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저씨

by Ahn네의 일기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낮은 아직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출근길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됐다.


이번 여름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현관문을 열고 반대편 베란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잘 통하는 아파트 구조라 잘 버텨낼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6월까지 솔솔 불던 바람은 7~8월 동안 자취를 감췄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어떨 땐 집 안 온도가 밖에 보다 뜨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마도 위아래 집들이 에어컨을 가동해서 그 열이 그대로 우리 집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인 거 같다.


그런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구나를 어느 해 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에어컨이 있어 집에서도 선선하니 시원하게 보냈다면 아마도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생각해 보면 나는 날씨에 참 민감한 소년(그럴 때가 있었다.)이었다. 초중고 시절 등교 길에 비라도 오면 하루종일 축 쳐지고 힘이 안 났던 기억이 있다. 나이를 먹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무뎌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날씨가 좋던 안 좋던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냥 그런 거지 뭐. 비가 오면 비가 오나 보다, 햇빛 쨍쨍 더우면 더운가 보다. 밖의 날씨보다는 내가 주로 있는 공간의 온도와 습도가 더 중요했다.


이번 여름 에어컨 없이 버티는 동안 와이프랑 이야기하며 어렸을 적에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그때도 꽤 더웠을 텐데 그렇게 살아졌던 것이다. 에어컨이 있는 집은 보기 힘들었다. 대신 선풍기를 사용해서 더위를 이겨냈다. 문 닫고 선풍기 틀고 자면 죽을 수 있다는 말에 모든 문은 오픈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더위든 추위든 받아들여야 했던 거 같다. 지금처럼 에어컨이나 히터기를 통해 날씨를 이겨내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은 나를 어렸을 적 날씨에 민감했던 날씨의 아이에서 날씨의 아저씨로 만들어 준 게 아닐까.


뜨거웠던 여름은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여름은 결국 지나간다는 것과 살아진다는 것 두 가지를 배웠던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집주인아주머니께 연락을 드려 현관문에 외풍 차단을 위한 작업을 부탁해야겠다. 날씨의 아저씨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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