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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13. 2017

우리는 직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직딩에세이 #09

직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 부분을 먼저 정리해보고 싶었다.


1.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직장이든지 간에 그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뉴스 기사를 보고, 검색을 하고, 회사 소개 페이지에 들어가고, 그 회사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는다 해도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나가는 행인1'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밖에서 보는 세상은 안에서 경험하는 것과 틀리다. 아무리 훌륭한 연극이라도 무대 안쪽까지 그렇게 아름답고 고상하게 짜여질 수는 없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안은 제약이 많다. 물론,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문제는 어떻게든 회사 내부에서 먼저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원칙이다. 회사가 어떤 문제를 알고도 해결하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미처 어떤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에 따라 그 이후의 접근방식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아닌 사안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가령 우리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가? 회사 입장에서는 'Why Not?'일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대외홍보 팀을 가진 회사라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회사에요'라고 회사가 직접 말하는 메세지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나가는 만큼 이러한 메세지 자체가 딱딱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은 회사가 하는 말 자체를 믿지 않는다. '그러시겠지요' 한 마디 듣기 딱 좋다. 어떤 쇼핑몰이 '우리가 파는 제품은 완전 쓰레기에요!'라고 말하겠는가? 사람들이 판매자의 말을 가볍게 거르고, 그 물건을 실제로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어떤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감정이입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우리는 심지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부담을 느낀다. 가장 큰 이유는 '그래, 너 잘났다'라는 말을 듣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겸손이 미덕인 문화에서는 자신이 가진, 혹은 자신이 경험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에 많은 제한을 둔다. 여행지, 음식, 카페, 자동차에 대해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 누구나 그 직장을 경험할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 음식, 카페, 자동차와 다르다.

- (회사의 정책으로 인해) 안 좋은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우리가 스스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누군가 직장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다른 의미가 포함되지 않은) 그 사람의 경험이나 고민 그 자체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후자의 경우는 회사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회사에거 겪는 '직장인'으로서의 고민들을 이야기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은 그 회사의 좋은 점 또한 이야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바라보려고 해도, 일년내내 자기 회사 자랑만 하고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좋게 보이겠는가? 어떤 직장이라더라도 '좋은 점'은 필연적으로 그 좋은 점에 연결되어 있는 '부작용'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결국 회사마다 어떤 부분들에 좀더 가치를 두고 다른 부분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선택하게 되는데, 좋은 점만 알리려고 하면 설득 자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좋은 점이나 안 좋은 점 모두 입을 닫고 있었으면 하는 회사는 논외로 한다.


회사의 기밀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직원이 '본인 판단 하에'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속 시원히 결정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 자신이 떠난 회사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는가?


상자에 하도 오래 갇혀있다보니, 회사를 떠난 다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이 경험한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꺼린다. 이 때 그 사람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 그럼 우린 뭐란 말인가?

- 사회적 시선: 떠난 회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아니야.


직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여행이라면 작정하고 마음을 먹으면 (그리고 돈이 있다면) 전세계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의미'로서의 직장의 기회는 정말로 적다. 더욱 곤란한 점은, 우리는 같은 시기에 두 군데 직장에서 Full Time 근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회사라도 20대에 경험한 직장과 30대에 경험한 직장은 매우 다르다. 그 직장이 첫 번째 직장이었는지 몇 번의 이직을 거치고 들어간 직장인지에 따라서도 인식되는 경험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회사도 변한다(진화하거나, 퇴보한다). 또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또 다른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직장'이란 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한 두 사람의 경험담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성공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이 의미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그만두고 분개한 사람의 이야기에 어느 쪽으로든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 한 사람의 의견은 그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판단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자신의 책임 하에 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자신이 경험했던 직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회사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도 가능하면 더욱 좋겠지만, 모든 회사가 이런 방향을 취하는 것이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라면,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떠난 회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만 걷어내면 되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은 '익명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떠난 회사에 대해 화를 내거나 아쉬웠던 부분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욕을 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는 것은 그렇게 효과적이지도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도 못한다. 이를 방지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식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실명으로 이야기했을 때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지'를 듣는 사람이나 회사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발언자의 신뢰성'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 사람이 떠나서 모두가 박수치고 있는' 상황이라면, 혹은 '자신이 다닌 모든 직장에 대해 언제나 안 좋은 측면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회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건 그냥 가볍게 흘려들으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신뢰하는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돌아보게 되고, 회사도 그 문제에 대해 (뒤늦게라도) 점검하며 해당 이슈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은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실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요?


물론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이 있고,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결정을 하면 된다. '익명 금지법', 이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반대로 익명으로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면, 블라인드나 잡플래닛에 올라온 모든 이야기는 스킵하거나 '단순 참고'만 하면 된다.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보다는 좀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경험한 직장'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직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과 수많은 의견이 있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관심없는 작가가 있는 것처럼, 판단은 스스로 할 테니 좀더 많은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페이스북처럼 실명 기반의 서비스라면, 구태여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고 편한가.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마크가 열심히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떠난 동료의 이야기에 대해 좀더 편안 마음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안 좋은 회사라고 생각해서 떠난 것이 아니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싶은 의도도 없다. '나가서까지 힘들게 하네', 이렇게 누군가 생각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들면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 정말로 좋아했던 회사에 다녔던 분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서글프기도 하고, 사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고 어쩌면 응원해 주고 있는데 스스로 오버하고 있는 것인가 고민이 꽤 된다. 


이곳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들은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내용이다. 회사 내에서 계속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직장에 대해서 말하고, 경험하지 못한 많은 직장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TV 드라마에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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