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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20. 2017

리.스.펙.트.

#직딩에세이 #18

Respect. 동료를 존중하라.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는 데에 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존중하는 동료들과 함께 있다면,


1) 표현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겠는가

2)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조심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정답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2번을 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기대와는 다르게' 페이스북(특히, 한국과 일본 오피스)에서도 많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표현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것일까.


1. 존중을 매순간 표현해야 하는가.


페이스북에서 친한 동료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날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잘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 얘기를 '언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는 잘 알겠다고. 한편으론 그 친구의 공감 능력이 부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그냥 바로 가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여긴 페이스북이고, 우리 모두는 문제를 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동료를 정말로 신뢰한다면 왜 그것을 매 문장마다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아, 맞아요. 좋은 생각이에요. 그런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데' 뒤에 나오는 부분이다. 오른쪽으로 갈 지, 왼쪽으로 갈 지 서로 다른데 항상 시작은 '아, 맞아요. 좋은 생각이에요'로 시작해야 동료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의견에는 정말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존중하지 않는(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동료와 같이 있다면 고려할 수는 있는 방식이 아닐까.


사람들은 '사족'이라고 생각되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나 아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어떤 표현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히 알 만큼 알았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상태에서도 매번 존중을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아니, 최소한 정답이 없다는 것만이라도 인정해 주었으면 했다. 말끝마다 존중을 표현하지 않다 하더라도 충분히 동료를 존중하는 사람의 유형도 있다고. 오히려 그 사람이 표현에 덜 신경쓰는 것은 존중하는 동료에 한해서라는 부분을 말이다.


2. 단정지어 말하면 안되는가.


논쟁(Debate)의 본질은 '논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차적인 것들에 대한 주목도를 낮추고, 결정해야 하는 사항에 초점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완벽한 흑과 백은 없다. 어느 사항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한다. 이럴 때, 매번 그 반대 가능성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90%의 성공확률을 가진 A와 10%의 성공확률을 가진 B라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치자. 편의 상, 성공 시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같다고 가정한다.


1) A를 해야 합니다

2)B의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A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굉장히 명확한 사안이고, 심지어 '아무도 A를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2번과 같이 이야기한다. 특히 A를 준비한 동료와 B를 준비한 동료가 그 회의 시간에 참석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시점에서는 A와 B 중 어느 것의 성공확률이 더 높을지 알 수 없던 상황이었고, 지금 B를 준비한 동료에게 '왜 그렇게 리소스를 낭비했냐고' 아무도 챌린지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존중의 표현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의견이 같은 사항은 빠르게 패스하고 정말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들에 집중한다, 이것을 설득하는 것이 의외로 회사에서 꽤 어렵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10%의 확률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기대값이 같고 몇 번의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A 대신 B를 선택하자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렇게 단정해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페이스북 본사에 출장을 가거나 한국으로 출장 온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는 상대적으로 이런 문제가 적었다.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훨씬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핵심을 명확히. 문화권의 차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갑갑한 마음이 너무 컸다. 우리도 그렇게 말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이 늘 맴돌았다.


신뢰하는 동료와 함께 일하고 있다면 더욱 그래도 되지 않을까.


3. 양보는 동료에 대한 예의인가.


주장하는 바에서 서로 한 발자국 물러나 대타협을 이룬다. 이것은 굉장히 아름답게 포장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서로 '양보가 있을 것'을 전제로 (스스로도 채택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요청을 하고 협상 프로세스 중에서 (원래 생각했던 수준으로) 양보를 한다. 이러한 양보는,


-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방식인가,

-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방식인가?


A와 B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위 경우처럼 그 사이 어딘가의 포지션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 (존중하는 동료와의 협의 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자신이 생각하는 포지션'을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막상 협의에 들어갔더니 40과 80처럼 큰 차이를 보일 수는 있다. 각자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서로 20씩 양보해서 60을 결정하는 것이 미덕인 것은 아니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40이 낫겠어요

- 60정도로 균형을 맞추는게 좋겠네요

- 80이 가장 일리가 있는데요


위 세 가지는 완전히 동일하다. 60이 더 아름다운 결과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오히려 회의 때마다 양보할 것을 전제로 일단 큰 숫자를 부르고 회의에 임하는 동료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목표매출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제로섬게임(한 사람이 적은 숫자를 가져가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숫자를 가져가야 하는 상황)에서 설익은 '협상의 법칙' 따위를 들고 나오는 동료는 실격이다.


4. 그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의 의견도 반대할 것인가


이건 리스펙트를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대표적인 문제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과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분리하지 못한다. '너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난 그것을 택하지 않겠어' 이런 류의 답을 여러 회사에서 꽤 많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존중의 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조언도 듣곤 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강조하던 동료에 대한 존중인가.


아이러니컬한 점은, 정작 일을 잘 하는 동료들은 존중(Respect)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이들이 회의에 들어와서 신경을 쓰는 것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는가'하는 점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보다는 새로운 정보(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에 좀더 집중하는 것이다.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회의에서 바로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에서 나오는 논점들에 대한 이해도 빠른 데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하고 변경된 방향에 대해서 빠르게 논의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들이 있다. 물리적인 폭력, 욕설, 차별적인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면,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과 '일하는 방식'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좀더 편하게,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논점을 명확히하고 아이디어들을 발전시켜갈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친애하는 동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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