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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규 Sep 12. 2023

'지금'을 사는 법

2023년 9월 어느 날을 이젠 사랑하려한다.

 생각을 하여 삶이 고달픈건지 생각을 하지 않아 삶이 고달픈지 알 방도가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가볍게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정의란 무엇인가’는 고민하는 삶의 고귀함을 일깨운다. 시대의 지성들도 찾지 못한 올바른 삶을 나라고 알겠는가.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살아있음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 살아있는 것은 숨을 쉰다. 하여 숨을 쉬는 이들은 살아있다. 사고는 불안하다. 살아갈 순간들과 살아온 순간들을 생각하느라 신체는 과부하된다. 숨을 참는다. 동시에 사고가 멈춘다. 시간과 삶이 함께 멈춘다. 잠깐 살아있지 않은 상태.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였을 때 비로소. 현재를 본다. 아름다운 순간들에서 나는 현재를 봐왔다. 낭만적인 풍경을 봤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 시간이 정지했다는 것은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간섭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몸에 흐르는 전율이 내가 정지했음을 알린다.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살아있음을 알린다. 지금.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지금’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어쩌면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을지 모른다. 이성이 멈춘 순간. 숨 쉬지 않는, 죽음에 다다른 자만이 현재를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빠졌을 때 죽고 싶다고 말한다. 죽음의 순간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지 않아서인 듯하다. 한 인간을 옥죄는 과거에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일 터이다.      


 석가모니가 말했듯. 집착은 삶을 괴롭게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이는 풀이라도 움켜쥐는 법이다. 흩어진 시간 위를 달리다 보면 우리는 집착을 갈망하게 된다. 하여 삶은 항상 집착과 함께한다. 영원하지 않은 관계에 대한 집착, 이루지 못할 꿈에 대한 집착, 사랑에 대한 집착. 그 단어가 듣기 거북해질 때쯤. 세상을 떠난다. 거북해진 것은 단어인가 세상인가. 올바른 삶이라는 교리인가. 생각이 많아진 것인지 망상이 심해진 것인지 알턱이 없을 때, 그제서야 나는 그냥 숨을 참기로 한다. 모든 사고를 정지하고 현재를 본다. 흘러나오는 재즈를 모든 창을 열어 흘려보낸 채 가장 안전한 야영을 즐기는 내가 보인다. 초가을밤. 여름에서부터 들려온 밤의 매미 소리가 정취를 돋구며 현실을 사랑스럽게 한다. 2023년 9월 어느 날을 이젠 사랑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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