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섯 번의 회사, 다섯 번의 이직
그 동안 여섯 번의 회사를 다녔다. 각 회사를 다닌 기간은 아래와 같다.
- 첫회사: 5년
- 두번째: 6년
- 세번째: 1년반
- 네번째: 3년
- 다섯째: 3개월
- 여섯째: 3년 (아직 다니는 중)
1. 첫회사: 사람이 되는 과정
돌이켜보면 가장 놀라운 것은 첫 회사를 5년이나 다녔다는 점이다. 나와 딱히 맞는 회사는 아니었는데, 나를 뽑아주었던 부장님과 첫 사수였던 과장님 덕에 사회생활 초년생의 어려움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말도 안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는데 실제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장 메일 쓰는 것 하나도 정말 힘들었는데 하도 실수를 하니 과장님께 검사를 받고 보내게 되었다. 똑같은 메일을 서른 번 넘게 수정해서 보낸 적도 있었는데 서른 번 넘게 다시 쓴 나도 장하지만, 서른 번 넘게 반려한 과장님도 (지나고 보니) 참 대단했다.
업무는 구미에 있는 공장 사람들과, 여의도에 있는 세일즈, 그리고 독일에 있는 독일 사람들과 일을 많이 했다. 대략 8시에 출근에서 한국에서의 일과를 진행하고, 4시부터는 독일 사람들과 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이 퇴근하면 집에 갈까, 아니면 회사에서 잘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마 독일 사람들은 내가 자기들 시간대에 맞춰서 일하는 줄 알았을 것 같다.
영어는 참 못했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다. 클라우디아란 독일 분이 내 카운터파트였는데 내가 영어는 잘 못하지만 다행히 알아들을 수는 있고,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말해줘서 좋다고 했다. 나도 독일 사람들이 좋았는데, 처음에 설득하기는 어려워도 그 사람들이 Yes라고 하면 일이 진행되었고, No라고 하면 그 이유를 나도 묻고 나서 납득이 되면 이번엔 한국쪽 사람들과 미친듯이 싸우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어느 순간 부장님과 과장님 모두 부서를 떠났고 나는 스폰서를 잃었다. 새로 오신 부장님과 새로 온 사수는 나와 정말로 맞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나를 참 대견해했던 것은 그 분들과 2년 넘게 회사 업무를 계속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부장님과는 끝끝내 관계를 개선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사수(차장님)에게는 철저히 맞춰드렸고 나중에는 그 분도 나를 이해해주었다.
첫 회사에서 배운 스킬 같은 것들이 이후의 회사에서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진득하게 일하는 경험을 쌓은 것은 이후로의 회사생활 전반에 걸쳐 내가 일하는 방식에서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2. 두번째 회사: 첫 이직,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
첫 회사에서는 정말로 할 만큼 했다.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었고 이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 있다가는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잃을 것 같았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첫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게는 맞지 않은 회사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완전 어릴 때나 입시를 준비할 때,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복학해서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어떤 회사가 내게 맞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첫 회사를 다니며 절절하게 깨달았다. 물론, 엄청 고민했어도 알 수 없는 정보에 가까웠을 것이다. 지금도 대학생들에게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일들을 하게 되는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의 정보는 너무나도 적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한 말을 삼가고, 떠난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대학생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에는 회사들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만 가능하다. 솔직히,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면 그냥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더 고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모든 회사에는 좋은 점, 아쉬운 점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얽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간단한 Tip이 있다면 어떤 회사든지간에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면 된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장점을 하나라도 찾지 못하면 1) 장점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거나,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여전히 다니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회사는 정말로 모.든.것.이 달랐다.
가장 놀랐던 것은 사람들이 일할 때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광고를 판매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전화로 마지막 딜을 하고 있으면 근처의 사람들이 관심있게 들었다. 마침내 전화가 끝나면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축하하러 가자고 회식이 즉석에서 잡히는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약속이 없는 거의 모두가 참여해서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다음날 또 출근해서 '이번엔 내가 저런 딜을 해야지!'라고 모두들 다짐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미라이공업'이라는 일본 회사가 유명했는데, 두 번째 회사는 이에 못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첫 회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후회가 되긴 했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해서... 나도 빠르게 캐치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뉴얼이 정말 하나도 없는 회사였는데, 매뉴얼이 없어서 나는 내 식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USB 하나를 들고 동료들을 주~욱 돌면서 3개월 이내에 만들었던 PPT나 엑셀 같은 것을 넣어달라고 했고, 20-30명 정도 것을 받아서 하나하나 다 읽어보며 두 번째 회사가 쓰는 패턴을 찾아나섰다. 첫 번째 회사와는 달리 왠만한 인하우스 관리툴은 신청만 하면 권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의외로 다른 동료들은 업무에 딱 필요한 권한만 신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뭐... 나는 관심가는 툴들은 모두 신청했고, 그 안에 들어간 숫자들을 언제든 꺼내보고 활용하기 쉽게 정리해두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으니, 희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회사 매출이 천억원이 넘는데, 그 매출을 구성하는 상품별 매출이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아, 그거 원래 그래요.
엥. 원래 그렇다니요...
지금도 그렇지만 내게는 '원래 그런 것' 같은 것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파는 상품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것들이 각각 가격은 있었지만 개별로 판매되지는 않고 패키지로 묶어서 판매하고 있었다. 가령, 누군가 광고상품 1억원 어치를 구매하면 서비스금액 2억원을 얹어서 총 3억원 어치의 제품을 주었다.
1억원어치 샀는데 3억원이요?
새로 들어온 내가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늘 그렇게 팔아요? 그러면 광고주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더 큰 문제는 추가로 받은 서비스금액 2억원은 아무 상품이나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대략 이렇다.
- 구매금액: 1억원
- 서비스금액: 2억원
- 총 게재금액(광고를 부킹할 수 있는 금액): 3억원
- 구매금액에 해당하는 1억원으로는 모든 상품을 살 수 있음
- 서비스금액으로 받은 2억원 중 1억원은 준주요영역 광고상품을 살 수 있으나 주요영역 상품은 못 삼
- 나머지 1억원은 일반영역만 살 수 있음
잘 살펴보니 주요영역 상품과는 달리, 준주요영역이나 일반영역 상품은 가격이 많이 부풀려져 있었다. 따라서, 상품별 매출의 합은 실제로도 의미가 없었다. 단순히 1억원을 금액으로 분배하면 주요영역, 준주요영역, 일반영역이 1/3씩 배분되면 되었겠지만, 준주요영역이나 일반영역은 아무도 그 가격으로 사지 않을 금액이었다.
따라서 상품별 매출이 의미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은 맞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정상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상품별 매출을 모르면, 그 상품의 가치나 매출 기여를 알 수 없다. 그러면 그 상품이 위치한 서비스가 회사 매출에 차지하는 기여도를 알 수 없고, 회사는 깜깜이로 리소스를 배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각 서비스들은 자신의 매출 기여도를 모르니 광고상품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었다.
나 : 그러면 그냥 각개로 팔면 되지 않나요?
사람들: 아니, 무슨 기준으로 단가를 정해요?
나 : 다들 예산을 썼을 때 클릭을 얼마나 받아가나에 신경쓰니 그 비율대로 가르면 되겠죠.
사람들: 에이, 각개로 살 수 있으면 다들 주요영역만 살 걸요.
나 : 음.. 그렇다면 그 때 가중치를 조정하면 되죠.
나는 1년 정도 판매되었던 모든 상품 구매 건의 예산별 할인율, 상품별 구매금액, 해당 상품내의 클릭양 등의 데이터를 모아서, 이를 역산해서 각 상품을 따로 판매했을 때 어떻게 판매하면 되었을 지를 Simulation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가령 아래와 같은 형식이다.
- 구매금액: 1억원
- 게재금액: 1억원
- 사람들은 게재금액 내에서 주요영역, 준주요영역, 일반영역 중 어떤 것이라도 마음대로 구매한다
- 모든 영역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CPC는 동일하다(즉, 어떤 영역을 사더라도 광고주가 기대할 수 있는 클릭수는 같다)
- 만약 특정 광고주를 위한 서비스율이 필요하다면, 그 한도는 상식적인 비율 이내로 한다(Max 30%)
- 이 경우 구매금액 1억원, 게재금액 1.3억원이 되고,
- 게재금액으로는 어떤 상품이던 간에 똑같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
- 만약 특정 상품이 예산별로 동일한 클릭양을 받아감에도 광고주들이 구매하지 않는다면, 해당 상품의 단가를 10%씩 단계적으로 내린다.
이렇게 Simulation을 하자 모두들 난리가 났다.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이 제안을 당시의 광고부문장이 OK를 하자 정말로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이런, 이 분위기 좋던 문화를 내가 망쳐버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 단가체계 변경은 진행되었다. 아예 기존의 내 업무(광고세일즈)를 놓고, 단가체계 변경 PM을 맞게 되었다. 이름이 하나 필요해서 그냥 '신단가'로 정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 '신단가'라는 것은 그 후 많은 대행사와 렙사로부터 정말 어마어마한 Complain을 받아서, 당시의 이 분들을 담당하던 동료들이 회사를 대신해서 엄청나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그냥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이왕 바꾸는 것, 좀더 편리하게 바꾸기로 했다.
그 당시 상품의 단가는 이런 식이었다. 초기면DA는 노출당 3원, 뉴스는 노출당 1원, 카페배너는 노출당 0.3원. 단위가 너무 작다보니 1,000번 노출당 단가를 단가표에 올려놓았다. 초기면DA는 3,000원, 뉴스DA는 1,000원, 카페DA는 300원, 이런 식이었다. 따라서 광고주는 아래와 같이 주문을 했다.
- 초기면DA는 2천만 노출(impression)을 주시고요
- 뉴스DA는 1천만 노출을 주시고
- 카페DA는 3천만 노출을 주세요.
그런데 위 금액의 총량이 광고주가 서비스로 받은 금액을 합친 게재금액과 합이 맞지 않으면, 세일즈는 배너 노출량을 수정해서 그 합이 맞을 때까지 엑셀로 계산을 했다. 이 작업은 굉장히 복잡해서, 거의 엑셀로 매크로를 만들어서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신단가를 적용하면서 초기면DA 단가를 3원에서 2.2원으로 낮추니 난리가 났다. 뉴스DA는 1원이 아니라 0.4원, 카페DA는 0.3원이 아니라 0.13원 이런 식이 되니, 도저히 저 엑셀로 합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 끊어서 반올림을 해야 하냐고 사람들이 내게 묻기 시작했다.
음... 반올림 하지 않으셔도 되요. 앞으로는 광고주는 초기면DA를 몇 만 Impression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어치'를 사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 되니까요.
??
내 설명은 이랬다.
- 광고주는 1억을 지불한다
- 서비스금액을 넣어 게재금액이 1.3억원이 되었다면
- 광고주는 그냥 해당 게재금액 내에서 사고 싶은 영역을 '금액' 기준으로 얼마 어치씩 달라고 하면 된다.
- 가령 초기면 8천만원, 뉴스 3천만원, 카페 2천만원 주세요~ 라고 하면 끝이다.
- 제공되는 노출량은 각 영역의 구매금액을 각 광고영역의 단가로 나눈 양이다.
- 가령 초기면DA를 8천만원을 샀고, 초기면DA 가격이 2.2원이라면 초기면DA 노출량은 36,363,636 impression이다.
이 설명을 했을 때의 사람들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동안 참고 참고 참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게 소리높여 화를 냈고, '그럼 니가 팔던가'와 같은 원색적인 말을 서슴치 않았다. 나는 그런 말들을 가만히 다 듣고 나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익숙해지면 이게 훨씬 편할 거에요.
내 생각은 굉장히 Simple했다. 그 동안의 광고영역별 상품 단가는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해서 왜곡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신단가를 적용하며 단가가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각 광고상품은 '얼마의 노출량'을 살 것이 아니라, '얼마 어치'를 사면 되는 것으로 바뀌는 것으로 충분하다. 광고주에게 중요한 것은.
-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
- 서비스금액은 지불금액 대비 몇 %를 받는가
- 부킹할 수 있는 금액 중 어떤 광고영역을 구매할 것인가
- 구매할 광고영역을 결정했다면 게재금액 내에서 몇 대 몇 대 몇의 비율로 구매할 것인가.
- 가령, 광고주가 3개 상품을 산다면 5:3:2 비율로 부킹해주세요~ 라고 말하면 된다.
- 노출량 끝자리는 지저분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면 될 것이다.
이미 CPM 3,000원이 아니라 노출당 2.2원 같은 것에 신경질 났던 사람들이, 구매한 상품의 끝자리가 36,363,636같은 것이 된다고 하니 폭발 직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었다.
12월의 단가와 1월의 단가는 달라요.
What???
그 동안 광고상품의 단가는 하나였다. 언제 부킹하든, 언제 기간의 상품을 부킹하든 CPM 3,000원은 CPM 3,000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고가 집행되는 시점에 따라 광고상품의 가치는 매우 달랐다. DA의 경우 12월은 최대 성수기였고, 1월은 최대 비수기였다(큰 회사들은 12월에 남은 예산을 몰아넣었고, 1월엔 인사이동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광고비 집행을 30~40%나 줄이곤 했다).
집행 시점에 따른 상품 가치가 다른데 사람들은 어떻게 판매하고 있었을까?
시장의 Needs가 있으면 방법도 있다. 사람들은 12월에 집행되는 배너에는 서비스율을 적게 지급했고, 1월에 집행되는 배너에는 서비스율을 많이 지급했다. 문제는? 매월 서비스율이 달랐고, 그 협의가 사람마다 다 달랐고, 무엇보다 12월에서 1월에 이어지는 캠페인의 서비스율은 사실상 그 담당자만이 알고 있었다.
신단가를 적용하면서, 나는 세일즈가 자의적으로 서비스율에 관여하는 부분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체계화하는 것을 추가 목표로 삼았다. 세일즈는 광고주에 따라 상황이 전부 다르고, 세일즈 활동에 유두리가 없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매우 크게 반대를 했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단가는 최대한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해결책은?
집행일 기준으로 각 광고상품에 월별단가를 도입한다.
가령 12월에 부킹된 초기면DA는 2.2원이지만, 1월에 부킹된 초기면DA는 30% 할인율을 적용한 1.54원이다.
- 2.2도 죽을 것 같은데 1.54원이라고요?
- 12월과 1월의 월별 단가가 달라요? 제안서에는 어떻게 넣으라고요?
- 아니 그 30% 할인의 근거는 뭔가요?
차례차례 답변해 주었다.
- 1.54원 맞아요. 어차피 광고주는 금액단위로 구매하는 거니 2.2든 1.54든 상관없어요.
- 월별로 달라요. 계산하지 않으셔도 되요. 기간과 금액을 넣으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단가와 노출량을 계산해줄 거에요. 그냥 엑셀로 다운로드 받아서 광고주나 대행사, 렙사에 전달해주시면 되요.
- 30%는 12월과 1월의 3개년도 평균 매출 차이와 지난 6개월 간의 월별 매출 차이를 조합해서 자동으로 계산되는 숫자에요. 이후에 월별 매출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어요.
단가가 앞으로도 변한다고요?
옙, 변해요. 광고는 주로 최대 90일 전에 부킹되고 있으니, 매월 1일에 3개월치 단가를 외부에 공시하고 시스템에 자동반영해 둘 거에요.
사람들은 더 이상 나와 싸우려고 하지 않고, 내 매니저와 그 매니저의 매니저, 그리고 내게 PM을 맡긴 광고사업부문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당시 광고사업부문장은 'Make Sense한 것 같은데? 한번 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호탕하게 답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화를 내는 것을 멈추고, 퇴사할 것인지 아니면 될 대로 되라로 생각할 것인지 중에 택하게 되었다.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 내게 와서 조용히 말해주었다. 사실은 괜찮은 것 같은데 응원한다고.
세일즈가 이렇게 절망에 빠져있는 것과 달리 개발팀은 나와 말이 아주 잘 통했다. 그 동안은 도저히 알고리즘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각종 정책들이 광고플랫폼에 있어서 코드가 아주 너저분했었는데 신단가를 도입하며, 대부분의 것들이 Rule-base로 바뀌게 되자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세일즈와 나 사이의 Debate를 바라보았다. 딱히 나를 지원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 개발의 목소리가 굉장히 큰 회사였고, 사실 왠만한 건들은 개발리소스를 받고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상황인데, 반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거의 6개월 이상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면서 일했던 것 같다. 낮에는 사람들과 Debate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하고, 밤이나 새벽에는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곰곰이 앉아 그것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야 어떤 것들이 발견되고, 혼자 있어야 그것들을 풀 방법들이 생각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신단가를 적용한 광고플랫폼이 런칭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광고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만 부킹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변경된 광고플랫폼은 내부 직원들만 봤다. 사람들의 첫 인상은 이랬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요?
예. 맞아요 플랫폼 이름이나 URL, 디자인의 Look & Feel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냥 광고부킹하실 때 필요한 부분만 바뀌었다고 보시면 되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뭐... 세일즈가 보는 부분이 거의 안 바뀐 것은 맞다. 그러나 Back단의 너저분한 부분들은 싹다 바꿨다. 다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속도도 올렸고, 세일즈가 광고플랫폼에 필요한 정보만 넣으면 더 이상 하나하나 복잡한 제안을 할 필요도, 제안을 한 다음 엑셀을 다운로드 받아서 제안서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냥 (수정할 필요가 없는) 제안서가 엑셀로 출력되도록 했다.
사람들에게는 외부의 광고주, 대행사, 렙사에 신단가를 설명할 자료를 따로 만들어 주었다. 워드 1장 정도의 내용이었다.
1. 이제부터는 모든 상품을 각개로 따로 구매할 수 있음
2. 상품의 단가는 전부 바뀌었음
3. 어떤 영역이든 동일한 금액을 구매하면 통계적으로 비슷한 클릭량을 기대할 수 있음
4. 광고가 집행되는 시점에 따라 광고 단가는 다름
5. 기타 내용은 담당하는 세일즈, 대행사, 렙사에게 문의할 것
대략 90%의 사람들이 망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각개로 판매하면 모두가 초기면 광고상품만을 살 것이고, 이들 단가는 기존보다 내려갔기 때문에(서비스율이 내려간 만큼 겉으로 보기엔 모든 상품의 단가가 내려갔다), 전체 매출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뉴스나 카페 등 인기없는 지면의 광고는 텅텅 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가가 비싸더라도 초기면DA만을 구매하고 싶었던 프리미엄 광고주들은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초기면DA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고, 초기면/서브면 상관없이 클릭량만 같다면 더 많은 노출량을 가지고 노출빈도를 늘리고 싶었던 광고주들(특히, 딱히 멋진 Creative를 통해 알릴 내용이 없었던 광고주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서브면 광고 노출량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광고주들은? 원래 예산으로 원래 구매하던 비율로 광고를 사갔다. 영역별 노출량 끝자리는 지저분했지만 어차피 지면별 광고비중이 훨씬 중요했던 터라 광고주는 상관없어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자 거의 모든 광고주, 대행사, 렙사는 새로 바뀐 시스템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일즈에게 제안을 넣으면 예산별 기본 서비스율만 확인하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제안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몇 번 제안서를 받았을 때 세일즈가 자신들에게 제공하는 예산별 기본 서비스 테이블이 어떻게 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자, 아예 세일즈에게 제안서를 받지도 않은 채로 대행사, 렙사가 광고주에게 선제안을 하게 되었다. 패턴이 표준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일즈는?
사실 내게 잘못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따로 말한 동료들은 거의 없었다. 뭐, 사실 나도 그런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기도 하고.
달라진 것은 세일즈가 시간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제안이 표준화되고 불필요한 것들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세일즈는 단순 업무가 아니라 광고주의 제품/서비스를 살피며 세일즈가 아닌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상품별로 정확한 매출과 광고효율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 수많은 광고주들이 집행하는 광고 캠페인들의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어떤 광고주의 성과가 좋은지, 왜 그런지, 이것이 그 광고주에게만 적용되는지 해당 업종의 광고주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지, 그렇다면 이것을 광고 제안 시에 활용할 수 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업1팀, 영업2팀 같은 이름은 전부 없어지고 컨설팅1팀, 컨설팅2팀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내용만 바뀐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업무의 질이 크게 개선되었고, 매출 면에 있어서 경쟁사를 크게 제치며 성장하게 되었다(물론, 광고 쪽만 잘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개선도 컸다).
세일즈쪽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모든 서비스들은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서비스가 어느 정도의 광고매출을 올리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해당 서비스 담당자 뿐 아니라, 회사의 경영진이 모두 그 자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광고매출과 무관하게 존재의미가 충분한 서비스(ex: 메일 등)는 상관없었지만, 검색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DA매출도 적고 서비스적인 의미도 충분하지 않은 서비스들은 굉장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서비스들이 이전과는 달리 광고부서와 진지하게 협업하는 비율이 늘어났고, 서비스와 광고를 엮는 색깔있는 스폰서십 광고상품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DA광고매출의 상품별(광고영역별) 매출이 정확하게 나오면서 매출예측과 플랫폼 개선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사용자의 시선을 뺏는 것 대비 매출 기여가 낮은 상품은 차례차례 제거되었고, 매출 기여도가 높은 상품 위주로 집중적인 개선이 일어났다. 재무팀은 총매출 뿐 아니라 세부적인 매출을 알 수 있었고, 해당 상품의 매출을 서비스에 분배하여 정확한 매출-비용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광고플랫폼 자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제안이 표준화된 이상 굳이 매번 세일즈로부터 제안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외부에서도 DA광고를 부킹할 수 있도록 오픈 플랫폼으로 열게 되었다. 광고주까지는 아니었지만, 모든 대행사와 렙사가 세일즈와의 협의 없이도 직접 DA광고를 부킹할 수 있게 되었다. 세일즈는 제안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해당 광고계정에 협의된 서비스율을 승인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세일즈는 전체 제안의 90%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시간을 번 만큼 광고주를 이해하고 설득하는데 더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온라인에 대한 광고주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그렇게 TV 위주의 광고시장은 온라인쪽으로 빠르게 이동되어 갔다. 그리고, 광고플랫폼은 이제 온라인을 넘어 모바일 시장을 준비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대략 15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광고플랫폼이 Real-Time Bidding이나 광고최적화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 이게 무슨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인가'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신단가는 그래도 업계 사람들에 꽤 화제가 되었다. 아마 나는 내가 만나보지도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모를 X'로 불렸을 수도 있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광고주였을 때의 경험, 매체 세일즈로서의 경험, 대행사/렙사가 어려워하는 부분, 그리고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광고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개발자와 어떻게 협의를 하고, 이 모든 내용을 무사히 진행하기 위해서 경영진에게 어떤 부분들을 설명하고 지원을 받은 것이 필요한가 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그것도 굉장히 많은 IT 이해관계자가 연관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어떤 부분을 잘 하고, 어떤 부분을 다듬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에 '그래, 한 번 해봐. 뭐가 필요해?'라고 말을 해주었던 광고부문장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는 것이었다. 광고매출을 이렇게 끌어올렸는데도 왜 회사를 떠나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컸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광고는 서비스가 크면 알아서 커나가는 것'이라고 회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광고플랫폼 업무를 다시 놓고, 이번에는 내가 기획했던 광고플랫폼이 실제로 잘 돌아가는지, 광고주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세일즈, 아니 컨설팅 조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번 부서를 옮겼고, 6년이 되던 해에는 두 번째 회사를 나왔다.
사람이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는 광고플랫폼을 만든 것은 좋았지만 결국 회사는 그런 플랫폼을 만든 사람도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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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길게 썼네요. 반응이 좋으면 후속 이야기를 쓰고, 아니면 이것으로 '신단가의 추억'을 마무리지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