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닝포인트

by Ahn네의 일기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대부분이다.

학교를 다닐 땐 학교 안에서의 보이지 않는 룰과 관계로 내 뜻과 다르게 살아가야 할 때도 있고, 직장에 다닐 땐 더더욱 직장에서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에서 돈을 많이 주면, 예를 들어 대기업 직장인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금융 치료를 통해 적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직장에서 돈을 많이 못주면, 대부분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케이스로 나뉘는 거 같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NGO 또는 시민단체의 경우와,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을 위한 경력을 쌓는 중소기업의 경우라 볼 수 있다.


정말 슬픈 것은 나의 가치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종사하는 경우 대부분 월급을 적다고 할 수 있다. 음... 그렇다고 대기업에서 하는 일 들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니고, 사회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종사하고 있을 경우에 이직을 생각하는 거 자체가 뭔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은 뭐라 안 하는데 내가 속물이 된 거 같은 느낌? 그러나 인간은 간사하게도 이런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온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정말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면서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평생직장을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하신 일은 존경받아 마땅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직장에서 근속 30년 이상? ㅎㅎㅎ 현세대에서는 개인으로 보나, 회사로 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회사는 더 이상 개인을 책임지지 않으며, 개인도 더 이상 회사를 평생 헌신할 곳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세대가 바뀌었다.


이렇게 바뀐 이유가 뭘까? 아마도 부모세대가 치열하게 살아오신 것을 자녀 세대가 보고 존경의 마음은 있으나 그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부모님이 너무나 치열하게 사시느라 자녀와 거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점에 대한 거부 반응 같은 게 아닐까? 나 같은 경우엔 그렇다. 심지어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직업군(건축 설계)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글이 어쩌나 이렇게 흘러갔을까... 다시 삶의 터닝포인트로 돌아가 본다.

성인 특별히 직장인의 경우 이직이 큰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각자 느끼는 포인트는 다를 수 있으나, 터닝 포인트의 전조 증상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상사와의 어려운 관계, 적은 월급 등은 모든 직장인들이 느끼는 경우인데 여기에 추가로 어떤 상황이나 깨달음이 더해지면 우리는 움직일 준비를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직장을 다니면서 박사 학위를 같이 병행하고 있는데, 논문을 남겨 놓고 그걸 끝내는 건 나 자신이고, 회사는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에 별 관심이 없음을 크게 느끼게 된 순간이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잘 감당하고 있고 많은 성장 하였지만 이제는 또 움직일 때가 되었구나를 느끼게 된 것이다. 참고로 현재 직장은 프로젝트 단위로 월급을 받는 연구 기간으로 프로젝트를 얼마나 따느냐에 따라 월급이 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한 곳이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를 할 때가 된 거 같다. 그동안 질질 끌었던 박사 논문도 마무리를 해야 하고 말이다. 회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더 가벼워졌다. 움직일 때를 아는 것은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명확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면 준비하자. 그냥 박차고 나가는 것은 너무하고, 마무리도 하고 그다음은 뭘 어떻게(어떻게 먹고살지)해야 하나 고민하고 찾아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해도 막상 회사를 나가면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도 염두하자.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말자. 어차피 세상은 깔끔하게 정리된 엑셀 스프레드시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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