 언행을 그 자체로 이해하기 보다는 주변과 환경의 맥락을 함께 파악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 할 때에 정확하고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 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애둘러 말 해도 알아 듣는 사회적 관계는 오늘날에는 매우 드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는 직접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홍콩에서 근무할 때에 홍콩인 팀원과 프랑스인 매니저 간에 심각한 갈등 문제가 있어 제가 개입 했던 적이 있습니다. 홍콩인 팀원이 한참 저에게 매니저의 불합리한 부분과 본인의 직무를 어렵게 하는 부분에 대해 하소연을 한 후 제가 그런 사실을 매니저에게 직접 이야기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고 그 제안을 받아 들여 상호간의 미팅 자리를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홍콩팀원에게 이번에 작정을 하고 할 말을 다 하라고 당부를 한 후에 기대반 우려반으로 미팅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미팅이 끝난 후에 홍콩인 직원은 할말은 다 한 것 같다며 후련해 하였습니다. 반면 그 매니저는 어땠는지 궁금했습니다. 팀원이 겪는 문제들이 대부분 그 매니저와 관련된 부분이라 다소 의기소침해지거나 감정적이 되어 있을까 걱정하며 그 매니저를 만났는데 그 매니저는 매우 밝은 얼굴로 저에게 "이야기 해 보았는데 그 팀원이 나랑 같이 일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며 좋은 미팅 주선해 주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인 홍콩인 팀원은 본인의 모든 불만을 다 이야기했다고 하고 정작 그 본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어떻게 된 것 일까요? 저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 홍콩 팀원을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조목조목 확인해 보았습니다. 결국 우리와 같이 직설적인 표현을 회피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홍콩인은 "나는 당신이랑 일하는 것이 정말 좋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등의 길고 긴 서문으로 시작하여 끝날 때 쯤 "그런데 이런 저런 것들만 다르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마무리 했고, 같은 대화에 대해 홍콩인은 자신의 불만을 다 말했다고 느끼고 프랑스인 매니저는 전혀 알아 듣지 못한 채 자신과 일하게 되어 기뻐한다고 이해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높은 맥락이 요구되는 동양의 문화와 유목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낮은 맥락의 사회간 대화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의견을 말하고 요점을 끝에 다시 요약하거나 상대방에게 되물어 서로의 이해가 갖도록 하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알아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두번 째 유형은 "저는 불만 이야기 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거나 "제가 왜 그렇게 까지 해야하죠?" 등의 반응입니다. 그러면서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속담이 인용 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히 인사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런 회피적인 사유로 퇴사를 하는 것은 장기적인 경력 개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절"이 싫을 때마다 떠나다 보면 더 이상 갈 수 있는 "절"이 없어질 수 있고 그럴 때마다 경력개발에 있어 옵션들이 제한될 수 밖에 없으며 또 모든 "절"들은 각각 싫어할 만한 요소들이 전혀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만약에 매니저와의 갈등이 문제가 되어 이직을 했다가 그 회사에서 더한 보스를 만나는 일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따라서 다른 조건들이 잘 맞는 다면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꼭 불만 일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업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팀의 효과성을 위해 하는 요청이나 말들은 불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표현하고 설명할 방법들이 있으며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것들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이성적 입니다.


우리는 종종 팀 안에서 혹은 여러 부서간이나 개인 간에 윈윈win-win관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와 상대방이 각각 이익이 있는 윈윈 관계는 얼핏 생각만해도 참 좋고 우리의 팀 안에서 상호 구성원과 꼭 필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성공하는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윈윈의 관계에 있서 필수적인 요소를 두 가지로 꼽았습니다. 상호간 이익이 지속 되기 위해서는 용기와 배려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용기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뜻 합니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건강한 관계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생각보다 전쟁 영웅이나 대단하거나 특수한 사람만이 갖는 것은 아니며 항상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닌, 단지 20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라는 부분의 20초 용기에 대한 부분을 아래 비디오로 인용하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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