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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23. 2017

기대치를 낮추면 행복해진다?

#직딩에세이 #21

이거 해보고 싶지 않아요? 어느 직장이고 이렇게 물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시키지 않은 업무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철이 없거나,

요즘 할 일이 없는 사람


이렇게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가볍게 썩소하고 무시하려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다른 질문들이 있다.


이거,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제가 해볼까요?


이해하긴 쉽지 않지만, 이런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어적이 된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여러 직장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이런 질문을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제안이 썩 괜찮고 실현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 더욱 방어적이 된다. 오랫동안 그 업무를 했는데 정작 자신은 그 생각을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이 되니까.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사람들(아시겠지만, 좋은 뜻은 아니다)은 이러한 제안을 잘 하지 않거나,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다. 굉장히 재능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문득 이러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도록' 하는 마법의 화술같은 것을 연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좋은 생각이 들면 그냥 가서 말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지 않은가. 특히 '최고의 동료, 가득한 신뢰'를 캐치 프레이즈로 삼는 회사라면 말이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 오랫동안 고민할수록 좋은 생각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지만

- 그 생각이 책상에서 나올 때는 드물고

- 아예 우연히 떠오르기도 하고

- 포기하고 몇 년 있다가 불연듯 답을 찾는 경우도 많다(새로운 직장에서 이를 적용한다. 이전 직장 미안~)


'샤워하면서' 좋은 생각이 난다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잠에서 깰 때'라고 이야기하고, 혹자는 '걸어가다가 문득'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이야기다. 고민이 있다고 해서 좋은 생각이 날 때까지 샤워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표현의 실제적 의미는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생각한다'에 가깝다. 출근, 퇴근, 식사, 집 이런 것과 관계 없이, 다른 무엇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뇌의 한 구석'이 그 문제를 계속 풀고 있다가 '아하!'하고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머리 속에 앵앵거리는 모기 한 마리를 탁하고 잡기 전에는 워라밸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 중요한 것은 '실행'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도 된다. '입개발자'라는 말이 한동안 꽤나 유행했다. '말로만 개발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실제 개발능력은 떨어지는데 어디가서 강연만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기가 개발한 수많은 거창한 프로젝트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발자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아는 척 하는(책 몇 권 읽은) 기획자를 의미할 때도 있다. 꼭 개발 이슈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수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지만 어느 하나도 마무리짓지 못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주위에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를 찾는 것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본인이 일을 할 수 없는(혹은, '어쩔수 없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이름하여 '프로불편러'다.


그런데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람이 정말로 '실행을 할 수 있을 때' 더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비율로 따지면 대략 10:1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실행력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면,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오늘도 일을 하고싶은 사람들'은 한숨부터 내쉰다. 좋은 생각이기 때문에 '반격(?)'이 쉽지 않고, '그럼 당신이 해 보시던가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정말 해버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와, 괜찮은 생각인데요? 같이 해보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실제 회사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은 A급인재에 국한된다. 그들은 좋은 생각을 들으면, 게다가 실행 가능성까지 높으면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머리 속에서는 벌써 그 다음 단계에 필요한 일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일은 재밌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명제에 공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다는 것을 '내가 받은 돈 만큼의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이란 것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재미있다면 '당신이 회사에 돈을 내고 다니셔야지요?'라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 실제로 일이 재밌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싫은면 중이 절을 떠나야 하는 법'이라고 이야기를 끝낸다.


일에서 재미를 찾지 않는 사람들은 '관계'에서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찾는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어떤 프로젝트를 '같이'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는지를,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훨씬 더 많은 공감을 한다. 혹은, 회사 밖에서의 삶에 많은 의미를 둔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을 때, 즐거움의 1순위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 있었어요?


어떤 프로젝트가 끝나고 이렇게 물으면 '금기어(회사에서는 서로 말하지 않도록 암묵적인 합의를 맺는 단어)'를 들은 표정이 된다. '아, 예, 그렇죠 뭐'라고 답변을 하기도 한다.


그럼, 한 번 더 같이 해보실래요?


이렇게 물으면 전쟁이 된다. 겨우 문제 하나를 끝냈는데 (시차도 없이) 또 문제를 일으키다니!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기대를 낮추면 행복해진다'였다. '행복 = 현실 / 기대치'라고 정의하면 이 말을 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기대치는 '분모'에 있기 때문에 이 숫자를 높일 수록 같은 현실에도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반대로 현실이 변하지 않아도 기대치를 낮추면 행복 지수는 올라간다.


그런데 '현실'을 왜 고정하는가?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조절할 것은 기대치밖에 없다. 그래서 '기대를 낮추면 행복해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해지고 싶은가? 혹은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행복이라는 느낌을 갖고 싶은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아무리 큰 기대치를 갖더라도, 분자에 있는 현실을 끌어올림으로써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 꿈을 꿀 수 있는가'하는 점이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깨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표가 아니어도, 스톡옵션이 없어도, 누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를 하고 인정을 해주는지와 관계 없이, 직장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월급을 받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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