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프레임에 갇힌 권력의 몰락
2024년 말,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기괴한 장면을 목격했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한 군홧발과 총칼은 우리 사회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상식을 단숨에 과거로 되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 사태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비극은 그들의 '악의'보다 더 뼈아픈 **'시대착오'**에 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여전히 80년대의 성공 방정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그들이 바라본 국민의 수준은 과거의 정보 통제 시대에 멈춰 있었다. 이 무모한 도박이 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인지적 폐착을 논파해 보고자 한다.
12.3 사태의 전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과거의 쿠데타 시나리오를 닮아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어지는 탄핵 정국, 그리고 총리를 내세운 대선 국면 전환 시도까지. 이는 80년대 정권 찬탈의 과정을 21세기에 맞게 살짝 수정한 '누더기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정보의 비대칭성 상실: 과거에는 언론을 장악하고 정보를 차단하면 국민을 기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연결 사회다. 국회 담장을 넘는 군인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는 시대에, 80년대식 밀실 정략이 통할 리 만무했다.
학습 효과의 무서움: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수차례의 민주화 운동과 촛불 집회를 통해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가려내는 집단지성을 훈련해 왔다. 권력자들은 국민의 지적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었다는 이 엄중한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다.
이 시대착오는 '검사'라는 특수 집단의 폐쇄적 세계관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법조문과 수사 기법만으로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국민의 '상식'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었다.
확증 편향의 오류: 극히 일부 강성 지지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민심 전체로 치환해버린 착각이 가장 큰 폐착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권력 내부의 확증 편향이 '전 국민이 계엄을 바랄 것'이라는 거대한 망상을 낳았다.
상향 평준화된 시민 의식: 이제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판단력을 보유하고 있다. 법조문을 비틀어 방어 논리를 펼치는 재판 과정조차 시민들에게는 그저 '구차한 변명'으로 읽힐 뿐이다. 그 권력은 국민을 너무나 저평가했던 것이다.
비단 행정부뿐만이 아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대여 투쟁과 정치 행태 역시 '옛스러움'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공공성(Publicness)의 부재: 정치인은 표면적으로라도 국가와 국민을 우선 가치로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에서는 '개인의 영달'과 '기득권 수호'라는 날것의 욕망이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
인지하지 못하는 인지 부조화: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그들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들만 이를 모르는 척하거나 혹은 정말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시대착오이다. 과거에는 통했을 '정치적 수사'가 이제는 '코미디'가 되어버린 현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다.
12.3 비상계엄의 실패와 그 이후의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러진다는 사실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무지하다고 믿는 순간, 그 권력의 유통기한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그 일련의 사태는 대한민국의 상식 수준이 권력의 수준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한 '지적 승리'의 기록인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유령들이 떠도는 이 정치 판을 바꾸는 힘은, 결국 그들이 저평가했던 우리 국민의 '정확한 판단'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