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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Mar 12. 2018

업무를 점검하는 3단계 프로세스

#직장을즐겁게 #04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를 정기적으로 점검(Self Review)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이 '재미없는 것' 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재밌고 즐거울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1. 진단: 자신의 업무지도를 만든다


업무지도(Working Map)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업무 현황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한 업무의 나열은 아니다. '지도'라는 표현에 담긴 대로, 비슷한 업무를 묶고 분류하여, 현재의 하고 있는 일과 이에 대한 만족도를 직관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자.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 알게 모르게 자신이 놓인 상황에 꽤 영향을 받는다. 평소 일을 할 때는 책상이 좀 어지러워도 상관없지만, 업무를 돌아볼 때에는 책상부터 먼저 정리가 되어 있는 편이 낫다. 굳이 퇴근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책상을 정리하는 목적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라면, 이 과정도 업무의 일환이다. 스스로 떳떳하면 굳이 업무를 업무시간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업무지도를 만드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포스트잇(혹은 독서카드)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예, 예, 알고 있어요. 완전 구닥다리 방법이죠.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보다 그냥 포스트잇(혹은 독서카드)처럼 '종이에 키워드를 적는 방식'을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툴(Tool)이 좋으면 원래 하려던 목적을 까먹기 쉽다. 툴의 기능에 빠져서 불필요한 생각을 펼치고, 뭔가 굉장한 것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반면, 21세기에 여전히 종이에 뭔가를 손으로 '적는 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생각은 자동으로 정리되곤 한다.


종이에 적을 때 규칙은 단 두 가지이다.


1) 자신의 업무를 생각나는 대로 막 적는다

2) 단, 키워드로 적는다(문장으로 줄줄 쓰지 않는다)


혼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스로 검열하지도 말고, 업무 순서나 범주대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키워드로 적고 책상에 놓을 때는 아무렇게나 놓고, 분류는 나중에 해도 된다. 더 이상 키워드로 적을 업무가 생각나지 않으면 비슷한 유형의 카드끼리 묶고, 제목을 단다. (기억력이 나쁜 자신을 위하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머리 속에 넣는다. 만약 이 과정이 익숙하지 않다면 파워포인트 1장으로 정리하여 잘 보이는 곳에 붙여도 좋다(누가 보면 굉장히 제대로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나선, 이 업무지도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을 하면 된다.


뭘 없애고, 뭘 추가하는 것이 좋을까?


2. 제거: 공간을 만든다


단언컨대, 더 의미있고 즐겁게 일을 하려면 뭔가를 더하기 전에 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공간을 만든다'라고 표현한다.


그냥 추가로 시간을 투여하면 되지 않아요?


답은 No다. 그렇게 해서는 업무에 발전이 없다. 평상시라면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냥 군소리 없이 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업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순간이다. 이 때 만큼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 중에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분명히 마음을 정해야 한다.


(너무 다 중요한 일이라서) 도저히 뺄 일이 없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직장인은 거의 없으니, 혹시 본다면 그냥 축복해주자. '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요'가 더 현실적이다. 하고 있는 업무를 (불화없이) 놓는다는 것은 실제로 굉장히 어렵다. 특히, 그 업무를 대신 맡아서 해야하는 사람이 생기는 경우라면 마음이 불편해서라도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업무를 죄다 들고 있으면, 계속 업무가 추가되고 각각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부족해진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직장은 역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믿자. 어떤 업무를 정말로 놓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 업무를 없애는 데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위임할 수 있는 일은 위임하고, 어느 누구도 할 필요 없게 만들 수 있다면 박수를 받아도 된다.


자신의 업무를 얼마나 덜어내야 할까? 이것은 정답이 없고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면 '1년마다 전년도에 하고 있던 업무의 절반'을 덜어내는 것을 을 기준으로 시작해보자.


절반이나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말이다. 아무리 정기적으로 업무를 잘 조정해도, 시간이 지난 뒤 살펴보면 자신의 업무에서 상당히 많은 업무들이 생각보다 가치가 낮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정상이다. 특히, 직장에서 자신의 역량이 커지고 있는 경우엔 더 그렇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덜어내는가?'하는 점이다. 업무지도를 그린 다음 날 매니저를 찾아가, '저는 업무의 절반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 업무는 이것이것입니다' 라고 통보하는 것은 용감하다기 보다는 무모함에 가깝다. 퇴사를 결심하고 있다면 한 번 시도해볼 만도 하겠지만 말이다.


업무를 덜어내고 싶을 때는 다음 두 가지를 고려해보자.  


1)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령 거래처가 세금계산서를 보내왔는데 송금해주지 않으면 한 바탕 난리가 난다. 이런 일들을 버리는 것은 자살 행위다. 그러나 자신이 들이고 있는 노력에 비해 사람들이 그 결과를 잘 들여다 보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이 발생한다. 뉴스클리핑이 정말 의미가 있다면 하루쯤 보내보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볼 수 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눈치챌 것인가? 엑셀에 여러 시트가 있고 매주 그것들을 업데이트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맨 처음에 있는 시트만 보고 회의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지난 주 파일에서 시트를 깜박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고.


매니저와는 이런 부분을 같이 고민하면 좋다. 단, 이 때의 포인트는 '어떤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더 중요한 어떤 업무를 하기 위해 기존 업무에 들어가는 리소스를 줄이고 싶다.일 것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업무는 좀더 간소화시켜 진행해보자. 단계적으로 진행하면, 퇴사의 리스크를 줄이며 성공적으로 업무를 없애버릴 수 있다.


2)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방법을 찾는다. 대표적으로, 엑셀만 잘해도 업무의 반이 줄어들 수 있다. '얼마나 많은 함수를 알고 있고, 매크로를 짤 수 있는가?'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V-lookup 함수나 피벗테이블 정도만 마스터하고, 대신 이 둘이 돌아갈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를 쌓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를 버리기로' 작정을 하고 들여다보면 그 업무에서 반드시 개선의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도저히 개선을 찾을 수 업무는 오히려 중요한 업무일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팁을 추가한다면, '조직개편'이나 '매니저, 혹은 임원 교체'야말로 가치가 적은 업무를 덜어내는 최고의 타이밍이다. '아, 또 업무보고를 새로 해야 하네'라고 푸념하지 말고, 하늘이 준 이 기회를 살리자. 새로 온 높으신 분들은 항상 '기존 것을 날리는 것'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3. 추가: 가치가 높은 일을 더한다


지금은 좀 인기가 시들했지만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늘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선곡도 실력'이라는 멘트이다.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업무를 선택하겠는가?'라고 물으면 답을 잘 못한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자주 받으면 우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미있는 일은 모두가 다 하고 싶어하지 않나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죄책감을 갖을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인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 '가치가 높은 일'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의외로 사람마다 꽤 다르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꼭 하고 싶다고 하는 업무는 그냥 주면 된다. 그 일이 엉망이 되어 자신이 다시 수습할 가능성이 높지만 않으면 된다. 직장에서는 '누구든지 간에 제발 좀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업무'가 얼마든지 있다. 이왕이면 자신이 한번 해보고 싶으면서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업무를 찾는 것이 가장 좋다.


당장 잘 하고 못하고는 큰 상관이 없다. 대신, 하기로 했다면 '끝까지' 갈 각오만 되어 있으면 된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도 말고, 어떤 업무를 하던 도중에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매번 포기하지도 말자. 일단 업무를 시작했으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더라도 일단 어느 정도는 끝을 보고 다음 단계로 전환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일종의 '벌'로서, 이렇게 해야 다음 번에 업무지도를 점검할 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결정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만큼, 일시적으로는 원하지 않는 업무를 해야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굉장히 오랫 동안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어차피 내 선택권은 없어'라고 생각하게 되면 나이와 무관하게 뇌가 굳어져버리고, 업무에 있어 성장은 멈추게 된다. 직장에서 업무 역량은 절대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최소 시간이란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 보다는 몰입의 정도와 주도성이 훨씬 더 큰 영향을 갖는다. '공간을 애써 만들었다면' 자신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업무로 최대한 그 안을 채우자. 그래야 직장이 즐거워진다.


진단-제외-추가 이 3단계는 뭔가 대단해보이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구태여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이런 느낌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제대로 그것을 하는 사람이 적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하면 된다.


자신의 업무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정해 나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걸음씩 분명하게.



일러스트 ehan  http://bit.ly/illust_e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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