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일하는 것이 좋은가.
모든 기업엔 이에 대해 공들여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고, 직원들은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안다. 하도 잊어버리니까 책상 옆에 붙이라고 프린트해서 나누어 주는 회사도 있고, 조그맣게 출력하여 지갑에 넣고 다니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매년 신년회마다 강조하기도 하는데 보통 그 뿐이고, 귀신같이 머리에서 빠져나간다.
왜 그럴까.
뭐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일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를 하면서 갈림길에 섰을 때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부분에 있어 그 회사의 기준이 되는 내용이라면 굳이 기억하라고, 기억 좀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원칙들이 기억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회사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는 좋은 말 모음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정의해야 좋을까?
1.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딱 5가지 문장으로 정의한다.
- Focus on Impact
- Move Fast
- Be Bold
- Be Open
- Build Social Value
일단 5가지니까 외우기 쉽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장들의 '관계'이다.
Focus on Impact은 '집중'을 이야기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닥치는 대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곰곰이 앉아서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Move Fast는 '단순히 빨리 움직여라'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전제로 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집중할 것이 정해졌으면 3개년 계획같은 것을 그리고, 장표를 만들고, 보고를 하고 이러지 말고 일단 작게라도 시작해서 반응을 보고 개선하라는 것이다. Focus on Impact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과제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면, Move Fast는 그것에 이르는 과정을 잘게 쪼개어 바로 실행하고, 리뷰하고, 수정하라는 의미라고 하겠다.
Be Bold는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던진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작은 과제'를 선택하지도 말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지나치게 오래 검토하지도 말라는 의미이다. 전자는 Focus on Impact에 대한 보완이고, 후자는 Move Fast에 대한 보완이다.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는 'Be Bold'를 가장 간결하게 상징하는 말로 페이스북 오피스 곳곳에 붙어있다.
Be Open은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갑자기 정보의 공개 이야기가 튀어나왔을까? 그것은 바로 해결할 문제를 정의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실패하면 그 원인을 공유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접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쉽게 접근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은 회사라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Focus on Impact, Move Fast, Be Bold, Be Open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업무를 할 때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잠깐 멈춰서서 머리 속에서 꺼내본다. 어떤 프로젝트가 더 중요한가, 누가 그 업무를 맡을 것인가, 우리에겐 어떤 역량이 부족한가, 그래서 누구를 채용할 것인가와 같이 매일매일 발생하는 실제 업무에서 바로바로 활용된다.
이것은 단지 가치관에 그치지 않고 실제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매년 성과 평가 시즌에는 자신이 지난 분기동안 한 일을 줄줄이 적지 말고 자신이 한 업무 중에서 가장 회사에 Impact을 가져온 일이 무엇인지, 그 업무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적는다.
한 것은 많은 것 같은데 마땅히 하나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면?
그럼 반성한다. 매니저나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반성한다. 그리고, 다음 반기에 해야할 과제를 정할 때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번 더 고민하고, 이를 간다.
Move Fast는 어떻게 적용될까? 일단 왠만한 업무는 3개월을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3개월은 진짜로 긴 시간이고, 정말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집중만 하고 의사결정이 빠르다면 말이다. 뭔가 하기로 결정했으면 '누가 맡을 것인지?'를 정하고, 그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전권을 가진다.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다.
와... 그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니 진짜 좋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위임을 받은 순간 압박은 말도 못하게 커진다. 따라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압박을 견디면서라도 하고 싶은 일 위주로 손을 들고 그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을 다른 동료들이 지원해준다. 그 사람이 어떤 결정을 했다면 '왜 나와 먼저 상의하지 않았어?'라고 챌린지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검토하고, 어느 순간 결정할 것인가는 그 사람이 결정한다.
Be Bold라고 해서 '오호라, 실패해도 되는구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하면 굉장히 아프다. 자존감도 무너지겠지만, 무엇보다 시간과 리소스가 생명인 회사에서 그 프로젝트에 들인 본인과 동료의 Input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실패하지 않을(그리고 Impact도 없는) 프로젝트를 선택하지 말라는 의미고, 설령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거기서 얻은 Insight와 개선점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다른 동료의 다음 번, 다른 프로젝트의 시행착오를 막게 된다.
Be Open을 위해서는 정보의 접근 권한을 낮추고, 누군가 자료를 요청하면 이유를 묻지 않는다. 만약 이유를 묻는다면 요청받은 자료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질문 의도에 맞게 더 적합한 자료를 제안해주기 위함이다.
자료를 받은 사람이 그 자료를 유출하면?
그것은 자료를 준 준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유출한 사람의 잘못이다. 보통 해고된다. 말로 엄포를 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고된다. 누가 유출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노트북과 핸드폰은 모두 회사에서 지급한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압수가 가능하고, 승인 과정을 통해 메일이나 메신저를 열어볼 수도 있다. 말로만 정보보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공개하고, Leak한 사람은 해고한다.
Focus on Impact, Move Fast, Be Bold, Be Open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단점들을 보완하고 업무에서 실제로 적용된다. 그래서 잊어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애초에 왜 이런 일들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회에 무엇인가를 기여하기 위해서다(Build Social Value). 회사는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재능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수익을 내는 이유는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하거나 한 밑천 챙겨 Exit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세상의 문제를 풀고 싶기 위해서다.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중점을 두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는 기업문화를 갖고 그에 맞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것이 바로 회사의 의미가 아닐까.
해결하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다.
오해는 하지 말자. 회사의 수익은 중요하다. 수익이 클 수록 더 좋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고, 더 큰 자원을 가지고 더 중요한 문제들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2. 브리지워터
원칙(Principle)이라는 책에서는 레이 달리오가 브리지워터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졌던 기준들과 그 배경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 레이 달리오 본인의 이야기: 왜 원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 자신의 원칙
- 일의 원칙
이렇게 세 파트로 정리되어 있는데, 내용이 상당히 많고 어렵다. 원칙을 기술한 부분도 많거니와 그 원칙이 적용된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책이 굉장히 두껍다. 장담하건데 브리지워터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라 하더라도 몇 조 몇 항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원칙이 많을까?
기억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항목들이 상호 충돌하지 않을까?
원칙이라는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적혀진 원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원칙에 이르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맞는, 회사에 맞는 원칙을 찾아내고 정리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원칙을 외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원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면 얼마든지 활용하여 자신의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레이 달리오의 '원칙'은 Reference Book에 더 가깝다. 언제든 곁에 두고, 틈나는 대로 열어보면서 자신이 고민하는 부분을 찾고, 그 문제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라.
레이 달리오의 그 두꺼운 책은 위 한 줄로 정의할 수 있다. 법전도 아니고, 비법서도 아니다. 밑줄 치고 외울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읽고 생각하며 이해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기 위해서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회사에 합류한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읽으며 Working Culture를 이해할 수도 있고, 애초에 그 회사에 적합한 사람들이 지원하도록 불러들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3.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Freedom & Responsibilty)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가 한 페이지로 잘 정리되어 있다.
페이스북처럼 짧지도 않고, 레이 달리오 책처럼 두껍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의 Working Culture를 다룬 Powerful이라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그냥 https://jobs.netflix.com/culture 를 읽는 것이 감상에 빠지지 않고, 의미도 더 명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로 잘 정리되어 있고, 시간을 들여 읽기도 좋다.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더라도,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어느 정도 머리 속에 기억될 수 있는 만큼의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넷플릭스의 Working Culture에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 스포츠팀처럼 일한다는 것이 꽤 근사하게 들리기도 하고
- 업계 최고의 보상이라는 점
- 퇴사자도 목돈을 주고 내보낸다는 점
- 무엇보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키워드
철저한 성과주의, 자유로운 해고, 그리고 압박을 즐기는 문화.
넷플릭스의 문서들을 보면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슈가 아니라, 이러한 Working Culture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희소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적응하고 행복하게 다닐 수 없는 회사의 문화에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은,
여러 회사의 장점들을 잘 선별해서 모으면 최고의 '일하는 방식'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것은 없다. 단연코 없다.
제대로 된 회사의 장점들은, 내거는 가치관은 그 이면의 반대급부가 반드시 있다. 장점과 단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는 의미다. 자유로운 해고를 전제로 하지 않고 넷플릭스처럼 채용하면 어떻게 될까. 열심히 일했다는 것만으로 실패를 괜찮다고 여기는 회사는 어떻게 될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이드를 잔뜩 정리해 놓은 회사는 이슈가 생겼을 때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게 될까.
누군가의 장점은 그 사람의 단점과 항상 연관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단점을 없애고 장점만 강화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 더 중요한 것들은 많은 가치 중에서, 특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어떻게 끄집어 내고 정리할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모인 사람들이 시너지를 내며 일할 수 있게 된다.
가치를 선별하고, 관계를 생각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일하는 방식은 어떤 사람을 부르고 싶은가를 정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