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을 노리는 악마의 질문
마케팅 부서에 지원했는데 영업 부서에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1. 왜 이런 질문을 할까?
1) 마케팅에는 소질이 없어 보여서
2) 세일즈 부서의 충원이 더 급해서
3) 정말로 세일즈를 잘할 것 같아서
4) 세일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5) 그냥 별 생각없이
물론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고, 상황마다 모두 다르다. 면접이 얼마나 스무스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면접관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이 질문이 나왔는지에 따라 추측해야 한다.
만약 면접이 망하고 있다면,,, 1번일 가능성이 높다. 믿기지 않겠지만 한 명의 오프라인 면접을 준비하는데는 회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리소스가 들어간다.
에이, 면접 준비하는 것은 취준생이 훨씬 더 시간을 쓰는데요?
물론 그 면접 하나를 보면 그렇다. 취준생은 면접 준비하고, 옷도 신경써서 입고, 면접보러 오느라 반나절 날리기도 하니까.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면접 이전에 인원(TO)를 배정받고, 채용공고를 내고, 레쥬메를 검토하고(1차 스크리닝), 전화 인터뷰를 하고, 오프라인 면접을 진행할 지원자 풀을 선정한 뒤, 일정을 잡는 등의 과정을 먼저 진행하게 된다. 한 사람의 지원자가 쓴 시간보다는 (만나지도 못하는) 다수의 지원자를 검토한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게 오프라인 면접을 진행했는데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없을 때는 꽤 난감하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다. 원래의 채용목적과 다르더라도 불씨를 살려야 한다.
2번은 일단 면접을 나쁘지 않게 보고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지원자가 세일즈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세일즈 쪽으로 면접 질문을 바꾸게 된다. 만약 지원자가 세일즈보다는 마케팅을 원한다면? 더 설득하지 않고 바로 마케팅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3번은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거라도 자신이 팔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보통 회사에 신입으로 지원하기 보다는 자기 사업을 한다.
4번은 원래 채용 목적인 마케팅에 대해 지원자가 꽤나 마음에 드는 경우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 때는 정말 잘 대답해야 한다!
5번은 뭐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2. 마케팅 vs. 세일즈
위에서 4번 상태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생각해보자.
면접 분위기도 좋고 인터뷰어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딱 봐도 면접관 역시 마케팅부서의 사람이고, 합격하면 자신의 매니저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갑자기 세일즈에 대해 묻는다면???
1) 합격만 시켜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건 지금까지의 모든 점수를 한 번에 날리는 지름길이다. 이른 바 면접 금칙어로서,
- 무엇이든
- 정말로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면접에서 이런 표현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지원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면접관은 이미 꽤 많은 실패의 학습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입사했던 신입이 얼마나 빠르게 '이건 제가 생각하던 업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지를! (아니, 회사는 TV랑 다르다고!)
혹시 정말로 '무엇이든 열심히 일하는' 지원자를 원하는 회사일 수도 있잖아요?
맞다. 영혼까지 탈탈 털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지만.
2) 아닙니다. 저는 마케팅을 하고 싶습니다!
에이 참, 저를 한 번 떠보시려는 거지요? 알아요, 안 속아요. 저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마케터를 꿈꾸어 왔는데요!
뭐, 오답은 아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지원자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마케팅 면접에서 세일즈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 마케팅을 고수하는 비율과 세일즈도 관심있다고 말하는 비율이 어떻게 될까? 어느 쪽이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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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지원자가 훨씬 많다. 왜 그럴까?
- 마케팅 부서에 지원했으니까 마케팅을 고수한다
- 면접을 잘 보고 있는 것 같다
- 원래부터 자신은 세일즈(영업)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마케팅이 좋다
대학생들은 세일즈보다 마케팅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세일즈, 영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게 각인된 경우도 많고, 반대로 가슴 떨리게 짱멋진 캠페인들이 워너비 마케터의 마음 속에 가득하다.
마케팅을 희망했으니까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대신, 알아야할 것은 10명 중 7-8명이 마케팅이 좋다고 답하는 상황이라면,
- 마케팅이 좋은 이유를 정말로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고
- 반대로, '왜 세일즈는 원치 않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바로 지뢰밭이 시작된다.
마케팅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세일즈' 업무에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저는 낯을 가려요,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는데 세일즈는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이런 표현들은 부정적인 인상을 주거나 제대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논리가 부족해 보이게 된다. 가령, 설득이 약한 마케터를 좋아하는 마케터가 얼마나 될까.
마케팅을 하고 싶은 이유를 정말로 잘 설명해야 한다. 세일즈를 하기 싫어 본인을 깎아내리지 않고.
3) 세일즈도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최소한 희소해지기는 했다. 10명 중에 1-2명의 지원자 안에서 비교되는 것이다.
면접 때 인터뷰어가 하는 질문은 지원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질문이 있고, 분류하기 위한 질문이 있다.
'탈락' 질문은 어떤 유형의 지원자는 절대로 뽑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사용한다. 10명 중 1-2명에 속하면 바로 Out된다. 대략 최소한의 준비 부족이나 성격파탄, 혹은 정말 기피하고 싶은 업무태도 등을 걸려내는 질문을 생각하면 된다.
'분류' 질문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A를 선택했든 B를 선택했든 그 자체는 상관없다. 점수를 잃고 얻는 것은 그 이유를 얼마나 잘 설명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A를 8명이 선택하고 B를 2명이 선택했다고 하자. A의 경우 8명 중 상당수가 비슷비슷한 답을 한다. 듣고 있으면 꽤 지겹고, '가장 잘 대답할 확률'은 어차피 1/8이다. 반면 B는 2명에게만 답을 듣는다. 물론 설명을 잘 못하면 꽝이겠지만, 제대로 답하면 기억하기가 훨씬 쉽다.
그렇다면 마케터에게, 그것도 면접을 잘 보고 있는 마케터에게 '마케팅 vs.세일즈'를 묻는 질문은 탈락 질문일까, 분류 질문일까. 당연히 후자이다. 세일즈 부서는 매출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마케팅과 세일즈는 서로 시너지를 내는 부서이고, 정상적이 회사라면 서로의 가치를 안다. 반대로 마케팅과 세일즈가 매일 반목하는 회사는 가면 안 되겠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점이다.
[예시 1]
예전에 XX를 팔아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도 이야기해보고, 저렇게도 이야기해보고, 뭐라고 해야 이 사람이 살까 혹은 왜 망설이지? 내 설명이 부족한가? 이런 부분들을 "직접" 만나서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지? 이런 "해결책"도 금방 찾을 수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버니까 신나더라고요. "더 크게" 일을 벌릴 수도 있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 제가 번 돈으로 여행도 갔어요. 또 그렇게 가 보니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심"이 가고, 말도 붙여보고...
[예시 2]
사실 전 마케팅과 세일즈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서로 맞닿아 있는 거잖아요. 난 뭐가 불편하지? 뭘 만들면 되지? 그렇게 만든 것을 또 직접 팔아보고, '아, 이거 생각했던 거랑 다르네'하는 부분도 알고 또 개선하고... 이런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전 그냥 "순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마케팅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일즈로 갔다가 또 마케팅으로 와서 경험한 것들을 녹여내고, 혹은 세일즈부터 시작해서 사람들 많이 만나고 부딪혀보고, 어느 쪽이나 재밌을 것 같아요. 결국 양 쪽을 다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세일즈가 좋은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 일단 밝다. 긍정적인다.
- 맞든 틀리든 간에 어떤 답을 했을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진다
- 세일즈에 관심이 가고 잘 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마케터"로서의 기본 자질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러한 답은 '나는 마케팅이 좋다'의 세일즈 버전이 아니겠는가?
3.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
이런 글을 쓸 때마다 걱정되는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 이러한 설명은 그냥 예시일 뿐이다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취할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위의 예시같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 뭔가 정답을 정해놓고 들어가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기를 속여서는 안된다".
면접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자신을 꾸며내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해도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만 능숙한 면접관을 만나면 그냥 탈탈 털린다. 그리고 설명, 그 사람을 요령좋게 넘어갔다 해도 회사에 입사해서도 그렇게 꾸며낸 자신을 계속 유지하며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합격한 기쁨은 잠시고, 신입 사원들은 첫 월급이 나오기도 전에 퇴사를 고려하는 경우가 정말로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신에게 잘 맞을 것 같은 회사를 찾아도 그럴진대, 자신을 세뇌해서 들어간 회사가 즐거울 리 없다.
면접은 속고 속이는 자리가 아니다.
자신을 설명하고, 반대로 자신이 그 회사에 맞을지를 서로 묻고 확인하는 자리이다.
결국 이 글도 '합격의 비책'같은 것을 전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어차피 해치울 면접을 의미있게 준비하고 즐기기 위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뭔가 휩쓸려서 0시수업같은 것을 듣고 시험을 보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디서 다시 시작하면 좋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