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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Nov 15. 2018

자신있어서 하는게 아냐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묻는 말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좀더(그리고 영원히) 검토를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실패'에 대해서 얼마나 보수적으로 일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신입이었을 때는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지만, 한 번 직장을 옮기도 두 번 세 번 네 번 이렇게 이직을 하고 나서 이러한 현상은 어떤 개별 회사나 특정 사람들에 대한 이슈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거의 모든 회사에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들이 누군가의 '명확한 지시'나 '본인 스스로의 강한 확신'이 없을 때 어떤 업무를 하는 것을, 맡는 것을 기피한다. 


그건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왜 그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해요. 성공했을 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요.


음... 그런가. 


실패하지 않을 것 같거나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책임이 아닌 상황에서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그렇게 일하는 것이 재밌을까?


그러고보면 학생 시절에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아는 문제를 실수하지 않는 것'이었다. 수능이란 것이 제일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200점 만점에 전교 1등이 117점인가를 맞았던 것 같다. 시험준비를 하려고 해도 도대체 뭐를 어디서부터 준비하면 되는지 알 수가 없었고, 부모님들과 언론들은 난리를 쳤다. 이렇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시험으로 내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 애들이 다 학원에 가고 사교육이 엄청나게 커져버릴 거라고.


그 이후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났고 시험은 계속해서 쉬워졌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어떤가. 지금처럼 사교육이 커진 적이 없고, 학생들은 알고 있는 문제 하나를 틀리면 등급 하나가 바뀌고 원하는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교육이란 것이 뭐 이래. 어른들이 하는게 뭐야.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 그 욕하던 마음은 다 잊는다. 군대에 가면 '의문을 품는다는 것에 대한 참혹한 결과'를 경험하게 되고, 제대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는 과정에선 다시 어깨가 움츠려 든다. 그리고 들어간 직장에서는 '튀는 돌이 정맞는다'의 의미를 수없이 눈으로 각인하듯 목격하게 된다.


직장은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치는 것이 아니라, 아웃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곳인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헛스윙 정도까지는 괜찮을 지 몰라. 그런데 말야, 니가 세 번 잘못 휘두르거나 아니면 어설프게 한 번 쳤다가 아웃되면 넌 다신 기회가 없을 지도 몰라. 감독이 지시를 하면 그냥 해. 아니면 정말로 자신있을 때만 휘둘러. 아니면 말야, 너 다시는 경기를 하지 못할 거야. 왜 걔 있잖아, 한 때 잘나가던 애.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욕하면서 위안을 받는다.


사회가, 회사가, 그 개새끼가 잘못하는 거야. 씨발 이게 될 것 같아? 그래도 해야 돼. 무엇을 위해 하는 거냐고? 몰라 그런 거. 하래잖아, 설명도 없어. 그런 건 기대하지도 마. 


우.리.잘.못.이.아.니.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는 말이 있다. '존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존나 버티는 것이 꼭 숨죽여 버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직장에서 어떻게 일할까, 어떻게 살고 싶은걸까를 이야기하다보면 어느 새 직장 밖으로 튕겨나갈 수 있다. 그러나 '삶'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직장 안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말하고 꺼내놓는 것이, 그리고


풀 수 있는 것보다는 풀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업무 안 맡겠다고 회사 나가기 싫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선택한 이상 억지로 맡은 것도 아니고, 맡은 이상 끝까지 가보는 거다. 


정말로 풀 수 있을까. 당연히 모른다. 미리 알면 재미없지 않은가?


책임을 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실 책임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임이 없으면 권한을 요구하지도 못하니까. 오히려 그럴 바에야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는 상태로 일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튕겨나가지 않고 성과를 낸다면 그 다음에는 권한을 받아 디딤돌로 써서, 좀더 어려운 도약을 해볼 수 있으니까. 혹시 실패한다면, 그래서 튕겨나간다면 좀더 고생을 하고 좀더 먼 길을 돌아야 한다고 해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해볼 수 있을 거니까. 어차리 삶이란 것이 그런게 아닌가. 어딘가에 '닿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고 뛰어가고 걸려 넘어졌다고 또 일으키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닌가. 


자신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풀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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