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1. 신뢰는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먼저 누군가를 믿어주어야, 그 사람도 자신을 믿어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굉장히 아름다운 말인데, 사랑하는 사이라면 모를까 직장 생활에서는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당신을 믿어주었으니 당신도 나를 믿어주어야 한다.
음... 이런 의미라면, 이건 협박에 가깝다.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당신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쌍으로 따귀를 맞을 일이다.
내가 당신을 믿어주었는데 당신은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는가.
이것은 신파다. 다행히 요즘은 넷플릭스에 좋은 드라마가 많이 나와서 집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는데, 직장에서는 아직 가끔씩 쌍팔년도 상황극이 출몰하곤 한다.
당신이 나를 믿어주기 전까지는 나도 당신을 믿지 않겠다.
그러시던가.
2. 신뢰는 노력과는 관계없다.
상호간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뭔가 비누방울이 있고, 양쪽에서 빨대를 꽂아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그림이 떠오른다. 비누방울을 커다랗게 부풀리려면 한쪽이 급하게 바람을 넣어서는 안되고 서로 호흡을 맞춰가면서 조심스레 협업하면 그 비누방울이 아름답게 커지다가...
팡.
그렇게 터져버린다. 왜냐하면 그건 애초에 비누방울이니까 말이다.
3. 신뢰는 느껴지는 것이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렇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설마, 그럴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적이 있는 거겠지)
신뢰는 노력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느날 문득 알게 되는 것이다.
아, 난 저 사람을 믿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4. 그냥 일을 같이 해보는게 낫다.
당신이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가 아니라면 신뢰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작게라도 그냥 같이 일을 해보면 된다. 처음부터 실패하면 끝장나는 규모의 일 말고, 그냥 해결하면 좋은 일이면 충분하다.
일을 할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다.
그 사람이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가, 아니면 중간에 슬쩍 빠져나가는가를 살핀다.
일은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람과 같이 한 시간이 즐겁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다음 번에 기회가 있다면 그 사람과 다시 프로젝트를 할 것인가?
5. 같이 일을 하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잘 해 주어서가 아니다. 뭔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반대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같이 있으면, 의견을 교환하면,
충돌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고 가끔은 목소리를 높여 싸우다가 후회도 하고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할 때도 있겠지만,
그 순간들이 너무나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일을 잘 하는 사람과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중독성을 가져다준다. 한번 맛을 들이면, 점점 더, 더, 더, 조금 더 강한, 더 의미있는 일을 찾게 된다. 같이 하면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지를 상상할 수 있게 되니까.
6. 신뢰하는 척 하지 말자.
제발.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자.
잘못된 시그널은 관련된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손을 드는 것이 낫다. 어떤 장르의 노래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가수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매니저는 제외다. 매니저와는 잘 지내야 한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자신이 뭔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그냥 서로 다른 거다. 물이랑 기름이랑 있으면 층이 나뉜다고, 쉐이커에 넣고 미치도록 흔들어봤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층이 또 나뉜다. 그럼 물이 나쁜 것인가, 기름이 나쁜 것인가. 이걸 생각하는 사람이 미친 거겠지.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고, 제한적이다. 그러니 괜찮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아 성과를 내면 된다.
7. 서로를 믿게 된 팀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꼭 자신과 닮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사실 같은 극은 서로를 밀어낸다), 같이 일하면 즐거운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신뢰를 얻기 위해 서로간에 엄청난 노력을 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신뢰가 쌓여간다.
1+1은 2가 아니다.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고, 신뢰를 구축한 팀은 그것을 각자가 아닌 팀으로 해결한다. 그렇게 팀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의 성과를 이루어가게 된다.
누군가를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