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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25. 2017

직장인의 사계절

#직딩에세이 #24

직장에도 계절이 있다.


1. 봄


새로 회사에 합류했거나, 같은 회사라도 완전히 다른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희망과 불안이 공존한다. 사무실을 둘러보고 기본 규칙을 조심스레 살피며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단계다.


3개월.


회사가 암묵적으로 어떤 사람의 적응을 위해 기다려주는 시간이다. 물론 합류하자마자 바로 실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직원으로 뽑았다고 하더라도 3개월 내애서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채용을 취소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직원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새로 합류한 회사에서 어떻게 '각을 잡고' 일할 것인지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봄에는 주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다. 페이스북의 경우 온보딩(On-boarding)이란 이름으로 미국 본사에서 5일간의 교육을 받는다. 실무적인 내용보다는 주로 '문화(Culuture)'에 대한 강조가 주를 이룬다. 그 다음으로는 아시아(APAC) 헤드쿼터가 있는 싱가포르에서 다시 부트캠프(Bootcamp)이름으로 5일간의 교육을 받는데, 이 때는 (여전히 하늘에서 바라보기는 하지만) 회사에 어떤 역할의 조직들이 있고 서로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일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배운다. 부트캠프가 온보딩보다 약간은 더 실무적이긴 해도, 여기까지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는 매우 어렵다. 모든 내용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하고.


온보딩은 주로 입사 첫 주에 진행되고 부트캠프는 바로 이어서 할 때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오피스로 돌아갔다가 몇 주 후에 진행될 때도 있다. 자신의 근무지에서는 1:1으로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다시 그곳만의) 문화와 조직구성,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기가 속한 팀 내 사람들과도 1:1을 하는데 매니저로부터는 자신이 해야할 업무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을, 팀 동료로부터는 대략적으로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페이스북의 이러한 교육이 다른 회사와 비교하여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거의 찾기 어렵다. 실제로 위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났을 때,


"아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좀더 개선이 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은 '시간이 가장 중요한 리소스'라고 생각하는 곳이기 때문에, 업무에 필요한 내용은 각자가 알아서 찾고 익혀야 한다.


왜 아무도 나를 가르쳐주지 않지? 왜 아무도 내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지 않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3개월이 휙 지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3개월이 지났을 때 매니저가 찾아와, '자, 3개월이 지났으니 이제 일 좀 하셔야죠'라고 말하고 격무로 밀어넣는 일도 없다.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여전히 혼자만 봄길을 걷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의외라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으나, 페이스북은 사람에 대한 관리가 그렇게 타이트하지 않다. 만약 작정하고 편하게 쉬기로 했다면 한없이 편하게 지낼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미친듯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봄은 '회사의 철학을 이해하고, 어디에서 정보를 얻고, 자신이 어떻게 업무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하는 시점이다. 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3개월이란 시간 내에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회사와 자신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봄'에 떠오른 생각과 다짐들은 그 회사를 떠날 때까지 자신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2. 여름


Are you ready? 이런 말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여름엔 날씨도 좋고, 햇살도 강하고, 어떻게 보면 미친듯이 달리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땀이 나고 지방이 타는 그 느낌 자체가 좋기도 하고,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는 휴식도 달콤하다. 여름은 현실에선 1년 중 1/4에 해당되지만, 직장인의 사계절에서는 (당신이 정상적으로 회사에 적응하고 있다면)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한다.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으로 모든 것들을 빨아 들이는 시기로 직장인의 여름은 스펀지를 떠올리게 한다.


페이스북에서 제대로 된 여름을 맞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반대로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업무를 자신이 찾아서 하면 된다'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을 즐기는가 아니면 불안하게 생각하는가가 초기에 페이스북에 제대로 적응하는데 굉장히 큰 차이를 가져온다.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얻는가?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USB를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최근에 만들었던 장표 중에 공유 가능한 파일들을 USB에 넣어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동료가 '제가 왜요?' 하는 일 없이 아낌없이 넣어준다. 'Be Open'의 회사인 만큼 자료를 건네 주었을 때의 책임은 온전히 '자료를 받은 사람'에게만 있다. 따라서, 어떤 장표를 전달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자신이 만든 (너무 오래되지 않은) 자료를 다 넘겨주는 경우도 꽤 많다. 자료를 일일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우도 꽤 많다. 그리고, 자료를 USB에 담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노트북의 폴더를 슬쩍 살펴볼 수도 있는데, 폴더 이름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만 봐도 대략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두 번째는 '위키(Wiki)'를 통해 찾는 방식이다. 위키는 페이스북의 사내 정보망으로 개발자, 디자이너, 세일즈 등 부서를 가리지 않고 많은 페이스북 직원들이 다른 사람에게 공유가 필요한 내용들을 온라인으로 정리해 놓은 곳이다. 꽤 딱딱하게 정리되어 있고, 개발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굉장히 다양한 범주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이 있다면, '페이스북은 구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신입(Noob이라고 부른다)이 알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세 번째로 많은 정보를 얻는 곳은 페이스북 그룹(Group)이다. 일반 이용자가 페이스북 그룹을 이용할 때의 바로 그 그룹이며, 다만 사내 그룹은 형식은 같으나 페이스북 직원들만 접근 가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사내그룹으로 만들면 그룹의 공개범위가 자동으로 페이스북 직원으로 제한된다. 그 사람이 퇴사하면 다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보안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위키에 비해서 그룹이 좋은 점은 '묻고 답하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 위키에 대해서 그룹이 좋지 않은 점은 '물은 내용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답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무엇보다 위키와 그룹의 공통점이 문제인데, 도대체 어떤 그룹들이 있고 어떤 내용을 어느 그룹에 물어야 하는지를 알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룹에는 '에티켓'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미 나왔던 질문을 그룹 내에서 검색하지 않고 다시 묻는 것은 금기로 여겨진다. 그룹에서 나오지 않았던 좋은 질문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페이스북 직원들이 열광적으로 논쟁하며 답을 달아주지만, 철없는 신입이 여러 번 나왔던 질문을 올리면 아무도 답해주지 않거나 '검색 좀 해보시죠'라는 쌀쌀맞은 답변이 달린다.


마지막으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직접 데이터를 뽑는 것'이다. 크게 대시보드에 접근하는 방식, Tool의 권한을 받는 방식, 그리고 Hive에서 직접 SQL을 날리는 방식이 있다. 후자로 갈수록 고급진 영역이고, 페이스북이라 하더라도 권한을 잘 주지 않고, 공부도 많이 필요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누군가의 도움 없이' 뽑을 수 있는 자유도가 급격히 늘어간다. 다시 말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찾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그 데이터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DB와 그 안의 테이블이나 필드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지'가 굉장히 불명확해질 수밖에 없다. 요청의 달인이 되던가, 아니면 직접 뽑을 수 있던가의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페이스북이 '질문'을 장려한다고 해서, 언제든지 아무에게나 무엇이든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묻는지 간에 꼬박꼬박 답해주는 것은 마크 정도이고(그 마크도 어떤 질문들은 굉장히 짧게 답한다. 면박주지만 않을 뿐이다), 대부분의 페이스북 직원들은 무척이나 '바쁜' 상태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친한 동료가 아닌 이상(혹은, 상호간에 필요한 정보를 '빚지고 있는' 상태가 아닌 이상)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질문 전에 충분히 스스로 찾아 보았는가?'하는 점이다. 페이스북에서 굉장히 친했고, 서로 많이 의지했던 동료가 한 분이 있었는데, 입사 초기에 이 분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질문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질문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형석님, 그룹에서 찾아 보았나요?


이렇게 말을 해 주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매우 부끄러웠다. 사실상 그 순간이 페이스북에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야 하는가?'의 기점으로 작용을 했다. 이후로 뭔가를 묻기 전에는 스스로에게 분명히 납득할 수 있는 상태까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페이스북에서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깊은 정보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3. 가을


가을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은 '수확'이다. 한 여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시점이다.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물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이제는 업무도 굉장히 익숙해졌고, 다음 분기에 어떤 업무를 할 지,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 자신이 붙는 시기이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아쉬움이 싹트는 시기이기도 하다.


봄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여름엔 미친듯이 달렸다. 그리고, 잠깐의 드디어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게되는 가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회사에서라면 '여긴 회사니까'하고 또 그렇게 넘겼을 이야기가 페이스북에서는 더 크게 느껴진다('페이스북에서도?'). 분모를 줄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생각을 다듬고,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게 된다. 한 번에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관점에서 다시 접근한다. 물론 모든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이슈를 제기하게 된다.


한 편으로는 업무, 한 편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가진 기업에 대한 내용이다.


분기 단위의 짧은 싸이클의 성과를 강조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 한국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본사로 이슈 레이징을 하는 부분, 중요한 업무의 처리방식에 대한 합의, 본사와 다르게 진행된다고 생각되는 페이스북 코리아의 문화, 어떤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맡고 있는 업무를 넘어 페이스북이 한국에서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또는 사회에 어떤 변화와 가능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하여 목소리를 가지게 된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과 자신의 업무성과에 대한 균형(Balance)을 맞추는 것 또한 중요해진다(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어떤 것을 주장하기만 하는 경우에는 동료의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든 가을은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로 작동한다.


4. 겨울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세상은 완전히 변한 모습이 된다. 사실, 보다 본질적인 변화는 이미 지난 가을에 형성되고 강화되었지만, 마음 속에 있던 생각들과 눈으로 마주한 겨울은 완전히 다른 영향을 준다. 반복된 이슈 레이징은 개인이나 회사에 모두 (좋은 의미로든, 안 좋은 의미로든) 내상을 입힌다. 언제나 변화를 찾는 개인과, 이제는 안정을 더 원하게 된 회사의 궁합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물론 겨울에도 이벤트는 있다. 크리스마스와 같이 모두가 모여서 서로가 소중하다고 이야기해주고, 내년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정말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크리스마스이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를 건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도,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크리스마스는 일년에 하루이고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겨울에는 이미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것은, 그만큼 아쉬움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신을 바꿀 수 있고', '저 고개만 넘으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기대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게 한다. 그러나, 그 기대만큼 상처는 더 커지고,


마침내 전혀 뜻밖의 영역에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의 오해와 상처를 서로에게 안기게 된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과 같다. '좋아하는데 왜 헤어져요?'라고 말하는 것은 대학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비슷한 점은, 이별의 직접적인 계기가 헤어짐의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모든 것은 이미 가을에 시작되었고, 겨울은 그것을 확인하는 계절에 지나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안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 만큼 또 그렇게 쪼잔한 것은 없다.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떠나온 직장에 대해서 말할 때 사람들을 조심하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듯이 그렇게 직장에 대해서도 좀더 편하게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군가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닌 무엇인가'가 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의 장점은 반드시 그 사람의 단점과 연계되어 있다. 또한,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직장이든 연애이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안 좋았던 기억은 대부분 가라앉고 좋은 기억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좋아했을 수록, 그리고 상처가 깊을 수록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봄날은 간다'가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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