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19
거의 모든 회사에서 지겹도록 강조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스킬(Communication Skill)이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꽤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이런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을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참고로, 이 포스팅은 학문적인 글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자랑스럽게 본인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내용도 아니라는 점(오히려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서는 주홍글씨의 낙인을 받곤 했던 사람의 글이란 점)을 다시 한 번 리마인드!
1.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일을 잘 하는지?'의 질문에는 망설이는(겸손쩌는) 사람들이 많지만,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서는 희한하게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대한 편이다. 10명에게 물으면 거의 7명 정도는 본인이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한 나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의 이슈와는 달리, 커뮤니케이션은 '인격'에 관련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어느 회사를 가든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이 항상 넘쳐났다.
2. 다른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 3자의 입장에서(여기서의 제 3자란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관한 한, 완전히 낙인이 찍혀 '도대체 어떤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벤치마킹해야 하나'를 살피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라보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 사이에는 굉장히 심한 간격이 존재하곤 했다.
그럼 가서 말해주지 그래요?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그렇게 말해요. 대신 알아듣게 '시그널'을 주죠. 뭐, 고칠 지 아닌 지는 그 사람 마음이지만.
요런 대답을 듣곤 했다. 재미있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확신'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 느끼는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정확히 반비례하는 성향올 보인다는 것이다. 본인이 에고 혹은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만큼, 다른 사람이 보내는 '시그널'이란 것을 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3. 그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혹은,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단 말이 길다. 그리고, 결론을 듣기 전에는 그 사람이 '그래서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인지(가령 강릉으로 가자고 하는 것인지, 부산으로 가자고 하는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 더욱 곤란한 것은, '결론을 생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그 회의에서의 상황적 맥락과 평상 시의 그 사람의 업무 성향을 비롯한 많은 '단서'들을 떠올려야 하는데,
그냥 말로 하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지울 수가 없다.
참고로,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것(말 혹은 메시지)'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목소리톤, 손동작, 자세 등) 간에 차이가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공이 없는 자의 어설픈 추측은 화를 부르기도 한다. 왜 항공기 추락사고를 설명할 때 항상 나오는 그 예시가 있지 않은가. '지금 추락할 정도로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를 듣는 사람이 걱정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평소와 같게' 전달했던 그 사례 말이다.
4. '다음 회의'에서 결정하자는 경우가 많다.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다행히 회의에서 모두가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관계 없겠지만(사실, 이런 경우에는 굳이 그 회의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무슨무슨 선언이나, 도원결의 같은 것이 아닌 이상), 의견이 갈릴 때는 서로의 입장을 정말로 충분히 고려한다. 당연히 회의는 늘어지고 논점은 갈 수록 미궁으로 빠진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쳐, 가만히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하는 것인지도 헷깔리게 된다.
그리고, 회의시간이 5분 남았다는 것을 누군가 이야기한다.
'큰일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안도의 빛'이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에게서 보인다. 그러면, 그 유명한 멘트가 나온다. '그럼 이 문제는 다음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하시지요. 언제 모이는 것이 좋을까요?'
의사결정자가 모두 그 회의에 있는데 왜 다음 회의로 계속 미루는 걸까. 처음에는 이 사람들의 심리를 알기 어려웠다. 물론, 안건 자체가 복잡하고 좀더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 다시 회의를 잡아야 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 빈도가 굉장히 많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앨론 머스크처럼 재활용 로켓을 이용해 화성에 가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은 회의 시간에 공개적으로 누군가의 의견을 반대하기 보다는, '회의가 끝나고' 그 사람과 좋은 때 적당한 장소에서 1:1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점이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회의가 끝나야 하는데' 회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면 이만큼 곤란한 것이 또 있었을까!
5.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 다르다.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은 '메시지'보다 '상황적 맥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같은 건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주로 1:1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욱 그 사람에 맞춘(Customized) 컨텐츠가 전달된다.
특히 그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거나 '의사결정자'인 경우는 더 심해진다. 이야기 도중에도 상대방의 표정이나 반응을 보면서 방향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사람이 원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싶어하는 호기심 많은 제 3자가 탐정이 되어 그 사람이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씩 인터뷰를 해보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사용했던 암호판 같은 것이 나온다. 이걸 해독하려면 앨런 튜닝같은 능력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기도 했다. 해결방법은 회의실에서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은 '공공의 적'으로서 커뮤니케이션 리그에서 영원히 추방당하게 된다.
6. 무슨 패를 들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포커의 그것과 비슷하다. 첫째,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 한다(포커페이싱). 둘째,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베팅(콜할지 죽을 지 레이스할 지)을 어떻게 할 지가 더 중요하다. 셋째,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원페어로 이길 수도 있고, 플러시로도 죽어야 할 때가 있다). 넷째, 자신이 들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 보다는 상대방이 그 패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어떤가. 꽤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포커는 그냥 카지노 같은 데서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7.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의 프로젝트 성공률은 랜덤분포를 따른다.
프로젝트 시작 시점에는 분위기가 참 좋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과 서로 다른 논점을 피해가기 때문에, 그리고 애초에 무리한 일정에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도 (최소한 회의 시간에는)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중반에 이르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시간이 좀더 지나고 마감시계가 째깍거리게 되면 '아무리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목소리가 높아지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슬슬 비상탈출을 생각할 때다. 혹은, 모든 사람이 합심하여 프로젝트의 성과보다는 '모두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입을 모을 수도 있다.
물론 언제나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모인 경우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없이도' 자체적으로 처리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정도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프로젝트 결과와는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랜덤분포를 따른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의 7가지 특징을 알아보았다.
다만, (당연하 이야기겠지만) 이러한 특성은 '정말로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비율은 매우 적다(회사 입장에서는 레어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본인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예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사람들의 말을 잘 이해하고, 본인의 생각을 뚜렷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이 '이에 대한 상처를 받지 않게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오히려 본인 생각이 정리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상황 말이다.
의도를 가지고 노력해서 된다기 보다는 타고났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나 우리는 알 지 않은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는지. 그리고 그녀가 본인의 스케이팅 실력을 자랑한다기 보다는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얼마나 더 노력을 했던지를.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모두가 김연아처럼 스케이팅을 탈 수는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