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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Aug 29. 2020

원칙에 대하여

원칙은 싫은데 억지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외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강제도 아니다. 다만, 원칙은 지키지 않으면 내 몸이 아픈 그런 것이다.


내 삶의 원칙은 이거야.

(누군가의 책을 읽고나서) 나도 이 원칙을 가져야 겠어.


원칙은 이런 식으로 임의로 정해지거나, 다른 사람의 원칙을 차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칙은 자신이 마음대로 설정할 수도 없고, 누군가 다른 사람 것을 가져다 쓸 수도 없다. 각자의 원칙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나오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일 뿐이다.


처음엔 내 삶의 원칙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원칙을 세우고 그것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마다 잘 되지 않았다. 망설이고, 타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다쳤다. 


어차피 원칙을 세워도 그것대로 따를 수가 없다면 원칙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원칙이란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따르기보다는 그냥 순간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속편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은 반복되었고 그 때마다 업앤다운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멀미가 났다. 그리고 가끔씩은, 정말로 아주 가끔씩은, 굉장히 실망스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자책할 때는... 삶의 바닥까지 내려가곤 했다. 가라앉고, 가라앉아서... 모든 감정들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래서 손을 놓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 마침내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한 번은 죽었고,

지금의 삶은 보너스타임 같은 것이고,

이제부터는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을 내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된다는 것을.


나를 돌아보고, 내가 느끼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어떨 때 내가 즐거운가 어떨 때 내가 상처를 받는가. 그리고 어떤 결정을 했을 때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가. 누군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모든 소음이 가라앉았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나를 무너뜨리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보통 친절한 얼굴을 하고, 나를 이해한다는 얼굴을 하고는 속삭이듯 다가온다. 괜찮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고.


아니요.


저는 다 버려도 되요.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러면... 나를 잃어버리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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