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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Sep 22. 2018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리더의 능력, 태도, 자질에 대한 글이나 책이 꽤 많다. '성공하는 리더의 X가지 법칙, XX리더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한다, 조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떠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리더의 잘못이다'와 같이 다양한 포맷, 다양한 맥락에 따라 글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글들은 원래 누군가를 위해 쓰여진 글일까?


.

.

.


리더다.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는 글은 '리더'가 읽으라고 쓰여진 글이다. 혹은, 지금은 리더가 아니라 하더라도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포함할 수도 있겠다. 자신에게 부족한 자질을 돌아보고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단서를 찾아나설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실제로 리더는 그렇게 숫자가 많지 않다.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다 포함해도 전체 인구 수에 비하면 여전히 작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에 반응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리더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는 글을 보면서 자신의 매니저와 비교하고, 공감하고, 그러한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울적한 기분에 빠져 퇴사를 결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회사를 다니고 어쩌면 이전보다 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

나의 매니저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점을 가도, 페북 피드를 봐도, 유투드 동영상을 봐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글이 너무나도 많이 보인다. 모두가 위로와 공감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에서는 분명히 도움이 크다. 당장 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물고기잡는 법보단 그냥 물고기가 낫고, 그냥 물고기보다는 굽거나 튀겨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 아닌 사람들에게 있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위로하는 것은,


'나는 그것을 (직장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은연 중에 암시하게 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변해야 해결되는 문제는, 매니저가 딴 곳으로 가야 해결되는 문제는, 조직이 변해야 해결되는 문제는 그 해결의 동인이 내가 아닌 '밖'에 있게 된다. 잠시 마음은 편할 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기 전까지 나는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알지 않는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매니저가 바뀌면 (아주 예외적인 확률을 제외하면) 더 답없는 매니저가 온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조직은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려 한다.


책임이 없다는 것은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와 같다.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어야 '나'는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설령, 그 문제를 푸는 것이 매우 어렵고 계속해서 실패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여 다시 또 도전해야 한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한 '나'는 꿈을 꿀 수가 있다.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는 리더를 위해 쓰여지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리더일 필요도 없고, 리더가 되고 싶어할 필요도 없다. 4번타자가 9명 있는 팀을 이기는 것은 쉽다. 리더보다 더 많은 연봉을 요구할 수도 있고, 금액적인 부분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다른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매니저가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모든 리더가 스티브 잡스나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같을 수도 없고, 단언컨대 이 사람들에게도 단점은 충분히 많을 것이다. 장점과 단점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측면에서는 책에 나오지 않는 인격의 '절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만약 세상에 정말로 좋은 리더가 많다면, 좋은 리더에 대한 책이나 글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운이 없는 것이 아니다. 보다 필요한 것은 그렇게 '불충분한 리더'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나'는 어느 만큼 노력할 것인가. 


왜 자신이 먼저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 많은 연봉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리더가, 매니저가 왜 먼저 행동을 취하면 안되는 것인가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혹은 그녀가) '리더'이기 때문에 '내'가 노력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선택권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완벽한 리더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리더가, 나의 매니저가 완벽한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딱히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다. 불완전한 '그'와 불완전한 '내'가 무엇인가 가치가 있고 흥미로운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한 리더와 어떻게 일하는 것이 좋을까,

언제 웃으며 이별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일단 나부터 불완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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