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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19. 2017

집에 잠깐 다녀올께요

#직딩에세이 #17

페이스북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팰로 알토(Palo Alto)에 있다. 바닷가를 매립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꽤 넓은 부지에 2-3층 높이의 낮은 건물 스물 몇 개 정도가 길쭉한 원의 둘레를 따라 맞닿아 있고, 그 안에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듯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바쁘게 걸어다니는 사람, 햇볕을 쬐며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사람,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뭔가를 한참 고민하는 사람처럼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굉장히 이질적인 장면이 펼쳐지는데, 마치 시간을 거슬러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모습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캠퍼스'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곳이다.


곳곳에 직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고, 글로벌 회사답게 식당마다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꽤나 다르다. 물론 공짜고, 사원증 같은 것을 태깅할 필요도 없다. 미국 회사답게 피자나 햄버거 식당이 인기가 있지만(치즈버거는 하나 받아서 두 사람이 나누어 먹어도 될 정도다), 바베큐 그릴도 있고 멕시칸 메뉴도 있고 베지테리안을 위한 샐러드가 종류별로 한 가득 나오는 곳도 있고 해서 질릴 틈이 없다. 일년 내내 지내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건물들 가운데 쯤에는 큰 광장 같은 것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분기마다 (원하는) 모든 직원들이 참석할 수 있는 All Hands가 한 시간동안 열리곤 한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스케이트 보드 같은 것을 타기도 하고, 드론을 날리기도 하는 등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신기한 활동들이 많이 열린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도 근처에 있는데 무료로 빌려서 본사 주위의 바닷가를 따라서 한 바퀴 시원하게 돌아보며 머리를 식힐 수도 있다. 건물마다 재밌는 요소들이 많이 있는데 한 건물에는 목공소가 있었다. 나무와 전기톱과 각종 목공도구들이 있어서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것이 꽤나 신기해 보였다.


일하는 공간으로 들어가보면 건물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들이 많다. '서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모든 책상은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부분은 전세계 페이스북 오피스가 공통적인데,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들은 그 비싼 책상을 그냥 '앉아서' 사용하는데 그치곤 한다. 마침 의자도 허먼밀러이기도 하고. 


천장은 불필요한 부분들을 뜯어내서 최대한 오픈한다. 관 같은 것이 지나다녀서 마치 공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대신, 그만큼 천장이 높아져서 실내에 있어도 상당히 쾌적하고 자유로운 느낌이다. 책상은 서로 붙어있고 칸막이 같은 것은 없다. 서로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모니터로, 한 사람 당 하나 혹은 두 개의 (최고 사양의) 큰지막한 모니터가 (역시 그 모니터만큼이나 비싼) 모니터암으로 책상에 연결되어 원하는 각도로 조정해서 쓸 수 있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 중 하나는 '임원실'이 없다는 것인데 마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직원(전직원이라 쓸까 하다가 내가 모르는 경우가 있을까 해서)은 그냥 여느 책상 중 하나를 사용한다. 원래 마크도 이렇게 One of Them으로 같이 쓰다가, 외부의 손님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자신의 방을 갖게 된 것으로 들었다. 대신 어디에 꽁꽁 숨겨진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유리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처음 페이스북에 입사하면 본사로 오리엔테이션(On-boarding 교육이라 부른다)을 받으러 가는데, 아무리 캠퍼스를 둘러봐도 마크가 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오리엔테이션 때 친해진 동료 한 명에게 물어보았더니, '응? 난 매일 마크 보이던데?'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장 자주 가던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 붙어있는 건물에 'Dont' look at the animal!'이란 글자가 붙여진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마크가 있던 방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모두가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는 공간에 회사의 CEO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쇼킹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회사의 CEO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이 다른 회의실에서 근무하며, 입구에는 비서가 있고, 식사는 일년에 한 두번씩만 '보여주기 위해' 사내식당을 이용하곤 했으니 매일 마크 앞을 지나가면서도 그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로는 생각보다 곳곳에서 마크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가령 피자 식당에서 마크는 똑같이 줄을 서고 앞에 있는 사람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둘의 대화로 보아서는 그 사람은 마크를 알고 있지만, 마크는 그가 누군지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먼저 다가가 아무 얘기나 시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상 그 전에도 마크를 굉장히 많이 보았으리라. 그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설마 회사의 CEO가!'하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새로운 건물을 크게 지어서(높이는 여전히 낮으나 굉장히 넓은 공간 하나를 지었다), 마크는 그 건물 안의 유리방 안에서 살고 있다. 원하는 사람은 아무나 들어오시오! 이런 느낌과 함께. 


페이스북 직원이 아닌 외부 손님이 오면 가장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는 '소모품 자판기'이다. USB로부터 마우스패드, 매직마우스, 무선키보드, 배터리 어댑터, 헤드폰에 이르기까지 회사 업무에 필요한 상당히 많은 제품들이 번호와 함께 자판기 안에 전시되어 있다. 사원증을 태깅한 후 해당 숫자를 넣으면 '턱'하고 떨어진다. 별도의 결재나 품의는 필요 없다. 이것만으로도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별도의 비용이 직원에게 청구되지 않음' 혹은 '횟수 제한없이 이용 가능' 이라고 말하면 쇼크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소모품 밑에는 가격이 적혀 있기는 한데, 이건 '얼마짜리니 아껴 쓰시오!'라는 의미일 뿐 실제로 청구되거나 하는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용하면 어쪄죠?'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악용할 사람은 뽑지 않아요. 이렇게 쿨하게 답한다. 혹시나 잘못 들었나 해서 한 번 더 물으면.

바빠요. 이런 걸로 묻지 말아요. 이런 답은 듣게 된다.


또 하나, 외부 손님들이 페이스북(본사 혹은 국가별로 있는 오피스)을 방문했을 때 놀라곤 하는 것은 '술'이 있다는 것이다. 와인, 맥주, 위스키가 있고, 페이스북 코리아에는 한 술 더 떠서 '소주'도 있다(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여명808도 있었다). 전시용도 아니고, 냉장고에 차갑게 비치되어 있어서 직원들은 아무 때나 꺼내 먹을 수 있다. 근무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낮술로 먹어도 무방하다. 육포나 마른 오징어와 같은 안주도 같이 준비되어 있고, 라면도 언제든지 끓여 먹을 수 있다. 원래는 김치까지 있었는데 (Facility를 담당하는 외국 동료분의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김치는 없어지고 말았다. '정말로 마셔도 되는지'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가끔은 원하는 술을 꺼내 한 잔씩 마신 후에 미팅을 시작하기도 했는데, 술을 마시건 마시지 않건 간에 굳이 쳐다보는 사람도 없고, 지나가다가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옆에 와서 한 잔 하고 가는 동료도 있다.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들도 인상 깊은데, 페이스북의 Working Culture를 여러 문장으로 다룬 표현들이다.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Done is better than perfect. Nothing at Facebook is somebody else's problem. Move fast & break things. 표현들도 좋지만 타이포그래피 느낌의 디자인도 좋고, 대부분 (약간 누런듯한) 두꺼운 흰 종이에 빨간 글자로 적혀 있어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2020년까지 세계 3대 회사로! 매출 XXX 달성! 이런 슬로건보다는 백만배쯤 낫다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을 다니면서 늘 느끼던 부분이지만, 페이스북에는 '일관성'을 굉장히 많이 느낄 수 있다. 회사의 철학(Vision & Mission)이나 서비스(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오큘러스 등), 문화(Working Culture), 그리고 오피스(Office)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서로 닮아 있다. 일을 할 때만 어떤 방향을 취하고 다른 부분에선 완전히 다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을 이해하면 '미루어 짐작해도 좋을 만큼' 다른 부분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단순히 건물만 신경써서 짓거나 팬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오피스란 무엇인가?


집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사실상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어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근하고 퇴근 시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불편한 것들을 모두 잊은 채로' 가장 효율성 높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의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일수록(완전히 백지부터 새 판을 짜야 하는 업무일수록),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부분들도 꽤 중요하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과잉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투자'하고 있는 것이란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막말로 불필요한 회식이나 접대만 줄여도 우리가 일하는 공간들을 얼마나 좋게 개선할 수 있겠는가.


자유로운 분위기인 만큼 근무시간에 이야기하는 소리가 많이 들리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음악을 틀어놓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인 만큼, (음악이 켜져 있으면 업무를 못하는 나는) 노트북을 들고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거나, 사우나를 가거나 집에 가기도 했다. 그런 다음, 모두가 퇴근했을 무렵에 유령처럼 사무실에 나타나곤 했는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굉장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회사란 공간이 언제라도 마음 먹으면 올 수 있고, 오고 싶은 공간이라는 그런 만족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한국에도 페이스북 오피스보다 더 좋은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데, 굉장히 좋은 변화라고 느껴진다. 무엇보다 직원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오피스 인테리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회사의 철학이 아닐까.


페이스북에는 출근과 퇴근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에, 집에 갈 때는 오피스에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집에 잠깐 다녀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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