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들에 대하여
태양은 하늘의 만물을 밝게 한다. 하여 우주는 하나의 밝은 별로 인해 생을 얻는다. 달은 이런 태양으로 인해 별이 되어 밤이라는 생을 살게 된다. 반면 밤하늘 다른 별들은 상대적으로 밝은 태양으로 인해 그 빛을 잃는다. 행복은 작은 별이요, 사랑은 태양, 달은 사랑 받는 나 자신이니. 거대한 사랑 앞에 밝게 빛난 자는 밝음에 취해 작은 행복들을 보지 못한다. 태양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으며 서로만을 바라보던 그 두 천체는 오직 서로를 향해 때로는 밝게 때로는 붉게 타오를 뿐이다.
조커 카드는 트럼프 카드 게임에서 비장의 카드로 불린다. 조커는 어떠떤 카드로도 변할 수 있으며 하여 게임의 양상을 뒤바꾸는 역할을 한다. 앞서 올려진 카드가 하트 건 스페이드 건 간에 그들의 뒤를 따르며 다른 플레이어에게 강한 페널티를 부과한다. 하트는 사랑, 스페이드가 죽음과 끝을 상징함을 알고 나면 아이러니함이 느껴진다. 사랑과 죽음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아이러니는 마치 밤에는 별 아침엔 행성이 되는 달과 같다.
태양이 빛을 잃었다. 그러자 강한 빛에 보이지 않던, 이 별 저 별 그 수많은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별이구나. 행복은 이 별에 있었구나. 보이지 않던 좋았던 추억들이 은하수가 되어 쏟아졌다. 은하수는 너무 거대하고 장엄하여 나의 눈을 파고들었다. 은하수는 눈물이 되었다. 행복이 한 줌의 눈물로 바뀌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애서 입꼬리를 올려보아도 흘러넘치는 행복들을 다 받아낼 수는 없었다. 주워담을 수 없는 건 그만하자는 말과 했던 모든 행동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커가 필요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카드. 구명보트 같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미 눈물은 흘러 강을 이뤘고 난 심장 높이까지 잠겨있었다. 정신 못차리고 슬픔에 허우적거리고 있을때 행운의 조커카드가 보였다.
트럼프 카드 모양의 5장의 편지가 있었다. 엽서의 한 면엔 트럼프 카드가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한 면에는 백지 위에 편지가 쓰여져 있는 선물이었다. 트럼프 카드엔 알맞는 상황이 있었다. 힘든 순간에 열어볼 편지, 기뻤던 순간에 열어볼 편지 등. 나는 그녀에게 그들을 받고 정말 그런 순간들에 편지를 열어봤었다. 정말 지치고 힘들 때, 어느 날은 기분이 좋을 때 편지를 하나씩 열어보고 따뜻한 말에 위안을 얻었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이별했었고 다시 연인이 되었었다. 이 편지들은 처음 이별 전에 받았던 편지이기에 관계가 한번 정리되었을 때 서랍 깊숙히 넣어두고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그 서랍 속 편지가 두 번째 이별에서야 생각난 것이다. 행운의 조커카드가 보였다. 뭔가 특별한 카드였음에 당시 열어보지 않고 아껴두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미루다보니 사실 거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던 것이었다. 타임캡슐 처럼 기억속에 묻어뒀던 것이었을까. 내 안에서 쏟아져나온 눈물에 기억 깊숙히 파묻혀 있던 타임캡슐이 나타난 것일까.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열어보지 못한 그 행운의 조커카드가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서랍 속을 뒤적여 편지들을 찾았다. 지금 읽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리라. 행운의 조커카드를 집었다. 봉투를 열고 카드를 꺼냈다.
"행운의 조커카드를 열었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나봐. 그때 너의 곁에 같이 있을게. "
시간이 멈췄다. 멍해졌다. 이별의 순간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을 참으려 노력했지만 이젠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저 세 문장이 이리도 슬플 수 있었던가. 비장의 수는 비수였던 것이다. 이어지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눈 앞을 가렸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직 아무일도 겪지 않았을 순수한 그때의 사랑이란 태양이 지금의 태양을 밀어냈던 것이었다. 그리고 드러난 검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추억이었다. 이 사랑이 추억이 되었구나. 별들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에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이 슬픔의 무게가 2024년 2월의 내가 아닌 2023년 5월의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현재의 나는 멍하니 앉아 그 시절 순수했던 자신에게 몸을 내어줘야 했다. 엉망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침대를 구르며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인정해줘야 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멀어졌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시 그날로 부터 5달이 흘렀다. 이제서야 다시 내가 되었다. 아니 이제서야 나와 나 우리는 서로를 볼 수 있었다. 밤길을 걸을 때면 다시 하늘의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처가 아물고 시간과 운명은 다시 내것이 되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학과 공부에도 충실했고 많은 공연을 했고 많은 사람을 새로 만났다. 헬스에 맛이 들려 제대로 운동한지는 벌써 5달이 다되어간다. 책도 많이 읽었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자작곡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글은 좀처럼 쓰지 못했다. 쓰다만 이 글을 완성해야 다음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메모지에 메모는 쌓여가고 얼른 글을 마저 써야 했는데 이 글을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행운의 조커카드가 가진 무거운, 또다른 현실에 마주하기 두려웠던 것 같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이제 글을 이어가야했다. 조커를 뒤집을 용기가 이제서야 내게 왔다. 이전의 조커카드는 하트였다가 스페이드가 되었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현실에서의 다이아몬드와 클로버를 마주해보려 한다. 살아가기 위해, 밤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을 기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