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간밍,『노자강의』를 읽고
거인의 어깨 위에 제대로 서는 방법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드러나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으며,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오래간다.”
도덕경 22장에 나온 글귀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노자를 따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노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야오간밍이 대화체로 풀어낸 ‘노자강의’를 통해 우리의 일상 속에 노자의 사상이 절묘하게 숨어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고 내가 갖고 있는 사고와 신념들이 노자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서두에 제시한 도덕경 22장은 평소 내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의 핵이며 내가 지향하는 인간관이었다. 물론 노자를 전혀 몰랐던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나만의 철칙이었고 이제야 그것이 노자의 본류사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전부터 알아오던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늘 도덕경 22장에 나온 그대로였다. 내가 존경하고 마음을 주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사람이고, 옳다고 큰소리치지 않아도 옳은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공을 떠벌이거나 뽐내거나 거만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 속에 있을 때 삶의 진정한 기쁨을 느끼고,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정진을 다짐하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노자의 본류에 가닿기 위한 삶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중국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친구에게 “나중에 BMW를 몰고, 고급 주택에 살면서 맛있는 해물 요리를 먹어! 그리고 미녀와 결혼하고 첩까지 둬서, 매일 밤 신랑이 되길 바라!”는 쪽지를 쓴 것이 대중매체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중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당신은 현대사회에서 성실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90% 이상이 손해를 본다고 답했다고 한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여 다시금 질문을 윤색해 본들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답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아닌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 각박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 아니라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아귀다툼으로 싸워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에 푹 절여진 작금의 현실. 다시 한번 노자의 도덕경 22장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드러나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으며,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오래간다.”
노자의 말은 “성실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다” 는 이치를 말하고 있으나 현대사회에서 성실한 사람은 오히려 바보가 되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야오간밍은 그러한 사태를 “거인의 어깨 위에 서기”를 마다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특히 인간관계에 관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거인과 같아서 지혜로운 거인을 의지해 제대로 어깨 위에 서라고 권유한다. 그가 말한 거인의 어깨 위에 제대로 서는 방법이 바로 수천 년 전에 노자가 말한 방법임은 말할 것도 없다. 지혜로운 자는 말하지 않음으로 지혜를 말하고 있다고 할까.
잔혹한 경쟁에서 지혜로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한 농장주의 일례가 있다. 그가 기르는 농작물은 매년 그 지역의 농업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을 탔는데, 그는 수상 후에 자기가 상을 탄 최고의 품종을 다른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서로 자기가 최고가 되겠다고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세상에서, 그에게서 받은 씨앗으로 다음번 경진대회에서 그를 능가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농장주는 미국인이었고 노자를 알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노자의 이념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나누어준 우수한 품종에서 꽃이 피고 꽃가루가 날아다닐 때 이웃의 꽃가루가 자신의 밭에도 올 수 있으며 자신의 밭 주위의 품종이 모두 좋아야 자신의 밭에서도 우수한 품종이 생산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야오간밍은 그를 가리켜 우월한 생존자라 칭했다. 농장주도 경쟁 중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우월자, 생존자로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자신 역시 우월한 생존자로 남을 수 있도록 한 경지가 바로 노자가 말한 “다투지 않는 덕”이라는 것이다. 다투지 않는 상생의 길로 가는 우월자, 그것도 우월한 생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잔혹한 경쟁에서 피폐해지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평화로운 생존의 길이 있다는 증거이다. 노자가 말한 “완전히 비우고, 고요함을 돈독히 지키는 것”은 ‘도’를 깨우친 도사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치부하기에는 이르다. 미국의 한 농장주가 실천한 다투지 않는 우월한 생존의 방식은 ‘비움’이 우선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주변의 사람들조차 ‘비움’에 동화되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도’는 일상에 존재한다.
도덕경 35장에 “도를 말하면 아무런 맛도 없다” 는 말이 있다. ‘도’를 말로 표현하면 담담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는 뜻이며 “진리는 소박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도덕경은 5천 자에 불과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삶의 지혜를 얻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어깨를 내어준다. 그 어깨 위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소박하고 소소한 것들 속에 진리가 스며있다는 것인즉,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곧 ‘도’로 통하는 길일 것이다. 거대하고 지혜로운 거인의 어깨 위에 서기,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노자의 말없는 가르침은 유효하다.