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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Sep 28. 2018

누구나 처음엔 실수를 한다

#직장에서 #04

실수를 통해서 성장한다는 것은 멋진 말이다. 마이크 타이슨의 '누구에게나 계획이 있다. 한 대 쳐 맞기 전까지는' 만큼이나 멋진 말이다. 정말로 큰 실수를 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근사한 말이 따로 없다.


신입은 실수를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것을 알고 있다. 신입도 사람이고, 사람은 실수를 한다. 실수를 하지 않는 신입이 있다면 대견하다기 보다는 좀 무서운 느낌이 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입은 원래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화가 덜 나는 것은 아니다.


저는 그렇지 않던데요?


이런 생각이 든다면 신입이 대수롭지 않은 실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실수를 한 신입이, 그 쩔쩔매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하고 잠시 회상에 빠질 수도 있겠다. 어쩌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보통 회복 가능하거나 사수 선에서 대응이 가능한 경우이다. 신입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을 때, 부서를 넘어 회사와 회사 간의 이슈가 되는 실수를 했을 때 '성장 어쩌고'하는 말은 머리 속에서 지워지게 마련이다. 


신입들은 회사 내에서 주고 받은 메일을 포워드해서 거래처에 메일을 쓴다.

돈을 받아야 하는 계약서에 0을 하나 빠뜨린다.

회의 일정이 미루어졌는데 그 사실을 부사장님께 알리지 않는다.

파일을 새로 업데이트 한 후 예전 파일을 보내고, 동료들에게 채워달라 한다.

A에게 답변하면서 B를 수신자를 지정한다.

중간에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 작업을 하다 마감 직전 파일을 날린다.

의도치않게 엑셀의 수식을 건드린다.


아이러니컬한 부분은,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먹으면, 실수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면, 이전에 이미 실수를 한 적이 있으면, 혹시 실수할까봐 사수가 한 번 더 주의를 주면 오히려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한 번은 메일을 잘못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회수 버튼을 찾으려고 했으나 자주 쓰지 않는 메뉴라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미 열어본 사람이 더 많았다. 급한 마음에 다시 메일을 보내다가 더 큰 실수를 했다. 실수가 반복되자 부장님은 사수였던 과장님을 불러,


'앞으로 김형석씨의 메일은 이과장이 확인하고 보내도록 하세요'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 메일을 쓸 때 실수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과장님께 확인 메일을 먼저 보내도록 하자 믿을 수 없을 만큼 실수를 계속하게 되었다. 실수가 반복되자 아무리 부처님같던 과장님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고, 친절한 설명 대신 말을 줄인 채로 몇 번이고 메일을 고쳐쓰게 하였다. 어느 날은 그날 꼭 보내야 했던 메일이 있었는데 퇴근을 미룬 채 서른 번 넘게 같은 메일을 고쳐쓰고 또 고쳐썼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했다. 


실수는 해도 괜찮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신입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실수를 했을 때 고치는 확률보다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더 크다.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굉장히 많은 메일을 반복해서 고쳐 썼고, 과장님은 내가 잘못 쓴 메일들을 꼼꼼이 읽은 후에 '다시 쓰세요'라는 말과 함께 돌려주었다. 어느 부분을 틀렸는지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동안 그렇게 서로 간에 기억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 다행히도 메일을 쓸 때 실수를 하는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과장님은 앞으로 자신의 컨펌 없이 그냥 메일을 보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드라마처럼 그 날 둘이 술이라도 마시진 않았다. 감사했다는 말도, 수고했다는 말도 따로 없었다. 그냥 너무 사는 것이 피곤했고 마침내 끝나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한달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To와 CC, BC의 의미를 구별하게 되었고,

전체회신을 할 때와 포워드가 필요할 때를 알게 되었고,

메일을 쓴 목적을 분명히 하게 되었고,

상대방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고,

되도록 메일을 간결하게 쓰게 되었으며,

바로 회신할 때와 미리 양해를 구할 때를 구별하게 되었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와 확실한 답신을 받아야 할 때를 알게 되었다.


이 경험들은 뼈속까지 파고 들어서, 


첫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뿐 아니라, 이후 다녔던 모든 회사에서 무의식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왜 그렇게까지 할까'를 고민했던 한 달 간의 좌충우돌이 18년 넘게 직장을 다닐 수 있었던 기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몇 번의 이직을 통해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이 시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미안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신입이었던 내가 그렇게 많은 실수를 반복해서 하는 것을 그냥 묵묵히 바라보고 기다려주었던 과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허울 뿐인 위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리고 신입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그 무엇이 그 안에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가 하는 부분은 당시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날 수록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분명 모두에겐 처음이 있다. 실수도 하고, 반복하고, 주눅이 든다.


어떤 신입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어떤 신입에게는 혹독한 채찍질이 필요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두 번째 기회란 것이 애초에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이마에 큰 낙인이 씌워진 채로 회사를 떠나는 그 날까지 트라우마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면, 신입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다린다고 모두 나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실수를 극복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못하면 신입은 성장할 수 없다.


처음인 그 사람도 어렵겠지만,


누군가에게 처음이 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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