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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11. 2017

워라밸과 번아웃

#직딩에세이 #06

워라밸이란 말이 꽤나 많이 보여서 무엇인가 했더니 Work-Life Balance의 줄임말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것으로, 사람들이 그만큼 지쳐있다는 의미이다.


페이스북에서도 Work-Life Balance에 대한 논의가 꽤 많았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고, 언제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WFH(Work From Home)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야근도 필요한 사람만 하고, 회식도 원하는 사람만 참석한다고 해서,


업무량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작정하고 쨀 수는 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미친 듯이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는 '자의에 의해' 살인적인 업무 스케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이건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것도, 성과에 대한 보상 때문도 아니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정보가 쏟아지고 한 번 놓치기 시작하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압박도 실제로 있긴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업무에 몰입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자신이 노력만 하면 실제로 많은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물론 매월 한 번씩 들어오는 월급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같은 시간을 일하고 더 많은 연봉을 주는 회사가 나타난다고 이직을 고려하는 경우도 최소한 내게는 없었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고, 옳고 그름의 이슈는 아니다. 성향의 이슈도 아니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연봉이나 근무여건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업무를 잘하는 사람일 수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어느 만큼 일을 하게 되는가 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질 때까지 한다.


가령, 자율출퇴근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은 업무에서 완전히 OFF되는 시간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에 있건, 집에 있건, 휴가를 가건 업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페이스북처럼 글로벌 오피스를 운영하는 회사의 경우, 오피스 간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메일을 보내면 새벽 시간에 지구 반대편 오피스에서 읽고 회신을 해 준다. 반나절이 지연되는 것도 문제지만, 메일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의 질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추가 질문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으로 24시간이 덧없이 지연된다. 중요한 이슈가 있다면, 새벽에 잠깐 깨서 처리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속시원한 것이다. 이러한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밤에 제대로 잠을 자기는 글렀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한 연락도 사람에 따라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핑'이라 부르는데(메세지를 보낼 때 '핑'하는 소리가 나서 그렇다고 한다), 야간이나 주말에 핑을 하는 경우도 꽤 많이 발생한다. 정상적인 근무시간이란 것이 있다면 퇴근 후에는 업무 연락을 주저하겠지만, 업무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약한 페이스북에서는 메일이나 핑을 보내는 시간에 대해 공식적인 제약은 없다. 


회사 차원의 규칙(가이드, Rule) 자체를 잘 안 만드는 페이스북이다 보니, 각자가 본인의 판단에 따라 동료들에게 연락을 한다. 그래도 밤이나 주말, 휴가를 보내는 동료에게 연락함에 있어 많이 적용되는 규칙 아닌 규칙은 다음과 같다. 


- 연락은 메일을 기본으로 한다

- 페이스북 그룹(기능 자체는 일반적인 페이스북 그룹과 동일하나, 직원들만 접근 가능하다)을 최대한 활용한다

- 태깅(그 사람에게 알림이 간다)은 시간과 관계없이 자유롭다

- 좀더 급한 확인이 필요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면 핑을 한다

- 전화를 하기 전에는 먼저 핑을 통해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한다

- 시급한 일이 발생하면 전화를 한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규칙으로, 밤이나 주말 휴가 중인 사람에게 메일, 태깅, 핑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사람이 그것을 언제 확인할 것인가는 온전히 그 사람의 선택에 맡긴다(왜 확인하지 않았냐고 챌린지하지 않는다)


합리적인가? 아니면 부담스러운가? 


자신의 판단 하에 야간이나 주말을 철저하게 OFF시킬 수도 있다. 반면, 이러한 선택을 부담스럽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365일 ON되어 있는 것을 오히려 더 편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워라밸의 굉장히 작은 요소이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면 말 그대로 업무 자체가 많다. 명확한 가이드가 주어지지 않고, 본인의 판단 하에 진행해야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기도 하다(물론, 이러한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회사 내에 근무시간에 대한 통계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 업무시간을 선택하게 되는데, 내 경우에는 회사에서건 집에서건 간에 주당 60시간 이상을 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휴가를 쓰는 것은 자유롭지만 휴가를 쓰는 것보다 '언제나 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만족감이 더 컸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하는 것은 완전히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근무하는 것에 대해 누가 인정해주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들인 시간 자체로 평가를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다른 동료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 있는 시간 = 업무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하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페이스북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신 일이나 신경쓰세요'란 말을 듣기 딱 좋은 상황일 뿐이다.


자신이 선택해서 일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은 없을까. 


번아웃(Burn-Out)은 페이스북에서도 (매니저들이 자신의 팀원에 대해) 가장 경계하는 증상이다. '미친듯이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탁 서버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번아웃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심리적 공백 상태를 의미한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증상으로, 모든 업무가 무의미해지고 업무 효율이 급감하게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번아웃을 예방하거나 치료함에 있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방법은 없다. 번아웃이 찾아오는 시기나 원인, 치료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동료나 매니저의 도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사람 스스로가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워라밸이 번아웃의 예방이나 치료책이 될 수 있는지는 극히 의문스럽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번아웃은 잘 모른다. 내가 마음 속까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내 자신에 국한되기 때문에 내 경우로 한정하여 예를 들어보면,


- 번아웃은 업무의 절대량이나 난이도보다는, '업무 해결을 막는 허들'이 주 원인으로 작용한다 

- 대부분 이러한 허들은 '사람(Human Factor)'으로부터 온다

- 번아웃에 빠지면 워라밸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자체를 완전히 OFF시켜야 한다

 

즉, Work-Life Balance보다는 Work-Life Integration이라는 개념이 내게 더 맞았는데, 이는 업무와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 둘을 철저히 분리한다는 것 보다는 '업무와 삶이 함께 진행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Time Control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야간에는 쉬어야지, 새벽에는 메일을 열지 말아야지, 휴가 때는 노트북을 가져가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대신, 업무와 삶의 구분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것을 스스로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와 삶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매니저와의 상의를 거친 후) 충분히 긴 휴가를 통해 업무를 완전히 OFF시키게 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더 좋은 방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근무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개인 삶을 즐기는 워라밸이 지나치게 강조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그 선택권을 본인이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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