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석 Jun 20. 2020

여기,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화를 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그동안 그 어려운 상황을 겪어왔던 사람들의 노력이 보이지 않냐고. 격려는 해주지 못할 망정 왜 분위기를 망치냐고.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고.


재미있는 부분은, 사람들은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더 화를 낸다는 것이다. 상황이 좋을 때는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해도 웃어넘긴다. 에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면 그게 더 문제죠. 그렇게 말하며 웃어넘긴다. 표정에 여유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실제로 있고, 살갗이 벗겨지고, 상처가 곪고 있으면 사람들은 날이 서 있다.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정말로 심하게 화를 낸다.


그럴 때는 '여기, 문제가 있다'라고 말을 하는 것보다,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 부분을 같이 의논해 보자'고 했을 때 사람들이 더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듣는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이야기라고 할까. 


믿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날카로운 표현을 삼가고, 하루 중 가장 적절한 시간을 찾아 그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얼굴에 흘러가는 미묘한 변화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마음을 열게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두 개의 표현이 실제로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그 둘이 같다고 정의를 내리고 선언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여기, 문제가 있다'는 쉼표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0글자다. '충분히잘하고있는데더효율적으로개선할부분을같이의논해보자'는 띄어쓰기를 빼고도 28글자다. 더 빨리 말하는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미로 들리지 않을까를 염려하여 훨씬 더 천천히 말하게 된다. 한 문장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이제부터 '문제'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글자를 사용해야 한다.


사실 문제는 어디에나 있다. 정말로 어디에나 있다. 


더 이상 개선이 필요없는 일 따위는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개선의 끝을 보았다 해도, 나중에 다시가서 보면 항상 더 해볼 것이 생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그 수많은 문제 중에 '무엇'을 풀어야 할 지를 생각하는 부분이다. 아니, 좀더 다르게 이야기하면 언제 하나의 문제를 푸는 것에서 다른 문제로 '전환'해야 하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한 문제만 주구장창 개선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그 순간에 더 부가가치가 높은 다른 문제를 푸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여기, 문제가 있다'는 실제로는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좀더 중요할 것 같은데 같이 풀어볼까요?'란 의미다. 그 문제를 풀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했고, 괴로워했고, 뭐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같이 일하는 것이 회사다. 


만약 누군가가, 정말로 그 문제를 같이 풀어볼 마음을 가지고 '여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맡고 있었던 프로젝트의 중요도가 다른 동료들이 같이 참여해서 풀어볼 만큼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왜 화를 내는가?


와, 당신은 정말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군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화를 낼 사람은 없겠다. 그렇다면 '여기, 문제가 있다'는 말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존 강에 산다는 '피라냐'와 같다. 끊임없이 헤엄치며 집중할 문제를 찾아나선다. 이 피라냐들이 물어뜯는 것은 동료가 아니라, 해결할 문제 그 자체다. 쉴 새 없이 떼로 움직이며 무언가를 발견하면 달려들며 말한다.


여기, 문제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PM/PO가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