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02
페이스북에는 5줄 짜리 Bible이 있다. Facebook Working Culture를 집대성(!)한 내용으로 너무 얇아서 책으로 내진 않지만, 대신 머리속에 넣어두고 매일같이 꺼내보곤 했다.
1. Focus on Impact
모든 가치(Value)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이다.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세 단어로 된 이 문장만큼 짧고 직관적이면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을 본 적이 없다.
Focus. 집중하라.
한국의 회사들은 지나칠만큼 멀티태스킹을 강조한다. 얼마나 큰 성과를 내고 있는지보다는 얼마나 '많은(혹은, 다양한)'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하루에, 한 주에, 그 달에, 해당 분기에 몇 가지 업무를 처리했는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반대로 멀티태스킹의 폐해는 아주 뚜렷하게 알고 있다. 일정이 사정없이 늘어진다거나, 일은 하지 않으면서 숟가락 얻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것 말이다.
1/10 x 10은 그냥 1이다. 당연히 2나 3보다 작다. 그나마 업무와 업무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사람은 1에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전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종 결과는 1보다 작아지는 경우도 많다.
페이스북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한다. 너무 많은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를 해 주기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업무 우선순위(Priority)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으면 각자가 알아서 하게 두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매니저가 슬며시 다가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데, '집중'이란 단어를 오해하면 곤란하다. 집중은 '나는 이것만 하겠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것을 하기 위한 '여건'을 만들겠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뭔가 중요한 일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무에서 중요하지 않은 업무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할 것인지의 스킬이 필요하다. 가령, 정기적으로 자기가 하고 있는 업무를 점검한 뒤 가치가 적다고 생각되는 일을 털어내거나(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겠다.
Impact. 성과, 성과, 성과.
페이스북에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적지 않는다. Impact은 성과로도 번역될 수 있고, 영향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어쨌거나 이전과는 다른 어떤 '가치'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게 된다.
어떤 것에 집중할 것인지, 무엇으로 자신의 성과를 판단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가령, 세일즈가 보이는 것에 집착해서 얼마나 많은 광고주를 만났고, 어떤 내용의 발표를 했으며, 그 업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없을 때 설명이 길어진다. 매출을 숫자로 보여주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말하면 그만이다. 해당 분기를 단기매출보다는 판을 짜는데 사용했다면, 캠페인의 성과를 측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더 인정을 받는다. 실패를 했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을 동료들에게 공유하고 앞으로 해당 업무를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에 대한 길을 찾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2. Move Fast
'빨리 빨리'는 안 좋은 의미로 많이 쓰인다.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질적인 원인과 개선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땜빵하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일정을 당기거나, '까라면 까' 식으로 업무를 주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건물이 무너지고, 매년 새로운 교육정책이 나오고, 집을 사라고 했다가 그런데 왜 대출을 받았냐고 하기도 하고, 책임을 지우기 위해 엄한 부서를 해체하게 된다.
그러나 'Focus on Impact' 기반 하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작은 문제에 일일히 대응하는 대신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를 정의(Define)하고 해결하기로 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달려든다. 사전조사에 몇 주, 보고에 몇 주, R&R 정하는데 몇 주, 임시적인 TF 조직 구성하는데 또 몇 주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무에 필요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그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을 빠르게 정리한다. 가령, 페이스북에서 유투브의 동영상을 따라잡겠다고 내부적으로 선언한 시점과 그 결과물이 나오는 시점은 믿을 수 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본인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진행과정을 눈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큰 자극이 된다. 머리 속에서 '한계(Limit)'라는 이름의 박스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Move Fast를 잘못 적용하면 회사가 골로 간다. '초집중모드'로 365일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다 중요한 일이라고 하고, 언제 한 지시인데 아직도 못했냐고 다그치는 맥락에서는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그렇게 일을 했는데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는 말을 듣거나, '왜 그 산을 올라가는데 리소스를 쓴거야?'라고 책임을 회피해 버리면 답이 없기도 하고.
3. Be Bold
페이스북에서는 오피스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아했던 것은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였다.
우리는 걱정이 참 많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한 번의 실패가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좌절을 딛고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지금의 내 성공은 그 실패로부터 왔다'라고 멋지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결혼도 했고 통장에 돈이 없고 우리 집인지 은행집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꽤 움츠려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원래 뭘 하고 싶었더라?'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페이스북처럼 업무에 있어서 굉장히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노력하는 곳이라도 '집중해서 뭔가 빠르게 해결하는' 압박을 계속 받다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바로 실행 가능한 단기 목표 위주로 업무를 설정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럴 때 한 발자국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Be Bold'이다.
자신을 가져. 너,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Be Bold'는 용기의 메시지이다. 괜찮아, 마음껏 해봐. 이렇게 회사가 말을 건네주는 것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해줘. 그리고 실패해도 '뭔가를 배웠다면' 괜찮아. 대신 그 실패를 반복하진 말았으면 해. 무엇보다, 작은 성공이나 큰 실패 때문에 '니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4. Be Open
페이스북에서 말하는 'Open'은 직원들이 회사의 방향이나 주요 프로젝트, 필요한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의미이다. 사용자 개인정보나 법률적인 이슈와 같이 아주 제한된 사항(보통 이러한 정보는 굳이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오픈되어 있어,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페이스북이 구글도 아니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열려 있다'는 것이 회사가 직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뭔가를 공유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Mark's Q&A에 참석하는 것은 완전히 본인의 선택이다. 사내 정보시스템인 Wiki나 수많은 직원들이 주제별로 의견을 교환하는 Facebook Group에 정말로 방대한 물량의 수준 높은 정보가 있지만, 그 정보를 읽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반대로 정보를 찾는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따라서 '왜 공유해주지 않는거야!'라는 불만은 거의 없고, 대신 이러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도 꽤 많이 발생한다.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에 약한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말이 아니기도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동료들이 'Focus on Impact' 관점에서 찾은 업무를 'Move Fast'하게 진행하고, 'Be Bold'의 결실을 맺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페이스북의 교육 시스템은 다른 회사와 크게 차이가 없다. 다른 말로, 별로라는 의미다. 대신, 'Be Open'을 통해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이나 동료가 일하는 방식, 그 결과를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자가 러닝커브를 발생시키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성장의 기회가 된다.
5. Build Social Value
원래 페이스북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Build Social Value'가 아니라 'Break Things'였다. 개인적으로는 맨땅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조금은 섭섭하긴 했다.
'Build Social Value'는 사회적 가치로서의 기업의 의미를 페이스북이 좀더 다지는 취지였다고 생각한다. 꼭 엄청나게 훌륭한(그리고 한없이 멀게 느껴지는) 그런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관점에서 가치를 공감하고, 나아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크 인터뷰를 찾아보면 "Facebook was not originally created to be a company."란 말이 많이 나온다. 이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마크를 믿는다. 가치있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돈을 버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사용자를 괴롭히거나,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Build Social Value'의 맥락이다.
이렇게 Facebook에서 강조하는 다섯 가지 가치들을 살펴보았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이러한 페이스북의 가치가 반드시 옳다거나 효율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이 있고,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지는 당사자인 개인이나 해당 기업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길게 설명한 것은,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매일같이 떠올리고, 업무를 할 때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페이스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회사에서는 "몇 년 내 세계 몇 위" 혹은 "XX년까지 YY원 달성"과 같은 슬로건만 있거나, 아니면 회사 웹사이트 어딘가에 직원들도 잘 모르는 좋은 내용들이 적혀 있곤 했다. 하도 직원들이 기억하지 못하니까 한 장으로 출력되어 모니터 옆에 붙이게 하거나, 혹은 명함 사이즈로 출력하여 지갑에 넣고 다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회사를 떠나면 그 즉시 초기화되기도 했고.
그러나 페이스북에서 배운 가치들은 비단 회사를 다닐 때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리고 내 자신을 돌아보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아마도 평생 간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는 정말로 중요하다. 회사마다 다른 가치가 공존할 수는 있지만, 지향점이 무엇인지 구성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너무나 많은 비효율이 존재하게 된다. 뭔가를 '외우라고' 한 순간, 이미 그것은 대표와 HR팀만이 아는 인위적인 무엇인가가 된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가치를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떠오르는 가치가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일하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