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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17. 2017

의사결정의 세 가지 방식

#직딩에세이 #15

아무리 많은 것을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고 해도 여러 부서와 같이 협업할 때에는 '이해의 상충'이란 것이 발생한다. 수학과 삶이 다른 것은 '정답'이 없다는 점과 옳은 결정을 해도 여전히 잘못된 결정처럼 보이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완벽한 답보다는 그 시점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이러한 선택에는 '주관'이란 것이 반드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먼저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비행기, KTX, 고속버스, 자가용의 선택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인가? 비용, 시간, 피로도, 티켓 구매 가능여부 등의 요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각 이동수단의 장단점과 가용여부를 분석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진다. 특히, 추후에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챌린지가 들어오면 더 그렇다.


그런데, 사실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고려해야 하는 더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가령, '부산에 왜 가는가?' 혹은 '이동수단의 결정은 이러한 목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만약 부산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표가 있고 이를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분석했던 모든 내용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반대로 급한 일이 하나도 없고 회사가 비용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다.


다음으로 '옳은 판단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만약 90% 확률로 10억을 벌 수 있고, 실패했을 때는 30억을 내야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이 게임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수학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하다. 10억 x 90% - 30억 x 10% = 6억이다. 기대값이 플러스(+)이기 때문에 이 베팅을 하는 것이 무조건 유리하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떤가? 만약 가진 돈이 매우 많아서 30억 정도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 내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하는 것이 좋다. 몇 번 10%짜리 불운을 맞이한다고 해도 한 판 당 평균 6억원의 기대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단 한 번만 참여할 수 있고, 하필이면 그 판에 10% 확률에 당첨되어 30억을 잃었다고 해도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30억에 훨씬 못 미치는 재산을 가진 사람의 경우는 어떠한가? 판돈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신용(외상)'으로 참가할 수 있다면 또 어떠한가? 가치관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선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없으면 이러한 기회를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는가? 만약 이 사람이 발이 넓어서 1억을 잃어버려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30명을 모을 수 있다면, 베팅에 참여하는 것이 더 올바른 판단일 수 있다.


결국 어떤 결정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 혹은 회사가 처한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반드시 객관적일 필요도 없고,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의사결정에는 정답이 없고 '최선'이란 것이 존재하며,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주관'적인 요소가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회사의 의사결정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직급이 높은 사람이 결정한다


전형적인 대기업 방식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굉장히 좋은 성과를 내는 IT기업도 많이 적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방식이라고 해도 '모든 결정'을 직급이 높은 사람이 결정항는 것은 아니다. 보통 직급에 따른 '재량권'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자신이 결정할 수 없을 경우에 매니저에게 묻게 된다. 다만 구두로 뭔가를 결정하는 일은 드물고 보통 시스템에 품의를 하고 결재를 받는다.


여러 부서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을 때는, 그 부서들의 차상위 의사결정자에게 결정을 맡기게 된다. 따라서 직원들은 1) 자신이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 2) 어떤 부서와 협의가 필요한지, 3) 누구에게 의사결정을 받을 것인지를 확인하면서 업무를 진행한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질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의사결정자가 해당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를 먼저 추정하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될 가능성이 적을 때에는 (그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 결정하는 방식'에서는 자신의 매니저, 그 매니저의 매니저,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면 최고 경영진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일수록 최고 경영진과 일개 사원의 간격은 태평양보다 더 멀기 때문에,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상부로부터 내려오는 지시는 그냥 (바이패스 모드로) 따르는 것이 더 정신건강에 좋은 편이다.


2. 해당 안건을 누가 결정할 것인지를 정하고, 그 사람이 결정한다


이 방식이 1번의 재량권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1) '어떤 안건을 누가 결정할 것인지'가 사전에 미리 매뉴얼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2) 누가 결정할 것인지가 '직급'이 아닌 '누가 그 사안을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점이다.


최고 경영진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항을 다 잘 알 수는 없다. 또한 심지어 어떤 결정이든 최고 경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에게는 '더 중요한(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다른 결정들이 있다. '부하 직원이 자신 대비 70%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위임을 고려하라'라는 말이 이런 맥락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경우 마크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여전히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내가 당신을 고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크가 하는 일은 회사의 방향을 최대한 분명히 공유함으로써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어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누가 그 결정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을 위임했다면 그 사람의 결정을 신뢰한다. 그 사람에게 업무를 맡긴 자신을 뿌듯해 하는 일도 없고, 실패했다고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법도 없다.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더 그 일을 잘 할 사람' 혹은 '자신이 도저히 그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프로젝트를 끌어줄 사람'에게 업무를 위임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결정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진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채용'이 중요해지고, 어떤 중요한 업무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3. 만장일치 혹은 다수결: 모두가 같이 결정한다


'수평문화'가 붐을 일으키면서 도저히 실체를 알 수 없는 의사결정 방식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모두가 같이 결정한다'라는 환상이다. 이건 대기업은 물론이고, 페이스북에도 없다. 사실, 정말로 이렇게 결정하는 회사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수평문화로 유명한) 페이스북은 모두가 같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나요? 이렇게 물으면 약간 애매해지는데, 질문에 대한 답을 분리하면 아래와 같다.


- 누구나 (광의의 의미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 결정은 누군가가 한다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과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혹은 '최소한 심각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회사는 군대도 아니지만 학교도 아니다. 무엇보다 '정답이 없는 현실'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찾겠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 


만장일치의 가장 큰 단점은 1) 결정이 잘 안난다는 것과 2) 모두가 심각한 '자기확신의 오류'에 빠져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 그리고 3) 끝없는 논의에 지쳐 양보하는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다수결이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니다. 다수결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는 '색깔' 혹은 '방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모두의 의견을 어느 정도씩은 듣다보니 정작 프로젝트의 본질이 흐려진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그것을 풀기 위해 접근해야 하는 '관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도무지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도 하자고 한 사람은 없는' 괴물같은 프로젝트가 되어 버린다. 만약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그 프로젝트의 책임을 지고 결정하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없다면, 최대한 빨리 그 프로젝트를 탈출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세 가지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3번은 제외한다고 치고, 1번(직급에 따른 의사결정)과 2번(그 일을 잘 결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위임) 중 어느 방식이 더 좋은가? 


의외일 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1번과 2번 중 '더 좋은 방식'은 없다. 1번의 경우, Top에 있는 사람의 가치관(혹은 신념)이 확실한 경우 뚝심을 가지고 굉장히 완성도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2번은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시의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직원에 대한 신뢰와 Working Culture를 지키려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회사가 2번 방식을 택할 경우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본인이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하지 못한 채로' 1번 방식을 유지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의논하고, 한 명이 결정하자. 작은 배라도 선장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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